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나의 삶
《삶은 도서관》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도서관은 책 읽는 곳’라는 명제를 헝클어뜨린 책이다. ‘도서관 노동자’(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에 비친 도서관에는 사람 사는 얘기로 가득했다. 도서관은, 꽂혀있는 책만큼이나 숱한 삶을 마주 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이 책의 저자, 인자 작가는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분은 대학 졸업 후에 광고 홍보인으로 오래 근무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광고 문구에 쓰일 만한 표현이 많았다. 시(詩)가 수록되기도 했다. 책 제목, '삶은 도서관'도 여느 카피라이팅 못지않다. 글 속에 적힌 시(詩)에 인간미가 배어 있었다.
‘삶겹살을 구우며’
마트 정육코너
소고기 안심은 카드값이 안심이 안 돼
소고기 채끝은 남편 뒤끝이 무서워
그래도 1학기 끝낸 우리 둘째
삼겹살은 먹여야지 싶어
얼마일까 두 근 두 근 하다
그냥 300그램 더 올려서
삼겹살 두 근 반을 샀다
솥뚜껑 불판 위에 오르면
투뿔 한우나 삼겹살이나
고기가 거기서 고기(중략, 105p)
이 책은 도서관에서 바라본, 인간 만사 축소판이며 만화경이다. 1부 웃음의 서가, 2부 인생의 서가, 3부 서가의 안쪽, 4부 추억의 서가, 5부 꿈의 서가 등으로 구성됐다. 일단, 1부를 깔깔거리며 읽었다. 곳곳에 웃음 터지는 포인트가 많았다. 작가의 해학과 재치가 돋보였다.
그중에 내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4부였다. ‘1.5톤의 짜장면’이라는 글을 읽을 때 코끝이 시큰거렸다. 작가가 일곱 살 때, 짜장면을 먹고 싶어서 친구와 손을 잡고 아빠 회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아빠는 1.5톤 트럭으로 고된 일을 하면서 차고지 옆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웠는데 말이다. 그런데 어른이 된 어느 날, 작가는 눈앞에 솜을 잔뜩 실은 1.5톤 트럭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 아버지가 느꼈을 삶의 무게를 가늠하게 된다. 그 트럭에서, 젊은 날 아버지가 말없이 삼켰을 고단한 슬픔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나는 요즘도 팔순이 넘은 아버지에게 짜장면을 사달라고 조른다. 도시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노년은, 다행히 낡은 도시의 재개발 덕분에 조금은 나아졌다. (176p)
4부에는, ‘금광을 두고 금반지를 팔았네’라는 글도 있었다. 작가의 동료가 애들에게 시리즈 전집을 사주려고 금반지를 팔았었다고 했단다. 요즘 같으면 그런 건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도서관을 '금광'이라고 빗대어 말한다.
도서관을 금광이라고 하는 말에 공감이 됐다. 요즘같이 금값이 비쌀 때, 도서관을 금광에 비유하니 도서관의 가치가 더욱 올라갔다. 사실, 나도 이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었다.
요즘 나는, 읽고 싶은 책이 부쩍 많아졌다.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이후에, 나는 독서에 재미가 붙었다. 지난해, 한강 작품 모두를 다 구매했다. 그 이후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책을 알게 되면 그때마다 샀다. 그러다 보면, 온 집이 책으로 에워 쌓일 판이다.
그래서 20년 전에 만들었던 대출증을 모바일 대출증으로 갱신했다. 도서관 이용이라곤 하지 않던 내가 이제 뻔질나게 도서관을 들락거린다. 이제, 나도 도서관!
‘60대 중반인데 도대체 뭘 하겠다고
그토록 자주 책을 대출하는지?’
대출한 책을 무겁게 들고 나오는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다 늦게 이럴 줄 알았더라면, 젊었을 때 책을 좀 읽어둘걸. 그땐 노느라, 또한 살기에 바빠서, 책 읽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랬던 지난날이 지금은 후회됐다.
그래도 팔순을 바라보는 김훈 작가가 <허송세월>이라는 산문집을 발간했고, 106세 김형석 교수가 책을 출간했지 않은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않는다면 여전히 나이 든 게 아니다. 요즘은 나이의 개념이 거의 평준화된 것 같다. IT를 다루는 면이나 직장 생활하는 것 등에서 나이 때문에 뒷방 신세가 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이가 들었어도 젊게 사는 사람이 꽤 많다. 그래서 대출한 책을 들고 가는 일이 힘들지 않다는 기백으로 도서관을 나왔다.
아무튼, 금반지를 팔지 않더라도 읽고 싶은 책은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대출 앱 ‘리브로피아(내 손 안의 도서관, 모바일 서비스: 도서관 자료 관리시스템과 직접 연동하여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에서 희망 도서로 신청해 두었다가 대출한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대출하면 된다.
잠시 이야기가 딴 데로 흘러갔다.
《삶은 도서관》이란 책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5부에 실린 글, ‘가을 서정과 통증 사이’라는 글도 감동적이었다. 가을이 되어 두통이 잦아졌다는 작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그 통증은 턱관절 때문일 수도 있고, 치통이나 비염일 수도 있을 듯했다. 그 지독한 통증을 안고도 일상을 차분히 이어가는 작가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삶과 닮아 있었다.
우린 각양 다른 통증을 안고 산다. 자신만이 아는 그 통증, 확 사라지길 바라지만 그게 감쪽같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작가는 이 글을 통하여 그걸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작가는 자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끌어안는 말을 한다.
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시큰거리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치통도 두통도 삶의 모든 고통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246p)
또한 멋진 추천사도 마음에 와닿는다.
‘이 책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가의 첫걸음일지!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출판 평론가 김성신)
인자 작가는 도서관에서 근무하지만, 책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작가다. 그녀는 바야흐로 서가 안쪽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웃음과 위로, 그리고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로 엮어졌다.
《삶은 도서관》이라는 책을 통해 다양한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이제 도서관을 자주 찾는 어느 한 인생이고 싶다. 도서관 노동자의 눈에 반짝 빛날 '골든 에이지'가 되고 싶다.
책을 읽으며
삶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삶을 사는
프라이드 에이징,
길어져 가는 삶을 위하여!
라고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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