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과야낄 - 2015/07/09(목)
전날 오후 4시에 치끌라요에서 출발한 버스는 새벽 2시에 칠레를 출국해 에콰도르로 입국했다. 이 두 나라는 사이가 좋은지 출국과 입국 사무소를 한 건물에 나란히 두고 있었다.
버스는 아침 6시 30분에 에콰도르의 과야낄에 도착했다. 불편했던 버스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고 짐을 찾으러 버스 짐칸으로 가서 우리 짐이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짐이 모두 다 빠져나가도록 기다렸는데도 우리 짐이 나오지 않았다. 짐을 꺼내는 직원은 더 이상 꺼낼 짐이 없다며 우리의 수하물표를 보자고 했지만 그 물표 번호에 해당하는 짐은 버스에 없었다. 우리는 손가방과 간식 가방만 들고 국경을 넘어온 것이다!
페루와의 악연이 이토록 질길 줄이야...
대합실에 있는 시바 버스 창구로 달려갔으나 7시 30분에 출근한 직원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합실에서 잠을 자며 새벽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청년들 중 영어를 구사하는 한 명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버스 회사의 직원은 우리 배낭이 치끌라요 버스터미널의 수하물 창고에 있을 테니 내일 아침에 도착하는 버스에 실어오면 된다고 태평한 투로 말했고, 나는 우리 짐이 다른 버스에 실려 다른 나라로 가고 있을 수도 있으니 지금이라도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내일 아침 갈라파고스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몸만 갈 수는 없지 않은가. 8시에 출근하는 치끌라요 버스터미널 직원에게 전화해 우리의 배낭이 수하물 창고에 있다는 사실과 오늘 오후 4시에 과야낄로 출발하는 버스에 태우겠다는 통화내용을 확인한 후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택시에 구겨 넣고 호스텔로 향했다.
그렇게 짐도 없이 맨몸으로 숙소에 도착해 넋을 놓은 채 4인용 도미토리 침대에 걸터앉아 있자니, 우리 사정을 들은 호스텔 직원이 우리를 배려해서 우리 방에 있던 청년을 다른 방으로 옮겨주었다. 고맙게도 도미토리 요금으로 프라이빗 룸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짐을 찾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더 이상 그렇게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짐 없이도 갈라파고스에서 지낼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 근처 쇼핑몰로 가서 속옷과 바닷가에서 신을 신발(당시 우리 발에는 등산화가 신겨져 있었다.)과 옷 한 벌씩을 샀다. 그리고 호스텔 직원에게 부탁해서 페루의 치끌라요에서 버스가 출발하기로 예정된 시간 30분 전에 그곳에 전화해 우리 짐을 꼭 부쳐달라고 한 번 더 부탁했다.
우리의 상황이 다급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호스텔 사람들에게 자꾸 부탁할 일이 생겼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탁했던 일을 재차 확인하려니 폐를 끼치는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근처 과일가게에서 사 온 수박을 썰어서 함께 투숙하고 있는 여행자들과 호스텔 직원과 함께 나눠먹었다.
우리는 내일 아침 6시 30분에 과야낄 터미널에서 칠레에서 온 배낭을 찾아 9시 30분 출발하는 갈라파고스행 비행기를 타고 갈라파고스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에콰도르에서의 첫날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