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세컨 하우스에서 살고...
불의의 사고로 아들은 몇 번의 수술을 받았고 그 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재활치료를 한답시고 6년 동안 입원 생활을 했다.
7년 차부터는 재활 운동 치료에 대한 보험 급여 혜택이 중단되어 아들을 집으로 옮겨왔다.
중증 환자를 집에서 케어하면 활동 지원 서비스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퇴원 후 보름 동안 남편은 혼자서 아들 간병에 매달렸다.
나는 아침마다 아들을 침상 목욕시킨 후에 출근했다.
아침에 보면 아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강직 때문이었다.
안정제가 비교적 과하게 처방된 요양 병원 약을 먹다가
대학 병원에서 조제한 약으로 바꾸게 되면서 온 현상이었다.
그래도 매달 들어가던 병원비, 간병비 지출이 사라지니
우리, 이제 살았다,라는 맘이 들었다.
또한 아들을 아무 때라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8인실에 주로 지냈으니 16명 이상이 한 병실을 사용했었다.
그런 곳에서 빠져나와 쾌적한 환경에서 아들을 돌볼 수 있게 됐다.
아들을 집으로 옮겨온 후, 보름 뒤부터 활동지원사가 배치되었다.
그 이후에도 시(市)에서 추가로 바우처 포인트를 더 제공받았다.
약 1년 후부터는 일주일에 4일 밤을 활동 지원사 도움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마침내 잠깐씩 아들 곁을 떠나 있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집에서 활동지원사와 함께 생활하니 퍽 불편했다.
방학 때는 내가 활동지원사 식사까지 차려야 했다.
한 지붕 밑에 있는데 우리만 식탁에 앉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은, 딸이 우리 집에 며칠 묵어야 할 일이 생겼다.
포항에 살던 딸이 '포그바' 내한 이벤트에 초청받았더랬다.
그래서 나는 딸과 함께 작은 방에서 잤다.
남편은 아들을 간병하느라 큰 방에 있었다.
그렇게 밤 근무를 마친 남편이 잠시 눈 붙일 방이 없었다.
방이 3개지만 큰 방은 아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뒷방에는 경사 침대, 휠체어, 리프트기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급하게 낚시 텐트를 구입하여 거실 앞 쪽에 설치했다.
남편이 거기서 잠시 눈을 붙였다.
전쟁 난민도 아닌데 우리는 그렇게 보금자리를 잃고 말았다.
우리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잠깐씩이라도 쉴 곳이 절실했다.
언제 끝날 지 모를 그런 삶을 계속 살 수는 없었다.
바야흐로 우리에게 세컨 하우스가 필요했다.
그게 맘처럼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1가구 2주택법'이라는 것 때문에 공시지가 1억 미만인 집을 구해야 했다.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해서 차선책으로 투룸 전셋집을 계약했다.
계약과 동시에 주소를 전입한 후 확정일자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들이 있는 아파트에서 피난 나오듯 빠져나왔다.
간단한 짐만 옮기는 이사를 했다.
침대, 옷가지, 세면도구, 주방 도구 등을 챙겨 나왔고
미니 냉장고, 벽걸이 에어컨 등만 우선 구비했다.
그때부터 아들은 우리가 살던 아파트 세대주가 됐다.
우리 집을 아들이 독차지하는 꼴이 됐다.
그래도 밤마다 투룸 전셋집으로 가던 길이 행복했다.
아들을 활동지원사에게 맡겨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더없이 아늑했다.
그 집에서 코로나 팬데믹 때, 비대면 수업도 했고
남쪽으로 난 창너머 하늘은 푸르렀고
때때로 나무 가지에 새들이 와서 지저귀었다.
아들은 주민등록상, 홀홀 단신이 됐다.
그런데 우리가 전셋집을 구해 아파트에서 빠져나간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그 순간부터 아들은 '독거 중증 장애인'이 되었다.
그것은 나비효과가 되어 더 큰 혜택을 몰고 왔다.
아들은 곧바로 기초 수급자가 되어 '24시간' 활동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따라서 24시간 내내 활동지원사들이 교대로 아들을 돌보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됐다.
우리나라 의료 복지 제도, 만세!
아들이 24시간 활동보호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고 나니
투룸 전셋집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잠시 쉬거나 잠만 자려고 얻었던 집이었는데
서서히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해야 했다.
급한 대로 빨래는 아파트에 들고 가서 해오면 됐지만 그것도 눈치 보였다.
처음 전셋집을 얻을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전셋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신접살이할 때처럼 옹색했다.
"나,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눈을 못 감을 것 같아.
내 집을 두고 이런 생고생을 하며 평생 살아야 한다고?"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속에 있던 말을 했다.
그러자 남편도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전셋집을 처분하고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하여
아들과 활동보조팀을 내보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주택법 때문에 아파트를 구입할 수는 없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찾고 찾았더니 '방3, 화2' 신축빌라가 있었다.
구입 자금은, 전셋집을 빼고, 거기에다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작은 빌라를 팔아 해결하기로 했다.
2021년, 그때는 집을 내놓기만 하면 팔렸다.
그 작은 빌라는 부동산에 내놓은 당일 저녁에 팔렸고
전셋집은 내놓은 지 한 시간 만에 빠졌다.
그래서 곧바로 전세금을 돌려받았다.
마치 편의점에서 라면 사듯이,
일사천리로 그 신축 빌라를 샀다.
실매매가와 달리 공시지가는 1억에 살짝 못 미쳤다.
그래서 1가구 2주택법에 저촉되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 산 빌라로 중병 환자를 옮기는 일을 연구해 보니 머리가 무거웠다.
그냥 우리가 그 신축빌라에서 살기로 했다. '방3, 화2'이면 그래도 될 일이었다.
아들이 있는 아파트는 간병하기 위해서만 들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그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그래야 활동보조사들 맘이 편할 테니까.
빌라의 단점은 앞동과의 거리가 좁은 것이었다.
맘 놓고 창을 훤히 열 수 없었다.
그래도 2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그런데 방학이 되어 낮에 집에서 보낼 때면
아파트에서 살 때와 다르게 뭔가 불편했다.
뷰가 없는 빌라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
아파트에 두고 온 파우더실이며, 넓은 화장실도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수납장과 진열장 등이 맥없이 아까웠다.
퇴임을 코 앞에 뒀던 때라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 텐데
슬슬 빌라가 아닌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졌다. 그러나 길이 없었다.
그즈음에 미국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주택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담보 대출 이자가 너무 높아서 대출을 받아 집 사는 일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야말로 주택시장이 풍을 맞았다.
꽁꽁 얼어붙은 주택 매수 심리를 녹일 방법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주택 정책에 관련된 뉴스를 우연히 봤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투기 과열 조정지역에서 해제된다는 내용이었다.
2022년 11월 14일부터 그 주택법이 시행되었다.
그 정책이 의미하는 바는, 2주택자에게 중과되던 취득세가 완화되고
2주택 자에게도 은행 담보 대출이 허락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축 빌라(그때 법이 허락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마련했던 집이었음.)를
처분하고 노후에 지낼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는 신호탄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주택 시장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집 팔고, 집 사기 위한 표]를 만들어 인근에 있는 모든 부동산에 뿌렸다.
밤잠을 설쳐가며 집 팔기와 새로운 아파트 사기에 몰입했다.
우여곡절 끝에 맘에 드는 아파트를 발견했다.
고시 공부하듯 매일 부동산 앱을 들여보다가 내게 맞는 아파트를 찾았다.
그런데 고금리 때문에 집을 사려는 사람은 눈을 닦고 봐도 없었다.
아쉽게도 신축빌라는 팔지 못했다.
대신, 그 빌라를 보자마자 월세로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할 수 없이 DSR *을 이용하여 구입할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았다.
이렇게 하면 집을 못 살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파트 구입하기 열공 모드, 3개월간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아들은 7년째 우리가 살던 집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곳에는 책장이나 커다란 짐, 오래된 짐은 그대로 있다.
24시간 활동지원사들이 릴레이 하듯 바통을 이어받으며 아들을 돌보고 있다.
공동비번, 현관문 비번은 이미 그 의미가 사라졌다.
아무나 드나드는 집이다.
그곳은 집이 아니라 아들이 퇴원 걱정하지 않고
맘 편히 입원해 있을 수 있는 백병동**인 셈이다.
우리는
새로 구입한 29평 세컨 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그 아파트를 구입할 때 받은 대출금을
죄다 갚는데 3년이 걸렸다.
* Debt Service Ratio,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은 연간 소득 대비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원리금) 상환액 비율로, 대출 가능 금액을 결정하는 핵심 금융 지표.
** 백병동: 대학 병원에서 퇴원해야 하는 규정을 벗어나 비급여 병동에서 무한히 지낼 수 있는 병동을 비공식적으로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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