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산타 크루즈 - 2015/07/19(일)
일요일을 맞아 숙소의 젊은 주인 내외는 세 아들을 데리고 로스 그리에타스 해변으로 놀러 가고 안주인의 친정어머니가 호스텔을 지키셨다. 아기 고양이가 있는 방을 들락거리며 노는 제나가 예뻤던지 할머니는 마당에 핀 꽃도 따다 주시고 맛있는 열대과일도 가져다주시며 애정 어린 눈길로 제나를 바라보셨다.
호스텔에서 아침 겸 점심을 만들어 먹고 오후에는 숙소에서 만난 한국 청년 김선호 씨와 거북이 해변(Tortuga bay)에 가기로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제나가 걸어서 가기에는 먼 길이라며 굳이 막내 손자가 타는 손잡이가 달린 자동차 카트를 가져다주셨다. 지축을 울리는 시끄러운 바퀴소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처음에는 ‘거추장스럽게 뭐 이런 걸 주셨을까’하고 생각했으나 거북이 해변까지는 초입에서부터 4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자동차 카트가 없었더라면 절반쯤 가다가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할머니 덕분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던 셈이다.
함께 출발했던 예의 바르고 진지한 청년 김선호 씨는 형주와 나란히 걸으며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경험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보다 앞서 경험한 형님에게서 듣는 인생 이야기는 부모나 선생님에게서 늘 들어왔던 교훈이 담긴 뻔한 이야기보다 더 피부에 와 닿았던 것일까. 독특한 모양의 선인장이 자라는 열대의 숲과 그 속에 사는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 가까이 숲길을 걷는 동안 두 남자는 우리 보다 앞서 걸으며 깊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쯤 걸려 도착한 거북이 해변은 예상했던 것보다 넓고 아름다웠다. 두 개의 해변이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 해변은 터키옥 빛 바다 위로 하얀 파도가 대여섯 층으로 밀려왔다 부서지는 넓은 해변으로 서퍼들의 천국이었다.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검은 바다 이구아나들이 쉬고 있는 풀밭을 지나면 잔잔한 두 번째 해변이 나타나는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놀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움직이는 물이 무섭다며 갈라파고스에서 내내 물에 발도 담가보지 못했던 제나는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물에 들어가 발장구를 치며 놀았다.
소라게도 잡고 조개도 잡고 작은 물고기 떼도 쫓아다니며 30분이나 놀았을까. 4시 30분경 해변 관리자가 와서는 거북이들이 모래사장에 알을 낳으러 올라오는 시간이라서 5시에 해변을 닫으니 나갈 준비를 하라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해변 닫는 시간이 이렇게 빠를 줄 알았다면 아침 일찍 서둘러 올걸 그랬다며 아쉬워하는 제나를 달래서 다시 그 요란한 자동차 카트에 태워 그 멀고 먼 산책로를 걸어 돌아 나왔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힌 해변 위로 해변의 진정한 주인인 거북이들이 바다에서 올라와 사람들의 발자국을 지우고 열심히 구멍을 파서 알을 낳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숙소에 돌아오니 로스 그리에타스 해변에서 돌아온 젊은 안주인이 앉아 있다가 우리를 반겼다. 해변에서 아이들과 함께 형주의 안경을 찾아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그녀의 말에 어찌나 마음이 따듯해지던지... 내일이면 정든 이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그동안의 숙박비를 지불하며 배낭 깊숙이 간직해왔던 한국화가 그려진 대나무 부채를 꺼내 그녀에게 선물했다. 우리를 가족처럼 생각해줬던 그녀의 가족에게 진심으로 고마웠고 우리를 오래도록 기억해달라는 말과 함께.
갈라파고스에서의 열 번째 밤이고, 산타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