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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7. 2017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이사벨라 - 2015/07/16(목)

아침을 먹고 선착장 근처의 바다로 갔다. 입구에는 바다사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뒹굴고 있었다.

먼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이사벨라 섬 주변의 바다가 워낙 맑고 예뻐서 스노클링을 하려고 했는데 우리보다 먼저 온 미국 여고생들 중 하나가 해파리에 쏘였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이렇게 맑고 시원한 바다에 해파리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겁을 집어먹은 우리는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얕은 바위에 서서 물안경을 쓰고 얼굴만 물에 담그며 소심한 스노클링으로 오전 시간을 보냈다.




두 발로 걷는 듯한 맹그로브 나무들


오후에는 해변으로 나갔다. 제나는 모래놀이를 하고 형주와 나는 허접한 공으로 비치발리볼을 했는데 그게 재미있어 보였던지 해변가 식당에 앉아서 우리를 지켜보던 아저씨 한분이 자기도 끼워 달라며 우리의 허접한 경기에 합류하기도 했다. 

바닷가 식당 건물의 2층에는 태권도장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기합소리가 밖에서도 들렸다. 갈라파고스의 이사벨라 해변에 있는 태권도장이라니, 아마 세상에서 제일 멋진 풍광을 가진 태권도장이 아닐까 싶다.

땀도 식히고 몸에 묻은 모래도 씻기 위해 얕은 바다에 앉아 파도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있었던 것은 기껏 해봐야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움푹 파인 곳까지 떠밀려가 있었다. 수영을 못하는 데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있었던 나는 바닷물이 코와 입으로 들어와 형주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못 하고 계속 더 깊은 곳으로 더 밀려갔다. ‘이대로 여기서 죽는 건가? 그럼 아이들은 어쩌지?’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을까? 어느새 해변에서 나를 발견한 형주가 헤엄쳐 들어와 나를 발이 닿는 곳으로 끌어냈다.

늘 큰소리치고 아들 앞에서 잘난 체하는 엄마였던 나는, 볼리비아의 뽀또시에서 길을 잃어 아들을 걱정시키더니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의 이사벨라 섬에서는 아들에게 목숨을 빚진 엄마가 되었다. 


모래놀이와 비치발리볼을 하고 놀던 해변
아들에게 목숨을 빚졌던 무서운 바다
"오빠 덕분에 엄마를 되찾았어."


이사벨라에서 다시 산타 크루즈로 돌아가는 길은 이사벨라로 들어올 때의 뱃길보다 보다 수월하길 바랐건만, 물살을 거슬러 가는 뱃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파도를 만날 때마다 배가 튀어 올랐다가 ‘쿵’하고 떨어지기를 두 시간 넘도록 반복하는 와중에 한 여성 승객은 배가 큰 파도에 맞았을 때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가 심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배에 타자마자 내 품에 안겨 잠을 자던 제나는 사고가 났던 그 파도에 잠이 깨서 내내 답답하다며 울기 시작했다. 괜찮다며 제나를 달래주긴 했지만 실은 나도 서서히 팔다리가 저려오면서 감각이 무뎌지다가 구토증이 올라와 까무러치듯이 잠 속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팔다리 마비증세가 반복되며 그렇게 험한 뱃길을 네 시간이 넘게 달려서 드디어 산타 크루즈에 도착했고 사고를 당했던 승객은 대기 중이던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바다와의 사투로 지친 우리는 산타 크루즈 섬의 익숙한 길을 걸어서 우리가 머물던 숙소인 까사 블랑까로 돌아왔다. 날이 어두워지고 우리가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자 숙소의 주인 내외는 우리가 걱정되어 퇴근도 못하고 있다가 제나를 등에 업고 반쯤 넋이 나간 채 돌아오는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향집에 돌아온 듯이 온몸을 움켜쥐고 있던 긴장감이 녹아내렸다.

갈라파고스에서의 일곱 번째 밤이다.


이탈리아 엄마와 한국 엄마는 배안에서 수다 삼매경 중
출발전 배 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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