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산타 크루즈 - 2015/07/17(금)
오늘은 밀린 빨래를 하고 나서 동네를 쏘다니며 빈둥대기로 했다.
3개월 동안 여행하느라 까맣게 때가 탄 제나의 운동화를 빨고, 말릴 것이 걱정이라 미루어두었던 옷들도 죄다 꺼내서 빨았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빨래방에 빨래를 맡기고 다 말린 옷을 받아오지만 아이들의 옷이 전 세계에서 온 성인들의 옷과 섞여 세탁되는 것이 마음 놓이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는 지난 3개월의 여행기간 동안 밤마다 아이들의 옷과 내 옷을 손으로 빨아서 숙소에 널어 말리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오늘로 우리 여행도 3개월을 넘어서고 있으니 밀린 빨래도 하고 필요한 건 챙겨 넣고 뺄 건 빼는 짐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오전 내내 밀린 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걸어 두고 광장이 있는 메인 거리로 나와서 마트와 문구점에 들러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그리고 우리 트리오의 마음을 몽땅 빼앗아버린 파란 발 부비새가 그려진 티셔츠를 고르느라 온 읍내를 누비고 돌아다녔다.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빌려서 근처 마을인 벨라비스따(Bellavista)로 하이킹을 다녀왔다.
자전거를 빌려서 픽업트럭 택시의 뒷 칸에 싣고 벨라비스따까지 오르막길을 오른 후 거기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코스로, 여행사의 친절한 여직원이 자신이 종종 즐기는 하이킹 코스라며 추천해주었다. 읍내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길을, 이사벨라 섬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나를 좌석 앞에 매달고 형주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는데 자꾸만 ‘히~하~’하는 카우보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양옆으로 펼쳐진 짙은 녹음과 발아래로 펼쳐진 붉은 흙, 그리고 눈앞의 바다... 파노라믹 하고 환상적인 하이킹이다.
읍내에 도착해서는 라스 닌파스(Las Ninfas)라는 맹그로브 호수에 들렀다. 호수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 펼쳐진 맹그로브 산책길을 걸으며 다양한 맹그로브 나무들과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이루어진 호수 속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들과 장난꾸러기 바다사자들을 구경했다. 방문자가 별로 없이 호젓한 이 호수는 갈라파고스가 숨겨 놓은 또 하나의 작고 예쁜 보물이었다.
저녁에는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노천식당에 들렀다.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그 덕분에 분위기는 더 왁자지껄하고 흥겨워졌다.
우리는 아담한 소녀가 씩씩한 목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아 대형 랍스터(20달러)와 씩씩한 소녀가 적극 추천하는 빨간 생선인 브루호(Brujo; 15달러)를 주문했다. 고른 생선을 즉석에서 요리해서 가져다주었는데 두 마리를 주문했을 뿐인데도 한 쟁반 가득 푸짐하게 요리되어 나왔다. 랍스터야 우리가 아는 그 랍스터 맛이었지만 빨간 생선 브루호의 맛은 지금껏 먹어왔던 생선과 달리 전혀 비린 맛이 전혀 없이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특히 몸 3분의 1을 차지하는 머리에 붙은 볼 살은 이 생선 요리의 하이라이트였다. 빨간 생선의 이름인 브루호는 마법사라는 뜻이라고 했다. 빨간 몸에 노란 줄이 성긴 그물처럼 그려진 이 마법사 생선은 어쩌다 잡혀서 우리 식탁 위에 오르게 되었을까. 마법사의 염력이 조금 부족했던 덕분에 오늘 저녁 우리의 입이 행복하다.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두운 저녁거리를 셋이서 나란히 손잡고 느긋하게 걸어서 숙소로 향했다. 이젠 산타크루즈 섬 어디에서 출발을 하든 우리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골목길을 돌면 어떤 집이 나오고 벽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고 무슨 가게가 있는지 좁은 골목길마저도 속속들이 다 알게 되었으니까.
갈라파고스에서의 여덟 번째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