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산타 크루즈 - 2015/07/13(월)
광장 앞 단골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다음 투어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녔다. 어제의 산타페 투어에서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제나가 너무 심심해했기 때문에 셋이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고 여러 여행사를 돌아다녀 봤지만 신통한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갈라파고스가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이니 바다에서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한 여행사의 사장이 조언해왔다. 너무 완벽한 여행을 계획하지 말라고. 아이들과 함께 왔다고 해서 가족 모두가 다 만족할 수 있는 것만 찾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이렇게 아름다운 파고스에 왔는데 뭘 그렇게 조급해하느냐고... 그의 말이 옳다.
오후에는 숙소 여주인이 추천해준 로스 그리에타스(Los Grietas) 섬으로 택시배를 타고 건너갔다. 선착장에서 5분 거리에 해변이 있었는데 형주는 더 안 가고 그 해변에서 놀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로스 그리에타스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해변이 아니라 선착장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바위 절벽 사이의 깊은 호수다. 그런데 더운 날씨에 15분을 더 걷기가 싫다고 해변에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그런 형주를 혼자 해변에 두고 제나와 둘이 바위 호수로 갔다.
호수로 가는 길 양옆으로 펼쳐진 선인장 숲도 장관이었지만, 검고 깊은 바위 절벽 사이에 고인 물은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검은색이어서 호수 밖에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 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들어 그 깊고 검은 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는데 그들의 눈에 검은 물속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수영을 잘하는 형주가 왔더라면 정말 좋아했겠다 싶어서 제나를 데리고 형주가 있는 해변까지 돌아가 형주를 데리고 다시 호수로 돌아오니, 스노클링 장비를 대여해주는 사람이 돌아갈 시간이라며 장비를 챙겨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앞으로 4일 동안 호수가 닫히므로 4일 후에나 오라고 했다. 어린 제나를 데리고 그 더운 길을 걸어서 두 번이나 왕복했는데 아무런 보람도 없이 그냥 돌아오려니 이 모든 것이 형주의 이기적인 행동인 것만 같아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화난 기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해변에 앉아서 모래 놀이하는 제나를 보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꿈에 그리던 갈라파고스에 와서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내가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침의 조급증이 또 재발했나 보다. 나는 지금 내 아이들과 함께 꿈에 그리던 갈라파고스에 와 있다. 여기 이렇게 해변에 앉아서 갈라파고스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12일이라는 기간 동안 빈틈없이 완벽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은 늘 화를 불러오는 법이니.
갈라파고스에서의 네 번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