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펼쳐진 무대에서 빛을 발한다
병상에 누운 아들을 돌보며 교사로 근무했고,
학교 일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아들을 돌봤다.
그러는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이 몰려왔다.
그때 아들은 이미 병원에서 집으로 옮겨 온 후였다.
그래서 아들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집에서 보냈다.
아들이 집으로 옮겨 온 건 팬데믹을 미리 예감한 듯한 처신이었다.
입원하여 지냈더라면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코로나가 확산되던 즈음, 감염에 민감했던 곳 중 하나가 학교였다.
학생들은 등교하지 못하고 비대면 수업을 받았다.
처음, 한두 주간은 EBS 온라인 클래스에 학습지를 탑재하여 과제를 부여한 후
대면 수업 기간 중에 그것을 제출하면 검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점점 그 기간이 길어지니 원격 대면 수업을 반드시 실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 과도기 과정에서 교사들은 우왕좌왕했다.
주당 1시간인 과목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수업 장면을 촬영하면 됐지만
영어 과목은 주당 4차 시라 그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PPT 슬라이드 쇼로 영상 만들기를 시도했다.
더군다나 영어 교사용 CD에는 미디어 학습 자료가 무궁무진했다.
본문 입체 원어민 발음으로 낭독하는 애니메이션 영상은 물론이거니와
문법 PPT, 학습지 자료 등이 가득했다.
수업 장면을 녹화 촬영하는 대신에 수업용 PPT를 잘 만든 후에 그것을
영상으로 변환하여 온라인 클래스에 탑재했다.
그 방식은 어색한 수업 장면을 촬영하는 것보다 좋았고 퀄리티도 괜찮았다.
전문적인 미디어 학습 자료를 그대로 송출할 수 있으니
마치 교실에서 직접 수업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젊은 선생님들도 그 방식을 배우러 내 자리로 몰려들었다.
수업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이나 자유 학기 수업용 영상도
온라인 클래스에 세팅하여 올렸다.
다행히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허둥되지 않고 그 원리를 곧바로 이해했다.
마치 그 난리를 한 번쯤 겪어본 사람처럼 차분히 잘 적응했다.
내속에 IT 재능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살았었다.
늦깎이로 교단에 섰는데 이런 상황에서 버벅댔다면 민망했을 것이다.
그것에 앞서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같은 교무실에 근무하던 동료 교사들은
나더러 ‘EBS 선도 교사’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그리고 급하면 나를 불렀다.
나는 AS요원처럼 부르는 곳으로 달려가 해결하곤 했다.
한 번은 정보부장이 나를 불렀다. 뭐가 안된다며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이러저러하다고 설명을 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똑똑해요?" 라며 신기한 듯 나를 쳐다봤다.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상황이었고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었다.
그런데 난 그런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EBS 온라인 클래스 수업 자료를 올리거나 학생들을 관리하는 법 등,
온통 새로운 것들 투성이었다.
나의 비법은 팝업으로 뜨는 매뉴얼을 여러 번 읽고 숙지하는 것이었다.
그 매뉴얼대로 하면 안 될 게 없었다. 그게 나의 비밀 병기였다.
다른 동료들에게 알려주다 보니 나는 점점 디지털 달인의 수준이 되어갔다.
온라인 강좌에 대해 나의 노하우를 알려 줄 수 있다는 게
내심 뿌듯했다. 그 반대 상황이었다면 민폐를 끼칠 뻔했다.
얼마 후부터는 화상 수업을 반드시 하게 됐다. 당분간은 줌(ZOOM)으로 수업했다.
그러다가 EBS에서 ZOOM과 같은 화상 수업 기능을 탑재하여 점점 그 기능을 이용했다. 줌 상단에 있는 모든 기능을 혼자서 다 클릭해 봤다. 기능이 엄청 많았다. 그런 건 잘 활용하면 편리하기 이를 데 없다.
ZOOM을 처음 시작할 때도 나는 곧장 모든 기능에 익숙해졌다. 내가 척척 줌 기능을 잘 활용하면 학생들은,
"헐~ 대박, 쌤, 짱이에요."라고 하면서 손가락 하트를 날려 주었다.
그럴 때 느끼는 스릴 감은 느껴본 자만이 안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길에서 급식실 조리사가 말했다.
"요즘 너무 수고 많으시죠? 나이 든 선생님들은 정말 힘들겠어요."라고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들면 느리고 뒤떨어진다는 것이 일반화된 상식이다.
그분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그 물결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내 몫을 잘해나갔다.
나도 몰랐던 디지털 다루는 칩이 내 속에 내재되어 있었기에
그 어려운 시기를, 풍랑을 이용하여 더 빨리 가는 배처럼 술술 잘 넘겼다.
딸내미가 개발자인 것이, 내가 디지털을 쉽게 다루는 성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몰랐던 재능이 내게 있었던 것처럼
학생들도 숨겨둔 발톱이 있었다.
학생들은 대체로 착하고 예의 발랐다.
학교 밖에서 보는 학교는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면이 꽤 많다.
그러나 막상 학교 내에서 바라보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보지 못했던 학생들의 모습을 '스포츠 데이'나 '학교 축제'에서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지닌 재능이 달랐다. 장기(長技)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게 된다.
영어 에세이 쓰기 대회에서, A는 마치 우리말로 쓰듯 글을 완성한다.
글씨는 폰트체요, 영어 에세이답게 서론-본론-결론의 명확한 구조를 갖추고,
주제 문장(Topic Sentence)과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며,
반복을 피하고 자신만의 독창적 관점을 제대로 담은 글이다.
처음에는 쉬운 주제로 에피소드를 활용해서 쓴 후에
점차 논리적 구조와 다양한 표현으로 쓱싹쓱싹 써낸다.
"너 혹시 외국에서 살다 왔니?"라고 물어봤다.
"아뇨."
A는 부끄러움이 많고 말이 없으나 영어 에세이를 쓸 때는
날개를 단 듯하고 물을 만난 물고기 같다.
B는 AI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
AI 그림과의 차이점은, B의 그림에서 숨결이 느껴지고 인간미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법을 학원에서 가르쳐 주는 모양인데
배운다고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릴 수 있을까?
타고난 B의 그림은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 소장해도 손색없을 것 같다.
C는 영어 시간에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지겨워 미치겠다는 표정이더만
축구공만 있으면 눈빛이 달라진다.
어쩌면 C의 발끝에 투명실로 공을 묶어두었는지도 모른다.
공은 그만 따라다니거나 그가 가라는 대로 굴러간다.
그의 발에서 출발한 축구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가기 일쑤다.
"조용히 해!" 한마디로 교실을 조용하게 하는 카리스마 짱,
반장 D는 어디서 그 배짱이 나오는지.
애들은 담임보다 교과 담당 교사 보다 D의 말을 잘 듣는다.
그런다고 D가 폭군은 아니다.
소외된 학생을 챙기고 담임이 없는 교실에서
애들이 어디로 빠져나갈까 야무지게 잘 관리한다.
이런 D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내가 살아야 할 텐데...
타이포셔너리 창안에 천재인 E는 말이 없다.
그러나 자유학기 동아리 시간이 되면 도화지를 받아 들기가 무섭게
다양한 디자인을 창안해 낸다.
AI도 E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흉내 내지 못할 것이다.
담임으로부터 E의 가정 형편을 전해 들은 적 있다.
그런 환경 탓이었는지 E는 숫기가 없었는데
타이포셔너리 시간만 되면 몽글몽글 아이디어를 구름처럼 떠올린다.
대기업에서 E를 스카우트하면 독창적인 도안은 걱정 없을 것이다.
재잘거리는 애교쟁이 F도 참 특이한 캐릭터다.
F 어머니는 우리 학교 수학 교사다. 다른 학년 담당이긴 하지만.
다음 해는 그 교사가 상피제 때문에 다른 학교로 이동해가야 했다.
F를 그런 인성으로 길러낸 그 교사가 남달라 보였다.
'공부가 중요해.'라고 가르치지 않고
솔직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지켜봐 주는 양육 방식으로 F를 길렀나 보다.
F는 영어를 정말 못했다. 사교육을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사교육을 시키려고 했더라도 맹랑한 F가 싫다고 했을 수도 있다.
"나, 공부 싫어."
보진 않았지만 F가 단칼에 거절했을 것 같은 장면이 연상된다.
F는, 공부! 그런 건 잘해도 되고 못할 수도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수업 시간에 앞자리에 앉아서 창밖을 보거나 낙서를 할 때도 있었다.
내 수업 가방에 달린 인형키링이 얼마 짜리인지 묻질 않나
그걸 자기에게 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년말이 되니 마침내 F가 영어 수업에 취미를 붙이고
영어에 조금씩 눈이 틔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F는 퀸텀리프*로 영어 달인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탤런트가 있다.
*짧은 기간에 매우 놀랍고 급격한 발전이나 변화를 의미하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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