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는 듯
금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TGIF!*를 외치며 목요일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그런데 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금요일이 도리어 고된 날이었다.
한 주간 근무를 허겁지겁 마무리한 후에 아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야 했다.
내가 금요일마다 가는 병원은 때때로 바뀌었다.
한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을 수 없었다.
대학병원은 4주간, 재활병원은 3개월 정도만 입원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신촌에 있는 병원이었지만 강남이 되었다가 불광동이 되기도 했다.
서울의 동서남북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병원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입원 짐보따리를 싸들고
또 다른 초원을 찾아 나서는 유목민처럼 옮겨가야만 했다.
일산, 부천, 인천 등 '병원 노매드 생활'이 이어졌다.
아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갈 때 내 몸은 이미 지쳐 파김치 같았다.
그렇지만 간병인에게 일주일에 한 번 유급 휴일을 보장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간병인이 없는 금요일 밤 근무는 내 차지였다.
병원은 잠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잠들지 못했다.
그래도 아들을 곁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양가감정이었다.
자식을 곁에서 보는 것보다 행복한 건 없을 것이다.
비록 소통 제로 상태로 보는 자식이지만 사랑스럽고 반가웠다.
벽창호 같은 아들에게 별의별 얘기를 다 해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아무리 재미있는 얘기를 해도 아들은 눈만 깜빡거리며 묵묵부답이다.
입은 말하거나 뭘 먹으라고 있는 것인데 아들의 경우는
하품이나 하고 한숨을 쉴 때나 입이 필요했다.
"입은 뒀다가 어디에 쓸 거야? 말 좀 해 봐.
그래도 신청도 않네? 뭔 배짱이야? 이런 불효막심한 녀석을 봤나!"
아들을 웃겼다가 골려 먹다가 투정도 부려본다.
그래도 점잖은 아들이 되어버린 그는 말이 없었다.
이윽고 병실의 환자와 간병인들이 잠자리에 들면 아들도 덩달아 잠이 든다.
아들의 긴 하루가 마감한다. 나름 힘들고 버거운 하루였나 보다.
그러면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와 간호사실 앞에 놔둔 휠체어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바느질을 한다.
병상생활 중에는 바느질할 것들이 의외로 많다.
베개를 깁고 떨어진 단추를 달거나 홑이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간호사실 불빛 조도마저 희미해진다.
그땐 별 수 없이 병실로 들어온다.
그 사이에 아들이 소변을 봤다.
그걸 오물처리실에 내다 비우고 돌아와 좁디좁은 보호자 침대에 누우면
나는 누구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훅 밀려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성경에 나오는 초막절이 연상됐다.
초막절은 7일간 집 밖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삶이 나그네와 같음을 상기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장차 올 영원한 처소에 대한 소망을 갖는 절기다.
매주 금요일마다 병원이란 곳에서 초막절을 지키는 사람처럼 지냈다.
현대판 초막절, 다른 말로 구태여 말하자면 병실절을 보냈다.
밤을 병원에서 지새운 이튿날, 토요일 아침은 비몽사몽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수만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전철에 오르기만 하면 밤샘한 티가 제대로 났다.
밤새 똘망똘망,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더니
병실 문만 나서면 졸음이 체면도 없이 쏟아졌다.
한 번은, 복잡한 전철에서 어떤 젊은 분이 자리를 흔쾌히 비켜주며 말했다.
"아이고, 너무 피곤해 보이시네요. 몸이 안 좋으신가 봐요. 여기 앉으세요."
곳곳에 천사가 있는 법이다. 자리를 비켜주는 천사를 봤다.
감사하다는 말을 한 후에 자리에 털썩 앉자마자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다가 내려야 할 역을 놓친 적도 몇 번 있다.
되돌아오는 전철을 다시 타야 할 때마다 속상했다.
몸도 맘도 지쳤으니 영혼마저 탈탈 털리는 듯했다.
집에 돌아오면 모든 게 썰렁했고 산다는 게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6년간, 금요일마다 내 집을 두고 병원에 가서 잠을 잤다.
다시 가라 하면 엄두가 나지 않을 길이다.
금요일 밤마다 병실에서 보내는 삶은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걷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아들이 병원을 떠나 집으로 옮겨와 지내게 되면서 그 생활은 끝이 났다.
그런 걸 보면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이 맞다.
금요일마다 서둘러 병원으로 향하던 일도 다 한 때였다.
금요일에
내 집,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은
천국처럼 행복한 일상이다.
* 'Thank God It's Friday'의 이니셜, "신이시여, 드디어 금요일이네요!"
또는 "아싸, 금요일이다!"라는 뜻으로, 일주일의 고된 업무가 끝나고
주말을 맞이하는 기쁨과 안도감을 표현하는 말.
#초막절
#금요일
#TGIF
#위루관교체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