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에 갔다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고 할 만큼 이전과는 다른 신분이 되었다.
그렇게 교직에 안착되어 어엿한 교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을 때였다.
숨 막히게 힘들었던 시절을 뒤로하고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화를 받던 남편 목소리가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그날 나는 늦게 출근해도 됐다.
중학교 3학년 담임에게는 학생들의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왔다.
특성화 고등학교 원서 접수 시즌이어서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전화가 왔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면서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었다.
오랜만에 늦게 일어나도 괜찮았다.
그런데 남편이 통화하는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알람이 울리기보다 먼저 깨서 휴대폰 화면을 살펴보았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 있었다.
'이거, 무슨 일 났나?'
섬찟한 생각이 스쳤다. 사람의 촉이란 게 있는 게 맞다.
“OO이가? 넘어졌다고? 많이 다쳤어?”
남편은 연이어 질문을 해댔다.
남편이 자기 폰을 스피커 기능으로 터치하니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약속해요. 놀라지 않겠다고.
아빠는 어른이니까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을 수 있죠?”
등골이 오싹했다.
폰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잔뜩 겁먹은 딸의 얼굴이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그 전날, 늦게까지 아들과 함께 우리 가족 넷은 단톡방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받았다.
카톡이란 게 막 시작되던 시절이라
가족 단톡방에서 문자로 나누는 수다가 어찌나 재미났는지 모른다.
그런 후에 우리는 잠이 들었다.
딸은 밤새 우리와 통화가 되지 않아서 억장 무너지는 시간을 감당했겠다.
딸에게 그 밤은 생지옥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자전거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쳐서 수술했다고.
아들과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이던 딸이 전해주는 말로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포항으로 꼭 와야 한다는 딸의 말에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다.
갑자기 생긴 일탈이라 여행 가는 것처럼 설렜다.
그러나 아들이 머리를 다쳤다고 해서 불길한 마음이 중간중간에 밀고 올라왔다.
우리 부부는 비행기 표를 예매한 후에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때아닌 여행길에 오르는 기분으로 사뭇 설렜다.
우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탑승구 쪽으로 향하며 아재 개그도 주고받았다.
학교에는 연가 처리를 냈다. 수업계에도 연락하여 시간표 조정을 부탁했다.
"에고, 어쩌다 그런 일이? 하필, 머리를 다쳤군요."
내 전화를 받은 수업계 선생님의 말에 서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비행기 속에서도 내내 딸의 멘트가 맘에 걸리긴 했다.
"아빠는 어른이잖아요? "라고 했던 그 말.
드디어 포항 병원에 도착했다.
아들은 미라처럼, 주검처럼 누워있었다.
의사가 다가와 남편에게 뭐라고 몇 마디 했고 그러자 남편 얼굴이 하얘졌다.
아들은 붕대로 머리를 칭칭 감고 있었고 오른쪽 눈은 흑탄 색깔로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걸 보자니 나도 다리에 힘이 확 풀렸다.
아들은 세데이션이라고 하는 수면 유도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살다가 이런 일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자전거에서 넘어질 때 머리를 다쳐 두개골이 깨지면서
뇌혈관이 파열되어 과다출혈로 인해 그 혈종으로 뇌가 심하게 다쳤다.
전날 밤에, 출혈한 피를 다 뽑아내고 쪼그라들었던 뇌를
다시 원상태로 펴지도록 하는 수술을 받은 상태였다.
생명은 건졌으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아들은, 대학 3학년이었고 네덜란드 교환학생으로 선정되어 있었으며
졸업하면 곧바로 공군 장교로 임관될 예정이었는데...
사고 직후에, 본인이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도착하여 CT촬영 검사를 받았다.
친구들을 불러서 몇 마디 얘기도 나누었다.
"별일 아니구먼. 우리 잠도 못 자게." 친구들은 우리 아들이 호들갑을 떨었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야,
아파도 너무 아파.
당장 죽을 것만 같아.
선생님, 다시 한번 더 촬영해 주세요."
이것이 아들의 마지막 말이었다.
다시 한번 검사하려는 도중에 아들은 동공이 풀어지고 의식을 잃었다.
처음 검사에서 이상 없다는 말에 병원을 나섰더라면 골든 타임을 놓쳤을 것이다.
아무튼 생명만 건진 상황이었다.
잠시 면회한 후에 우리는 중환자실에서 나와야만 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 앞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날 밤에 우리는, 아들 학교 캠퍼스에 갔다. 11월 초였지만 얼마나 떨리고 추웠는지 모른다.
사고 현장 근처엔
아들이
잘 닦아서 세워둔 파란색 자전거가
자기 주인의 안부가 궁금한 듯
어둠 속을 덩그러니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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