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떠나라' VS '쉽게 떠날 수 없다'

김별 작가 여행기《일단 떠나라》를 읽고

by Cha향기
[ ⓒ YES 24]


“No plan is good plan!(무계획이 좋은 거다)”이라고 외치며 해외여행을 겁 없이 떠나는 저자가 일단, 당차 보였다. 아무나 쉽게 흉내 내지 못할 일을 감행하는 그분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 홀로, 내 맘대로 세계 여행’,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라는 부제목을 내건 이 책은 쉽게 손이 갈 것 같진 않았다. 해외여행 한 번 가려면 별의별 걸 다 신경 써야 하는 소시민들에게는 낯설게 들리는 말이다. 당장 떠오르는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소는 누가 키우고?

얼라는 누가 보고?

돈은 어떻게 마련하고?

혼자서 뭔 일 당하면 어쩌려고?

‘일단, 떠나라!’라고 하는 말에 ‘쉽게, 떠날 수 없다!’라고 방어하고 싶었다.

동네 산책길도 혼자 나다니지 못할 판에 혼자서 해외여행이라니?

그것도 여자 혼자서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러고 보면, 김별 작가는 집시처럼 유랑벽이 있는 분인 듯했다. 홀로 떠나는 세계 여행이 언감생심인 나는, 일단 떠나지 못할망정 대리만족하는 맘으로 여행기를 읽어보기로 했다.


저자는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18개국 48개 도시 곳곳을 누볐다. 그것도 홀로, 계획도 없이 5개월 넘게 여행한다.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책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은 의외로 흥미진진했다. 이 책은, 저자가 꼼꼼하게 현장을 찍은 사진이 한몫했다. 게다가 거침없는 입담으로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화자가 합세하니 글과 사진의 합이 잘 맞았다. 비교적 두꺼운 책이었지만 하루 만에 다 읽어냈다.

시내산, 페트라 카이로를 여행했던 북아프리카 편을 소개한 1부와 트빌리시, 프라하, 부다페스트, 비엔나, 자그레브 등을 누빈 2부를 찬찬히 읽었다. 그런데 3부 남동 유럽 편을 읽다가 잠시 멈추었다. 여행기를 읽다가 감동하게 될 줄이야. 그냥 단순히 여행지 정보만 얻을 줄로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십 대를 소환하다’라는 부분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30년 전, 저자가 유학생이었을 때 지냈던 그곳을 다시 걷는 그 마음이 전해져 왔다.

나뭇잎 사이로 녹색 철교가 조그맣게 보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강 건너편 마켓에서 산 바케트 빵을 뜯어먹으며 오가던 다리다. 버스 시간 맞추려 큰 귀고리를 덜렁대며 뛰어가던 길, 공부가 힘들 땐 혼자 의기소침해 걸어오던 길, 강변 나무들이 여전히 물그림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169p)

20대, 그곳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돌아보며 저자는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분은, 아침에 BTS의 ‘Yet To Come’ (The Most Beautiful Moment)을 들으며 ‘그래, 나의 가장 아름다운 인생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어.’라고 중얼거린다. 과연 여행 작가답다.


인생 2막을 세계 여행으로 시작하는 그분이, 20대 추억을 소환한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며 우리나라 위상도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높아졌다. 저자도 충분히 여물어진 모습으로 그곳에 다시 섰다. 감개무량, 그 이상의 뭉클한 것이 올라왔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지 않고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 남달랐다.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자에게는 각본 없는 인생 드라마 같은 순간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일단 떠난, 세계 여행의 묘미였다.


4부에서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를 한 바퀴 돌았던 여행 단상도 참 좋았다. 바르셀로나항에서 프린세스 크루즈를 타고 출발하여 마르세이유와 엑상프로방스를 거쳐 제노바에 이른다. 그것뿐 아니라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이스탄불, 크레타, 델로스, 미코노스, 아테네, 산토리니, 코토르 등도 방문한다. 21일간 했다는 크루즈 여행을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런 꿈을 꾸는 반면에, 저자는 우주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구별을 대형 크루즈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크루즈를 타면 모든 걸 편히 누리듯, 지구란 별에서도 땅, 바다, 하늘에 있는 온갖 것, 물과 햇빛, 그리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으며 두루 보살핌을 받는다. 지구별 여행에서 내릴 때까지 (251p)


5부, 모로코 편에서는 미로에서 길 잃은 에피소드가 소개되었으며 국제도시 탕헤르에서 사기를 당한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런 장면에서 저자의 담대한 성향이 돋보였다. 나라면 당황하고 지레 질려서 짐을 싸 들고 귀국할 법도 한데, 저자는 그 사기꾼을 찾아 벌금을 물리고 신고하여 혼내줄 생각을 했다. 저자의 그런 탄탄한 자신감과 자존감이 부럽기까지 했다.

여행 마무리 부분(방콕, 치아마이, 다낭, 호이안, 후에, 하노이) 6부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행지에서 아들을 만나니 신기루 같았다는 표현을 했다. '결국 여행은 가족을 더 좋게 여기고 집을 더 사랑할 힘을 얻어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라고도 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또 말한다.


애타게 찾아다니던 파랑새를 내 집 앞에서 찾듯이, 나의 일상과 가족, 그 소중함과 보물들의 가치를 ‘새로워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348p)

이어서,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파리까지 가고 싶다.’라고 했다. 그 문장이 독서를 끝낸 내게 전광석화처럼 확 다가왔다. 그런 꿈은 저자의 생애에 결국 이루어질 것 같았다.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책 뒷장 커버에 캡처되어 있었다. 저자가 프라하 중앙역에서 20kg이나 되는 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야 했을 때 아기를 한 팔에 안은 젊은 엄마가 입을 앙다물고 힘을 주어 저자의 가방을 함께 들고 내려갔다는 장면이 나온다. 고맙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녀는 이미 총총히 가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감동하며 말한다.


누가 뭐래도 세상은 아름다운 거다. 다만 우리 마음이 세상의 밝음과 어두움 중 어느 쪽을 볼지 선택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7p)


아무튼, ‘일단 떠나고 싶은 자’나 ‘쉽게 떠나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좋은 여행 안내서가 될 책이었다. 틈나는 대로 집을 일단 떠나는 스몰 여행이라도 자주 해야겠다.


그러므로 저자는 지구촌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일단,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여기며
멀리 사는 친구에게 가듯
쉽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분이었다.



김별 작가 https://brunch.co.kr/@c3e689f797bd432

[일단 떠나라 여행기/ 각 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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