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이사벨라 - 2015/07/14(화)
아침 일찍 일어나 배낭을 싸서 호스텔에 맡겨두고 1박 2일 동안 필요한 짐만 작은 배낭에 챙겨서 이사벨라 섬으로 가는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향했다.
두 시간여를 요동치는 배 속에서 용케 버티느라 이사벨라 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는데, 선착장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는 작은 펭귄들과 계단에 누워서 쉬고 있는 바다사자, 거리에 줄지어 기어 다니는 바다 이구아나들을 만나고 나니 멀미가 싹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산타 크루즈의 여행사에서 소개해줬던 숙소인 테로 레알(Tero real)의 시설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주인 내외가 전혀 영어를 못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나중에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무시하며 우리를 피하려 들었고 우리가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며 짜증을 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휘둘려 우리의 여행을 망가뜨릴 수는 없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니까.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뭐라도 먹는 게 최고다. 근처 식당에서 세비체와 해산물 요리를 주문해서 속을 든든히 만든 뒤 자전거를 빌려 섬 투어에 나섰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와 토토처럼 내 자전거 앞에 나무로 만든 유아 보조석을 달고 거기에 제나를 태우고 이사벨라 섬을 돌았다. 아이들은 이 낯선 섬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무척 즐거웠나 보다. 바닷가의 고운 모래가 많은 길에서 바퀴가 모래에 파묻혀 잘 굴러가지 않아 제나랑 함께 자전거에 탄 채로 넘어지곤 했는데 곱고 푹신한 모래 위로 넘어지는 것이 재미있다며 까르르 웃곤 했다.
우리는 까만 이구아나가 자주 출몰하는 흙길을 달려 대형 육지거북이 부화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에는 거북이가 어떻게 부화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전시실이 있었고 그 건물 밖에는 각각의 우리에 크기별로 나뉘어 자라고 있는 새끼 거북이들이 살고 있었다. 새끼 거북이들의 매력에 흠뻑 빠진 제나가 한 마리만 데려가서 키우자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녀석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그 길로 조금 더 가니 깊은 언덕 아래에 있는 얕고 넓은 호수가 나왔다. 그곳에는 지금껏 봐왔던 어떤 플라밍고 보다 고운 색의 깃털을 가진 플라밍고 서너 마리가 우아한 자태로 물 위를 거닐며 먹이사냥에 몰두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일행은 대형 렌즈를 무기처럼 장착한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매혹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기계의 한계를 일찌감치 깨닫고는 그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으려고 그곳에 서서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시 읍내 방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좁은 나무다리가 나 있는 작은 트레일에 들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트레일 내부의 작은 호수는 숙성된 와인이나 잘 발효된 간장처럼 붉은빛이 도는 검은색이었다.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구아나들이 우리의 발소리에 놀라 그 물속으로 기어 들어갔는데 행여 이구아나들이 그 짙은 물속에 들어갔다가 와인에 취하거나 간장에 절여지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물속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크게 한 바퀴 돌아 동네 바깥쪽에 검은 현무암이 넓게 드러난 바닷가를 달렸다. 여행자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그랬는지 온갖 생활쓰레기가 현무암 지대 위를 볼썽사납게 뒤덮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의 주도인 산타 크루즈 섬에 비해 인구가 적은 섬이라서 정부의 관리가 소홀했던 걸까. 이 아름다운 자연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현무암 지대를 지나 다시 읍내로 돌아왔다. 마당을 구분 짓는 담도 대문도 없는 섬마을의 소박한 집들이 듬성듬성 서있는 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이사벨라 섬의 지리를 익혀나갔다. 고운 모래가 단단하게 다져진 마을길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에서는 “야호~” 소리치기도 하고, 자전거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신이난 제나 덕분에 하이킹은 더 즐거웠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나니 배가 출출해져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꼬치구이를 파는 가판대에 들러 아이들과 함께 꼬치구이를 사 먹었다. 꼬치구이 가게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아이들을 가만히 보시다가는 이사벨라에서 딴 오렌지라며 작은 오렌지 대여섯 개를 아이들 손에 가득 쥐어 주셨다. 그 따듯한 마음이 감사해서 꼬치구이 값을 넉넉히 드렸더니 절대 받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하셨다. 그 후로 마을을 오가며 그분들을 뵐 때마다 우리는 반가움에 큰 목소리로 “올라, 세뇨라!”를 외쳤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손을 흔들어 화답해 주셨다.
이사벨라 섬에서의 첫 번째 날이자, 갈라파고스에서의 다섯 번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