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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7. 2017

검은 물속, 빛의 커튼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산타 크루즈 - 2015/07/18(토)

새벽부터 소나기가 쏟아졌다. 여행을 하면서 잠귀가 한층 더 밝아진 나는 지붕 위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더운 갈라파고스에 축복처럼 내리는 이 빗방울은 단단한 거북이 등껍질에도, 울퉁불퉁한 이구아나 머리에도, 파란 발 부비 새의 파란 발등에도, 핀치새의 도톰한 부리에도, 장난꾸러기 바다사자의 콧잔등에도 떨어져 내리고 있을 것이다.


비가 와서 숙소의 고양이들과 노는 남매


오후가 되자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이 하늘이 맑게 개었다. 오늘은 지난번에 가려다가 실패했던 로스 그리에타스(Los Grietas)에 가기로 했다. 

산타 크루즈 선착장에서 택시 배를 타고 3분이면 닿는 로스 그리에타스 섬은 선착장에서 건너다보일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오늘도 선착장에는 게으른 바다사자가 좁은 통로를 가로막고 자기 편한 대로 누워서 몸통을 뒤집어가며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배를 타려고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바다사자를 피해 지나가면서 유쾌하게 웃을 뿐 누구 하나 바다사자의 잠을 방해하려 들지 않았다. 

택시 배에서 내려 날카롭게 찌르듯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해변을 지나 선인장 숲을 통과해 20여분 정도 걸어서 검은 바위의 계곡에 도착했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검은 바위 사이로 물이 고인 이 호수는 10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깊이에 먹물을 풀어놓은 듯 물이 검게 보여서 선뜻 물속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지지만, 일단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면 그 속은 맑고 투명해서 햇살이 비치는 곳은 저 아래 바닥까지 다 들여다보였다. 햇살이 물에 굴절되어 들어오는 빛의 커튼 속을 물살을 가르고 헤엄치노라면 물속 풍경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제나도 구명조끼를 입고 함께 들어왔으면 좋았으련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빛의 호수가 무서웠던지 멀찍이 서서 들어오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도 그럴 것이 호수 한가운데에서 잠시 쉬느라고 얼굴을 수면 밖으로 내놓고 있을 때면 검고 깊은 물속에서 뭔가가 내 몸을 끌어당길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곤 했다. 

갈라파고스가 품은 또 하나의 멋진 비경이 로스 그리에타스에 있었다.


로스 그리에타스로 가는 택시배를 타는 선착장
로스 그리에타스 해변
로스 그리에타스의 검은 호수


우리가 스노클링을 하는 내내 밖에서 기다리느라 지루했을 제나를 위해 돌아 나오는 길에는 로스 그리에타스 선착장 근처의 해변에 들러 모래놀이를 했다. 

오후 해가 강렬한 빛을 잃어가는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며 갈라파고스에서 보냈던 꿈만 같았던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는데, 혼자서 파도를 타며 놀고 있던 형주가 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와서는 안경을 잃어버렸으니 찾아달라고 했다. 바다에서 잃어버린 안경을 무슨 수로 찾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해변과 바다를 한 시간 가량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으나 역시나 헛수고였다. 다시 택시 배를 타고 산타 크루즈로 돌아와 마을에 있는 유일한 안경점에 들렀으나 형주의 시력에 맞는 렌즈는 수도인 끼또에 가야 살 수 있을 거란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끼또에 가는 화요일까지 3일간 형주는 내손을 꼭 잡고 다녀야만 한다. 

갈라파고스에서의 아홉 번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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