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를 부탁해!
▷ 어머니를 버려두고...
대구 여동생 집에서 지내셨던 어머니는
뇌 연화증 진단을 받으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그 병은, 뜬금없이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며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빠가 사는 울산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그곳에서 2년 정도 지내셨는데 어머니는 부적응 어르신이 되어 연일 말썽을 피웠다.
공직에 있었던 오빠는 비상 연락을 받고 요양병원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걸핏하면 보호자 호출이 왔기 때문이다.
다른 환자들과 투닥거리는 일이 잦아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부터 퇴출명령을 받고 말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나온 후에 모실 만한 자식이 없었다.
우리 5남매는 제각각 어머니를 모실 형편이 못 됐다. 그러자 진주 여동생이,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모실게."라며 어머니를 도맡았다.
진주 여동생은 대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해서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기꺼이 돌보겠다고 했다.
진주 여동생 아파트 근방에 1층 빌라를 월세로 얻었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적응을 잘하시면 기거할 집을 장만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제대로 걷지 못하셨다.
요양병원에 병문안 갔을 때마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운 채로 뵈었으니 미처 그걸 몰랐었다.
혼자 일어설 수도 없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몸이 약한 여동생에게, 어머니를 변기에 앉히는 일이나 목욕시키는 것이 버거웠으리라.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요양사 도움을 받았지만
여동생은 인대에 무리가 왔고 손목뼈가 골절되기도 했다.
동생이 팔에 깁스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부랴부랴 어머니를 받아줄 요양원을 수소문했다.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어머니를 그곳에 버려두고 산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머니 노년에 수발들 수 없는 내 처지가 참 싫었다.
중증 환자 아들을 간병하는 우리가
어머니까지 모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진주는 워낙 먼 곳이라
일 년에 한 번 정도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니 어머니는, 내게 저 세상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아직 어머니가 버젓이 살아계신데 내다 버린 것 같은 맘이 종종 든다.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낼 때도 있다.
눈앞에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니 문득문득 잊게 된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싶어도 어머니는 가는귀가 어두워서 제대로 듣지 못하신다.
어느 날이었다. 동생이 어머니 영정용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 사진을 보니, 어머니 얼굴은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돌아가실 즈음에 영정 사진을 찍을 게 아니었다.
미리 쓸 만한 사진을 찍어둬야 하는 것이었다.
눈을 떴다고는 떴을 텐데 어머니 눈은 감겨 있었다.
틀니를 빼놓은 어머니의 모습은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천하무적 여장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쪼그라진 요양원 어르신일 뿐이었다.
어머니의 표정은, 이생의 모든 인연과 다사다난했던 일을
이미 다 내려놓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그 사진을 쳐다보다가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많은 걸 해주셨는데 저는 이게 뭐예요? 죄송해요.
불효막심한 딸을 용서하지 마세요." 쉽사리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묵촌 앞 열 마지기 논에서 타작한 벼 가마니를 리어카에 잔뜩 싣고
펄펄 나시던, 그런 어머니가 아니었다.
대형트럭에 실려 온 연탄을 각 가정으로 배달하던 여장부 어머니도 아니었다.
찰진 욕을 아버지께 퍼붓던 기세 당당하던 어머니도 아니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어머니를 부탁했을까?
부는 바람아, 날아다니는 새야,
내 어머니를 부탁할게.
어머니가 자식들을 볼 수 없는 요양원에 홀로 계시는데
그냥 일상에 떠밀려 사는 나를 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정 사진을 보니 어머니의 마지막이 코 앞에 다가온 듯했다.
굴비 정찬을 정성껏 차려 어머니께 밥 한 상 올리고 싶은 마음이 근래에 일어났다.
단 한 번도 어머니께 제대로 된 식사를 해드리지 못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며 산다고 어머니한테 이토록 소홀했던고?
굴비 정찬 차려드리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갔다.
길이길이 내게 한으로 남을 일이다.
▷ 어머니 덕분으로...
오빠 내외는 부부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진주 여동생은 노인 복지센터장이다.
셋째 여동생은 사업을 하는 탄탄한 자산가다.
막내 남동생은 독일에서 선교사로 지내다가 지금은 영국에서 사역 중이다.
심심산골에서 어머니가 우리를 잘 키워주셔서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 어머니 죄송해요.
- 어머니 감사해요.
- 어머니 덕분에 저희가 잘살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어머니와
소통할 수 없으니
인생이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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