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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7. 2017

단골 식당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산타 크루즈 하이랜드 투어- 15/07/11(토)

갈라파고스의 닭들은 유난히 목청이 좋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그 우렁찬 ‘꼬끼오’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곤 했는데, 한번 시작된 ‘꼬끼오’ 소리는 옆집에서 그 옆집으로 계속 이어져 온 동네 사람들을 다 깨우고 나서야 멈췄다. 

짐을 챙겨 예정되었던 숙소(Casa blanca)로 옮기고 나서 지리를 익힐 겸 메인 거리까지 걸어갔다. 

광장 바로 앞에 있는 현지인 식당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손님들로 가득했다. 얼굴만 봐도 단번에 가족인 걸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서로 닮은 아저씨 두 분이 홀과 주방을 오가며 바쁘게 주문을 받고 있었다. 형님인 듯한 분은 영화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중저음의 중후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동생으로 보이는 다른 한분은 발걸음부터 얼굴의 표정까지 흑인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그루브가 배어있는 장난꾸러기였다. 다행히 메뉴판에 음식의 사진이 있었기에 음식 주문에 어려움이 없었고 나오는 음식마다 맛도 좋았으며 양도 푸짐했다. 동생 웨이터 아저씨는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며 아이들을 향해 수십 번 윙크를 날렸고 아이들이 음식 맛에 만족해하자 어깨춤을 추며 돌아가곤 했다. 산타 크루즈 섬에 머무는 동안 밖에서 일을 보다가 식사 때가 되면 우리는 별 고민 없이 유쾌한 웨이터들이 반기는 그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겸 점심으로 먹기 좋은 푸짐한 메뉴. 커다란 주먹밥에 해산물 소스를 얹어 내왔다.
소년이 사랑했던 해산물 스튜
식당의 또 다른 단골손님


닭의 우렁찬 목청 말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되는 특이점은 모든 택시가 하얀 도요타 픽업트럭이라는 것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큰 짐을 든 주민들과 큰 여행가방을 든 여행자들에게 이 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기본요금인 1달러만 내면 거리에 관계없이 시내 안의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오후에는 이 픽업트럭 택시를 전세 내서 하이랜드 투어에 나섰다.

처음 방문한 곳은 화산 폭발 후 타원형으로 가라앉아 단층이 깊이 드러난 지역이었다. 지름이 1킬로미터가량 되고 가라앉은 깊이가 600미터가량 되는 이 거대한 타원의 아랫부분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울창한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옆의 바람 부는 숲길은 키 작은 검푸른 색의 잡목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기묘한 분위기가 팀 버튼 감독의 몽환적인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숲길에 들어서니 온갖 종류의 새들이 포르르 날아다니면서 숲을 온통 새들의 노랫소리로 채웠다. 이 숲의 주인은 나무보다 새인 듯하다.


하이랜드 투어 가는 길
화산 폭발 후 지반이 침하된 지대
침하지대 옆 검푸른 관목 숲
온갖 새가 서식하는 숲길
침하지대의 반대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엘 차튼(El Chaton)이라고 불리는 대형 육지거북이(Giant tortoise) 공원이었다. 공원은 붉은 흙길에 양옆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아름다운 길의 끝에 있었다. 

읍내의 바닷가에 위치한 찰스 다윈 연구소와 달리 이곳에서는 대형 육지거북이들이 자연 속에서 보다 자유롭게 방목되어 생활하고 있었다. 형주와 제나는 풀밭 여기저기에 흩어져 먹이를 먹고 있는 거북이를 따라다니며 거북이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하고 거북이가 싼 똥을 관찰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과학시간에 배웠듯이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갈라파고스 제도의 거북이를 진화의 근거로 들었다. 그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섬들에 떨어져 사는 거북이들이 섬의 기후 및 지역적 특징에 따라 다른 먹이를 먹고 지내면서 각 섬에 사는 거북이가 즐겨먹는 먹이의 높낮이에 따라 거북이의 등껍질이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 산타 크루즈 섬에 사는 거북이들은 땅에 자란 풀을 주로 즐겨먹기 때문에 목 부분의 등껍질이 낮은 모양이지만, 나중에 방문한 이사벨라 섬의 거북이 등껍질은 산타 크루즈 섬의 거북이 등껍질보다 목 부분이 조금 더 들려 있었고, 가장 나중에 방문한 산 크리스토발 섬에 사는 거북이의 등껍질은 이사벨라 섬의 거북이 등껍질보다 목 부분이 더 높이 들려 있었다. 거북이가 죽은 후에도 썩지 않고 남을 만큼 단단한 조직의 등껍질이 먹이를 먹기 위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모양을 바꿔왔다니 정말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다. 


거북이 공원으로 가는 길
공원 초입. 빨강 머리 앤이 배튜아저씨와 마차 타고 다녔던 길을 연상시키는 예쁜 길이다.
몸 길이 1미터에 몸무게 0.4톤에 육박하는 초대형 육지 거북이


평생 풀만 먹고 사는 거북이가 어떻게 이런 단단한 등껍질을 만들었을까?
거북이 응가
나중에 산 크리스토발 섬에서 만난 거북이. 목부분의 등껍질이 산타 크루즈의 거북이 것보다 위로 많이 들린 모양이다.
거북이 공원에서 나오는 길


하이랜드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호스텔의 젊은 주인 부부 내외의 어린 세 아들들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 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형주는 위의 두 아이들과 축구를 했고 제나는 어린 막내와 함께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들을 데리고 놀았다. 방에 혼자 남은 나는 페루 리마에서 여권가방 도난 사건 때 여권과 함께 잃어버렸던 2.5개월간의 여행기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갈라파고스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갈라파고스에서의 두 번째 밤이다. 

  

어시장에 모여드는 녀석들
군합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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