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때 교사였다

- 어느덧 정년 퇴임

by Cha향기

교사는, 수업하는 것과 담임을 맡는 일 외에도

분장된 업무가 따로 있다.

내가 맡았던 업무 중에 몇 가지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 일들이 기억에 생생하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과밀 학급, 과대 학교였으나

도서관에 사서 교사가 배치되지 않았다.

사서 교사가 한 번 근무했던 학교에는 몇 년 지난 후에 재배치되는 시스템이었다.

그즈음 3년 동안 도서관 업무가 내 일이었다.


주로 신규 교사에게나 맡기는 업무였는데 비담임이라서 그런 일을 불사해야만 했다.

도서부 학생 40명, 학부형 사서 도우미 40명이 도와주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을 관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국어 교사나 수학 교사라면 도서관 업무가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맡게 되었으니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매년 1,500만 원어치 신간을 구매하는 일 등, 도서관 운영은 만만하지 않았다.

졸업생을 제적 처리하고 신입생을 등록하는 전산 업무는 혼자 해내기 쉽지 않았다.

무인도에서 살아내야 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래도『도서관 운영』이라는 가이드 매뉴얼을 보면서 차근차근 따라 했다.


대출과 반납 업무는 대부분 도서부 학생들이나 사서 도우미들이 맡았다.

그러나 도서관이 나의 교무실이었으니 학교에 있는 동안 개인 시간이란 게 없었다.

일주일에 22시간이나 되는 수업을 하고 방과 후 수업도 하는 영어과 교사인데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도 도서관에 머무르니 틈 없는 학교 생활이었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에 수행평가를 채점하거나 원격 나이스 서비스(EVPN)로 일을 해낼 때가 많았다.

남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또 더 늦게 퇴근했다.

도서관 업무라는 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수명이 1~2년은 단축될 것 같아.

책벌레와 책먼지는 물론이거니와

눈만 뜨면 도서관에 몰려오는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혼이 날아가니까 말이에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도서관 업무를 썩 잘 해내진 못했다.

도서관 명맥 유지 혹은 사서 없을 동안 버티기 수준이었던 것 같다.

전담 사서라면 수업도 없거니와 전문 분야이니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일 처리 잘해두세요. 내년에 학교 전체 감사가 있어요."라고 교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전문 사서가 아니니 뭘 잘 못하는지 모르니 겁이 나지 않았다.

마침내 우리 학교에도 사서 교사가 배치되었다.

그때야 내가 했던 도서관 정리의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들릴 때마다 보면 새로 부임해 온 사서 교사는 도서관을 잘 정리하고 있었다.

애지중지하며 도서관을 관리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밀쳐두었던 일을 꺼내어 처리하고 있었다.

내가 도서관 말아먹기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 업무를 하는 동안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져 애로가 한층 더했다.

도서 소독기를 구매했고, 대출과 반납에도 몹시 번거로운 일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 책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책을 읽지 못했다.

풍요 속의 빈곤이랄까? 오히려 책에 질릴 판이었다.

내게는 책이 책이 아니라 그냥 일이었다.


그 외에도 학교 홍보 업무를 맡아 학교 신문을 발행했다.

학생회 임원진들이 기자가 되어 기사를 취재해 오면

그것을 모아 편집하여 신문을 만드는 일이었다.

매월 한 번씩 신문을 발행하려고 학생 기자들에게

학교 행사를 미리 알려 주어 취재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회 회장의 역량에 따라 취재가 원활할 때도 있지만

원고 마감일이 닥쳤는데도 회장이 기자단에게 알리지 않아 다급해지는 때도 있었다.

신문이 완성되면 전지 크기로 출력하여

각 층의 출입문과 급식소 앞 게시판에 한 달간 부착해두곤 했다.

학교 신문이 나붙으면 학생들은 그 신문 앞에 몰려들어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다.

친한 친구가 매스컴을 타서 셀럽이나 된 듯이 학생들이 낄낄대기도 했다.


교원 평가는 교사도 싫어하고 학생들도 싫어하는 제도다.

그렇지만 그 업무를 맡은 교사는 신경이 무척 쓰이는 일이었다.

그것은 일개 교사의 역량이라고 하기보다는

거의 개발자 수준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고난도 업무였다.

천 명이 넘는 학생들과 또 천 명 정도 되는 학부모들을

모든 교사와 매칭시켜야 하는 전산 작업이 필요했다.

게다가 보건 교사나 특수 교사의 매칭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건 교사로부터 수업받는 학생과

그냥 보건실만 이용하는 학생들의 매칭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교과 담당이면서 담임일 경우에 평가하는 매칭도 달랐다.

매뉴얼을 보고 진행하지만 곳곳에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그 시스템은 한 군데만 잘못되어도 매칭해 뒀던 것이 초기화되는 예민한 업무였다.

한마디로 다 헝클어지게 되어 있었다.

교육청에서 지정한 전문 멘토 교사에게 메신저를 통하여 애로를 상담하고

한 단계씩 이해하며 해결해 나갔다. 주위 동료 중에 그 누구도 그걸 아는 사람이 없었다.

평가가 시작되는 당일 아침에 학생 한 명을 일찍 등교하게 하여

평가 문항이 제대로 세팅되었는지 확인할 겸, 내 컴퓨터에서 평가하도록 했다.

혹시 어딘가에 에러가 발생한다면 큰일이었다.

가정통신문으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교원 평가 기간을

미리 다 공지해 둔 상황에서 이상이 생기면 안 될 일이었다.




영원한 건 없다. 늦깎이 교사로 임용되어 18년간 근무했던 교직 생활을 끝내고

정년 퇴임하기에 이르렀다.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생각났다.

내겐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을 학생들은 알 턱이 없었다.

나만 서운하고 나만 아쉬운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마냥 신났고 한 해가 끝난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부풀어 있었다.

'마지막 수업'의 아멜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그냥 평상시처럼 수업했고 아무 일도 아닌 양 교실 문을 닫고 나왔다.


이어서 퇴임식이 강당에서 진행되었고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였다.

내가 학생들 앞에 서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퇴임식에서 대표로 송별 인사말을 했던 선생님의 고별사가 가슴에 닿았다.

그분은 <님의 침묵>이라는 시에서 몇 구절을 인용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퇴임식에 이어 종업식이 끝났다.

1층 로비에서 맞닥뜨린 몇몇 학생들이 울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퇴임이라는 의미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학생들은 내가 다른 학교로 전근 가는 줄로 아는 듯했다.

한 학생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지난해 정말 좋았잖아요. 우리."

그전 해에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그냥 그 학생 등만 토닥거려 주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퇴임 교사를 대표한 선생님의 고별사 핵심이었다. 과연 우리는 이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인연은 거기까지였으리라.


정들었던 교정을 뒤로하고 교문을 넘었다.

나무와 새들에게도 안녕이라고 말했다.

한강의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를 흥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모든 걸 버렸다 해도
위안받지 못한다 해도
당신은 지금 여기
이제는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영혼을 갈아 넣듯이 힘들게 준비하여 들어섰던 교단을 그렇게 떠났다.


마치 다음 날에도
습관처럼
교문에 들어설 것 같이...


P.S. 교원평가를 세팅할 때 일이었다. Y샘은 영어교사였다. 담임이면서 교과로 매칭할뿐더러, 교과 담당으로 도 매칭했다. 영어 수학은 수준별 수업을 하니 자신이 맡은 수준별 클래스(2~3 학급의 학생으로 묶여있다.)와 매칭하고 또 그 학부모와도 별도로 매칭해야 했다. 또한 동 교과 교사끼리 평가하도록 했고 관리자를 평가하게도 매칭했다.


#정년퇴임

#한강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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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사

#님의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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