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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7. 2017

환상 혹은 현실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이사벨라 - 2015/07/15(수)

터널 투어(tunnel tour)를 나갔다. 

우리의 가이드인 가브리엘은 큰 키에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를 가진 점잖은 사람이었다. 배의 선장과 그의 조수까지 세 명이 한 팀이었고, 투어에 참가한 나머지 일행은 오스트리아와 핀란드에서 온 젊은 커플과 영국에서 온 호기심 넘치는 청년 두 명이었다. 약 1시간 배를 타고 나가서 화산 용암으로 만들어진 해저 터널 속에서 스노클링을 하는데, 산타페 섬에서 했던 스노클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배가 멈춰 선 첫 번째 장소에서는 수백 마리의 파란 발 부비새와 부리에 주머니를 매단 욕심쟁이 펠리컨들이 정어리 떼를 먹으려고 몰려들어 있는 장관을 만났다. 가브리엘의 말로는 가이드 생활 5년 중 이런 장관을 만난 건 다섯 번 정도뿐이었다며 오늘 투어를 나온 우리 팀이 참 운이 좋다고 했다. 

터널 투어 일행


파란발 부비새가 이루는 장관


두 번째 장소에서는 스노클링 장비를 입고 물속으로 들어가 바닷속 세상을 탐험했다. 

지상에서 보았던 대형 육지거북이만큼이나 큰 바다 거북이 세 마리가 바위에 난 해초를 뜯어먹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함께 놀자는 듯이 천천히 헤엄치며 우리 주위를 빙그르르 돌았다. 형주와 나는 1 미터가 넘는 엄청나게 큰 바다 거북이가 바로 눈앞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너무도 멋있어서 서로 손을 맞잡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바닷속에서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물고기들이 무리 지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는데, 일순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란색의 형광 물고기가 바로 눈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우리 일행은 일제히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는 눈 앞으로 스쳐 지나간 것이 환상인지 현실인지를 서로에게 물으며 확인했다. 

터널의 어두운 아랫부분에서는 사람 키만 한 상어 대여섯 마리가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곳의 상어가 사고를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으로 느껴졌기에 최대한 조용히 그곳을 벗어났다. 

맹그로브 숲 근처에서는 물 아래쪽 맹그로브 뿌리에 꼬리를 감고 있는 20센티미터 정도의 주황색 해마를 발견했다. 주황색의 투명한 몸을 물에 내맡기고 해조류처럼 흔들리는 모습이 하도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 질 지경이었다. 

나는 우리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수영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일행의 맨 앞에서 가이드의 손을 잡고 함께 다니며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바닷속의 아름다운 광경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사벨라의 바닷속은 바다에 사는 아름다운 수중 생물만 모아 놓은 화려한 수족관 같았다. 그 환상의 세계에 미혹되어 물속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있었는데도 추운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세 번째 스노클링 장소에서는 펭귄과 바다사자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물 위와 물속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제나를 계속 혼자 배 위에 두는 게 미안해서 나는 제나와 함께 배에 남고 형주만 바다로 보냈다. 배위에서 멀찍이 보이는 귀여운 펭귄을 보고 제나가 내게 물었다.

"엄마, 저 펭귄은 왜 추운 곳에서 안 살고 여기 더운 곳에 살아?"

"글쎄... 추운 걸 싫어하는 펭귄들이 아닐까?"

"여기서 사는 펭귄들은 춥지 않아서 아기 펭귄 키우기가 훨씬 쉽겠다."

"그러게..."

더운 곳에 사는 훔볼트 펭귄의 영리한 선택에 대해 칭찬하며 간식을 먹고 있자니 스노클링 일행이 배로 돌아왔다. 웻수트를 벗고 선장과 조수가 준비한 점심을 먹는데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바닷물로 양념된 밥도 그런대로 맛있다.


마지막 코스는 화산 용암으로 만들어진 작은 바위섬에서의 짧은 트레킹이었다. 제주도의 현무암처럼 검은색 바위가 바다 위로 살짝 올라와 형성된 작은 섬에는 갈라파고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선인장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 선인장들이 자란 모습은 흡사 사람의 모습과 닮아서 우리가 돌아가고 난 후에는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눌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파란 발 부비새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몸집이 컸다. 가까이에서 봐도 역시 그 밝은 하늘색의 발은 정말 사랑스럽고 예뻤다. 바위섬 위에 서서 바닷속을 들여다보니 1미터가 넘는 바다 거북이가 수면 가까이에서 크게 원을 돌며 헤엄을 치고 있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같이 놀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 움직임이 장난스럽고 경쾌하다. 

눈에 닿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이사벨라 섬의 터널 투어에서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만난 듯하다.


바다 위 훔볼트 펭귄
스노클링 중인 형주와 일행
선인장 섬 트레킹
멋쟁이 파란발 부비새
파란발 부비새는 제나의 가슴 높이만큼 키가 크다.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것 처럼 보이는 선인장들
이사벨라 섬으로 돌아가는 뱃길


낮의 열기가 식은 이사벨라 섬의 저녁은 선선하고 낭만적이다. 이사벨라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으므로 일찍 잠들기 아쉬워서 동네 산책을 나섰는데 골목길에서 누군가 제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오늘 터널 투어에서 선장 보조를 했던 청년이었다. 맨발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제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 모습이 싱그럽고 다정하다.

우리 숙소 뒤편에서 함성소리가 들리기에 가봤더니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배구경기를 하고 있었다. 동네 대표로 뽑힌 청장년들의 배구 솜씨는 선수 못지않게 훌륭했는데 공이 코트를 넘어갈 때마다 환호의 함성이 울리다가 한쪽 편에서 공을 놓치기라도 하면 아쉬움의 탄식과 승리의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와 온 동네를 흔들었다. 우리는 20분 정도 경기를 지켜보다가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배구경기장에서 들려오는 함성은 자정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섬 주민들이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지내는 정다운 섬 마을, 이사벨라. 그들의 열기에 취한 기분 좋은 밤이다.


어느 집 낮은 담에 피어난 예쁜 꽃
성근 잎으로 하늘을 힘껏 떠받치고 있는 야자수들
식후 코코넛 한 통은 불로장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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