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끝서부터 발끝까지
아들이 6년간 병원 생활하는 동안에 간병인이 아들을 맡아 돌보긴 했지만,
남편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들을 보러 병원으로 갔다.
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퇴근길에 귀가하는 대신
병원으로 가서 아들을 돌보며 밤을 지새웠다.
아들은 투병 생활 14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나는 N개의 일을 하는 N잡러로 살았다.
물론 학교 교사로서의 삶이 최우선이었지만
아들을 돌보는 일에 내가 해야 할 몫이 무척 많았다.
와상 환자 이발시키는 일은 번거롭기 짝이 없다.
목관 삽입한 중환자는 이발한 후에 머리카락 처리가 한 몫한다.
강아지용 ‘댕댕이 바리깡’을 이용한다.
침대에 눕혀 놓은 채로 이발시키는 일은, 그런 난리가 없다.
또한 바느질할 것이 많아서 재봉틀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도 바느질하지 않으면 내 손에 가시가 돋는다"라며,
욕창 방지를 위한 맞춤형 베개, 깔개 커버 등을 만들었다.
환자복은 입히고 벗기기 편하도록 팔을 뜯어서 단추를 달았다.
크고 작은 홑이불을 만드는 등 틈틈이 꿰맬 일이 생겼다.
환자를 휠체어에 태울 때 사타구니에 끼우는 샅바는 태권도 띠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방수포 위에 면시트를 깐 후에 그것을 환자 밑에 깔아놓고
온몸에 비누칠하여 닦아내는 ‘침상 목욕’을 시킨다.
한 사람은 따뜻한 물을 떠다 나르고 두 사람은 양쪽에서 씻긴다.
방안에는 6개의 의자를 펴놓고 여러 개의 수건으로 닦고 닦는다.
그렇게 목욕시키고 나면 세 사람은 땀범벅이 된다.
목욕 후에 아름드리 세탁물을 세탁하여 건조기로 말린다.
목관 튜브 교체를 먼저 한 후에
위루줄 시술 부위와 목관 주위를 드레싱 해준다.
그 일도 내가 도맡았다. 드레싱용 거즈, 면봉, 핀셋 등을 멸균 상태로 보관해야 한다.
교체한 목관 튜브는 과산화수소수에 한동안 담갔다가 씻은 후,
메디록스에 5분 정도 담갔다가 식염수로 헹군다.
그것을 건조한 후에 UV 살균기에 보관한다.
매일 입안을 양치하고 이를 닦아 주어야 한다.
아들은 의식이 없으니 입을 벌려 주지 않는다.
먼저 소금 치약으로 애벌 양치를 한 후에
석션 칫솔로 입안을 다시 양치질해 준다.
음식을 씹지 않은지 오래되어 잇몸이 약하다.
환자와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 양치해야 한다.
자칫하면 칫솔을 깨물어 피가 나기도 한다.
또한 양치하는 도중에 물이 기도로 넘어갈 수 있다.
중환자들은 눈을 자주 깜빡거리지 않기 때문에 눈곱이 말라서 각막을 상하게 한다.
그래서 의료용 보호 렌즈를 착용한다.
그것을 교체해 줄 때 환자가 고개를 돌리며 눈을 꾹 감아 버린다.
렌즈를 넣는 사람, 고개를 붙드는 사람, 눈을 크게 벌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세 사람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렌즈 교체하는 일을 해낼 수 없다.
병상 일지를 적고 있어서 언제 변을 볼지 가늠할 수 있다.
배변을 뉘는 일도 내 차지다. 요즘은 규칙적으로 배변을 보니 그나마 낫다.
휴대폰 캘린더에 아들의 배변 예정일을 미리 표시해 둔다.
배변하는 날에는 가급적 먼 곳으로 출타하는 일을 피한다.
그 외에도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중증 환자 한 사람을 돌보려면 거국적인 손길이 필요하다.
코털 깎이가 있긴 한데 그걸 사용하면 아들이 싫어한다.
그래서 면봉을 코털 밑에 가져다 대고 둥근 날 눈썹 가위로 잘라 준다.
눈물을 흘리거나 인공 눈물을 간간이 넣어주기 때문에 귓속이 젖는다.
그래서 핸드타월에 물기를 살짝 묻힌 후에 면봉에 감아 귀지를 닦아 낸다.
손톱은, 튐 방지 손톱깎이로 깎아 준다.
그래도 하품할 때나 기지개 켤 때 손톱으로 긁으니
순면 메리야스 천으로 만든 벙어리장갑을 끼워놓는다.
방문 간호사가 드레싱 해주는 거즈는 부직포다.
그것 대신에 목관 주위엔 7.5mm로,
위루관 부위엔 10mm짜리 멸균 거즈를 사용한다.
목관 고정끈도 벨크로 끈이라 면끈을 사용한다.
아들 목둘레에 맞게 1년 치를 미리 꿰매어 만들어 둔다.
또한 목이 썰렁해 보일 때는 목수건을 해준다.
그런데 목관이 있으니 손수건을 대각선으로 접어
가운데 구멍을 내어 목관 튜브를 통과시켜 목에 둘러 준다.
환자들은 대체로 환의만 입는다. 그러면 보온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환의 속에 반드시 순면 메리야스를 입힌다.
그러려면 위루줄 경장 영양식 투입구가 메리야스 밖으로 나와야 하니
메리야스에 적당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환자용 깔개도 부직포다. 그것이 엉덩이에 닿으면 피부에 좋지 않다.
생각 끝에 깔개를 싸는 싸개를 순면 원단으로 만들었다.
이 깔개 싸개는 엄지척 히트 작품이다.
그 덕분에 아들은 14년 동안 욕창 한 번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응가를 한 날에는 그 싸개에 잔변이 묻을 수 있으니
유색 면으로 만든 미니 깔개를 덧깔아 놓는다.
일반적으로 와상 환자들은 바지를 입히지 않은 채 이불만 덮는다.
바지를 입히거나 벗기기 불편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엉덩이 부분을 다 도려내고 바느질하여 침상용 바지도 만들었다.
아들에게 필요한 의료용품 구매하는 일은 내 담당이다.
어떤 때는 여러 가지가 동시에 재고가 떨어지기도 한다.
수납장을 잘 체크하여 간병 용품을 미리미리 챙겨서 사둔다.
그러다 보니 단 하루도 택배가 오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무얼 하지 못하면 품이 많이 든다.
아들을 케어하는 사람이 11명까지 된 적도 있었다.
활동 지원사 6명, 우리 부부, 그리고 시각 장애인 안마사,
그 안마사를 모시고 오는 활동지원사, 그 팀을 라이딩하는 운전기사 등이었다.
가정의학과에서 매달 한 번씩 방문하여 아들의 목관을 교체해 준다.
얼마 전부터는 의료 왕진팀 방문 서비스도 받고 있다.
크로닌의 《성채》에서 읽었던 왕진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다니.
의료 왕진팀이 직접 환자에게 방문하여
보호자로부터 구체적인 상황을 전해 듣고
혈액 검사, 바이탈 체크, 간단한 약 처방 등을 해주니 참 편리했다.
환자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일이 쉽지 않은데
의료팀을 가정에서 맞이하는 것은 감동과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료 복지에 감동하며 살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한 화답으로라도
아들이 기적처럼 회복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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