페루, 리마 - 2015/07/06(월)
월요일 아침 일찍 임시여권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챙겨 들고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토요일 밤에 여권 도난 신고를 받았던 대사관의 박난영 사무관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임시여권 서류를 받고는 이후 밟아야 하는 행정 절차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에 가는 항공권을 예매해뒀기 때문에 그 일정에 차질이 없는지 물어봤더니 갈라파고스에 임시여권으로 입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갈라파고스 여행이 무산된다면... 이건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다. 박 사무관에게 에콰도르 대사관에 연락해서 꼭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자, 계속 확인해 보겠지만 어쨌든 여권 재발급이 우선 시급하니 최대한 빨리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임시여권은 오후 4시경에 나온다고 했다. 애초에 오늘 임시여권만 받으면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늘 저녁에 뜨루히요로 떠날 예정이었는데, 내일 오전에 페루 이민청에 여권 분실 신고를 해야 임시여권으로 칠레 국경을 넘어 에콰도르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페루에서의 남은 시간을 온통 여권 관련된 행정절차에 써야만 한다는 사실에 그만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헤매며 점심을 해결하고, 우체국마다 들쭉날쭉한 탁송 요금 때문에 그중 요금이 저렴한 우체국을 찾아가 한국으로 짐을 부치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현금이 인출되지 않아서 은행 여러 곳을 전전한 후에야 간신히 돈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버스표의 날짜 변경을 위해 여권을 도난당했던 그 터미널 대합실에 다시 앉아 있으려니 여권을 도난당했던 그날의 악몽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이 불편하니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했고 몸은 쉽게 지쳐갔다.
갈라파고스 여행에 문제가 없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시여권을 받기 위해 약속한 시간에 맞춰 대사관에 들어서자 박 사무관이 웃으며 갈라파고스 입도에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Gracias a la Vida!”
환호성을 지르며 그녀를 안고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만약 임시여권으로 갈라파고스 입도가 불허됐다면 나는 평생 그 여권가방 도둑들에게 저주를 퍼부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갈라파고스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저주 대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련다. 태양의 자손인 잉까의 후예답게 밝은 길로 걸어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