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과야낄에서 갈라파고스로 이동 - 2015/07/10(금)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새날을 맞았다.
새벽 6시에 아이들을 깨워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배낭을 가지러 버스터미널로 갔다.
치끌라요에서 오는 버스는 예정보다 40분 늦은 시각에 도착했고, 다행히 우리 짐을 싣고 왔다.
“Gracias a la Vida!”
기쁜 마음으로 배낭을 짊어지니 그 무거운 배낭이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과야낄 공항으로 이동해서 배낭에서 적당한 옷을 꺼내 갈아입고 반쯤 넋이 나갔던 그 정신에 챙겨 온 과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갈라파고스로의 입도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갈라파고스는 섬 자체가 자연이 만들어낸 천혜의 박물관이므로 섬을 오염시킬만한 어떤 것의 유입도 차단하고자 공산품이 아닌 식료품은 일체 반입을 금했다. 공항 직원들은 여행자들의 짐을 꼼꼼히 검사했고 검사를 마친 짐은 특별한 봉투와 테이프로 실링 했다. 대사관에서 임시여권으로 입도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혹시나 공항에서 거부당하지나 않을까 해서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입도 서류에 허가 도장을 받았을 수 있었다. 항공료와 별도로 입도료 100 달러를 내야 했고 어디로 서야 할지 모르는 긴 줄과 복잡한 절차가 있었지만, 우리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그 모든 절차를 통과하고 보딩 게이트로 향했다. 페루의 리마에서부터 갈라파고스로 가는 관문인 에콰도르의 과야낄로 오는 여정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모두 극복해내고 드디어 갈라파고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다니... 실로 꿈만 같았다.
나는 왜 그토록 갈라파고스를 꿈꿔 왔을까?
열두어 살 정도였을 즈음, 책이 귀하던 시골에 살았던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희귀 동물 책에서 대왕 거북이와 파란 발 부비새를 보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듯했던 신기한 그 동물들이 갈라파고스라는 섬에 산다고 했다. '그 섬은 대체 지구 어디쯤에 있는 걸까?' 궁금해서 세계지도를 구석구석 찾아보다가 에콰도르라는 나라의 왼쪽에 위치한 그 섬들을 찾아냈다. ‘갈라파고스라...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태평양이 얼마나 큰지, 지구 반대편에 가려면 비행기로 얼마나 날아가야 하는지 등 지구의 크기에 대한 감조차도 없었던 시골 아이의 밑도 끝도 없는 꿈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지구의 크기에 대한 상식 수준의 감이 생기고, 에콰도르는 비싼 비행기 값을 내고도 가야 할 만큼의 중요한 일이 없이는 가기 힘들 만큼 멀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꿈은 점점 허황된 꿈이라는 서글픈 판단이 서기 시작했고,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갔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갈라파고스행 비행기에 앉아 있다. 아득했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비행기는 두 시간 여를 날아 갈라파고스의 발트라(Baltra)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장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산타 크루즈(Santa Cruise) 섬 행 페리를 타러 가는데,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고 한동안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내밀고 버스 앞을 보니 도로에 작은 핀치새 한 마리가 내려앉았는데 버스기사는 그 새가 날아갈 때까지 경적도 울리지 않고 한참을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기분 좋은 기다림은 그 후로도 두 번 더 있었는데 버스를 세운 또 다른 주인공은 도로로 들어서서 한참 버스를 구경하던 육지 이구아나였다. 버스 승객들은 모두 이런 기다림을 기쁘게 생각했고 섬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의 탄사를 내기도 했다.
버스는 짙은 에메랄드 빛 바다 앞에서 멈춰 섰다. 바닷가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군함조들이 우리가 옮겨 탄 페리를 따라 날아왔다.
산타 크루즈 선착장에서 다시 읍내로 가는 버스로 옮겨 탔다. 버스는 붉은색 흙이 단단하게 다져진 길의 양 옆으로 짙은 초록색 열대 숲이 펼쳐진 길을 달렸다. 진초록의 숲과 붉은빛의 흙이 강한 색의 대비를 이루는 그 길 위로 노란 나비가 나풀거리며 날던 그날, 그 길의 풍경은 여행이 끝난 후로도 오랫동안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물어물어 숙소를 어렵게 숙소를 찾아갔으나 원하는 숙소에는 방이 없어서 오늘 하루는 근처의 다른 숙소에서 자기로 하고 그곳에 짐을 풀었다. 오후 해가 저물기 시작했지만 갈라파고스에서의 소중한 오후 한때를 그냥 어영부영 보낼 수 없었기에 우리는 찰스 다윈 연구소(Charles Darwin Research Institute)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 내 공원의 입구에는 한국 전력 공사가 기부한 태양광 시설에 대한 한글과 영문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술이 이 먼 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니 자부심과 반가움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연구소의 안내 자원봉사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미국인 가족에 합류하여 설명을 들으며 연구소 내의 공원을 둘러보았다. 자원봉사자로부터 들은 론섬 조지(Lonesome George)의 이야기는 한번 파괴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갈라파고스의 핀타섬에 살았던 거북이 조지는 이 지구 상에 살아남았던 마지막 핀타섬 거북이(Pinta Island Tortoise)였고 한다. 그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해 근처의 이사벨라 섬에서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암컷 두 마리를 데려왔으나 100년 가까이 혼자 살아왔던 이 외로운 거북이는 다른 거북이와 어울리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어서 짝짓기에 실패하고 결국 2012년 6월 24일에 종의 마지막 거북이로써의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조지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우리는 그런 그의 존재를 알리는 안내판과 함께 빈 우리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더 했다.
그 옆으로는 대형 육지거북이(Galapagos Giant Tortoise) 디아고(Diago)의 우리가 있었는데 등껍질의 길이가 1미터는 족히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 군도의 이름인 갈라파고스는 스페인이로 안장을 의미하는데, 말의 안장처럼 생긴 거북이의 등껍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섬의 이름을 거북이의 특징에서 따온 사람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을 만큼 이 대형 육지거북이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다. 그 밖에 갓 부화한 아기 거북이들과 온갖 종류의 이구아나와 이 섬에만 사는 자생식물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으며 연구소 내 공원을 둘러본 후 어둑해지는 거리를 걸어 나왔다.
연구소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식당을 겸한 바닷가 어시장이 있었는데 펠리컨과 바다사자들이 생선의 내장을 얻어먹으려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아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시장에서 생선을 다듬는 사람의 분주한 손길을 따라 움직이는 녀석들의 일사불란한 고갯짓이 재미있다.
살아 있는 박물관이자 진화의 전시장, 갈라파고스에서의 첫날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