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 글/그림《지금은 봄, 비 오고 나면 푸른 여름 》
새해에 읽고 싶은 책을 찾는 분에게
예쁘고 재미있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글/그림 작가 문정의 드로잉 에세이를 촉촉한 맘으로 읽었다. 봄비가 내린 날부터 싱그럽게 변하는 여름날 풍경처럼 일상 속 느낌을 담아낸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통영 출신 50대 작가가 쓴 솔직한 이야기는 새콤달콤하다가 짭짤한 맛도 난다.
이 책은, '읽는다'라고 하기보다는
'감상한다'라고 하는 말이 어울린다.
'브런치'에서 나는, 문정 작가가 발행한 글을 빠짐없이 읽었다.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종이책으로 읽었다. 익살스럽고 깨알같이 재미있는 그림과 날 것 같은 글은 더욱 신선했다.
띠 동갑 연하, 독일 남편 '마박이'와의 이국적인 결혼생활,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문화 차이에서 터지는 소소한 일을 그림으로 그릴뿐 아니라 짧은 글로 채웠다. 그림 캐릭터에 점점 정이 들어갔다. 문정 작가만이 지닌 위트와 섬세함에 젖어들게 된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작가는 심각하고 진지하다. 그런 일상에 숨겨져 있던 감정들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됐다.
Part 1 <뉘른베르크의 봄날>에서는 '닿지 않는 1밀리'가 우스꽝스러웠다.
- 차에서 파운데이션을
두드리는데,
코 옆에 주름이 깊게 파여서
아무리 해도
퍼프가 닿질 않는다. (15p)
작가는 나이 듦을, 퍼프를 세로로 세워서 각도를 맞춰 넣어봐도 닿지 않는 1밀리가 있는 것에서 느낀다. 씁쓸하지만 여자가 나이를 인정하게 하는 장면을 글과 그림으로 그려냈다.
Part 2 <한국의 여름>에서는, '엄마의 엄마' 편이 유머러스했다. 이 장면을 보고 또 봤다. 엄마의 엄마를 그려낸 작가다움이 묻어있었다.
- 엄마의 엄마는
사람을 쳐다볼 때는 눈을 내리깔고,
치마를 획 돌려 감아
겨드랑이에 끼고 도도히 걷는데
엄마가 일꾼들과 말이라도 섞으면
거지들과 논다고 나무랐단다. (67p)
이 그림에서, '울엄마'는 표정에 한이 서려 있지만 아우라가 엄청난 여장부다. 엄마는 배경을 다 차지할 정도로 클로즈업되어 있다. 작가의 맘속에 엄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이 암시된다.
Part 3 <다시 독일, 짧은 가을 그리고 긴 겨울>에서 '다시 낯설게 함께' 부분의 묘사는 능청스러울 정도였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면
집의 정돈 상태나 침실 냄새
이런 것들이 낯설다.
그중에서도 남편이 제일 낯설다. (125p)
이 그림을 보면 절로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부부가 침실에서 파자마 룩으로 누워있는 모습이 그렇다. 다소 해학적이기도 하다. 함께 누웠으나 서로 돌아 누워있는 모습이 꽤 리얼해 보인다. 아무리 그런다고, 외국인들이 바지를 곧추 올려 입지 못하고 밑으로 쳐지게 입는 모양새를 잠옷 차림에서도 그대로 그려내다니. 그냥 무심하게 곡선 하나 슬쩍 그려두었을 뿐인데 그 삐져나온 엉덩이에서 독일산 방귀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외간 남자가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이라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것도 엉덩이를 반쯤 깐 자태로. 그런 와중에도 부부는 사랑에 취해 볼이 빨갛다.
Part 4 <다시 한국, 봄을 기다리다>에서, '3만 원짜리 진주 목걸이'는 작가의 한국에 대한 부심을 엿볼 수 있다. 독일 남편 마박이가 남포동에서 3만 원짜리 진주 목걸이를 사줬단다. 그래도 맨투맨 위에 무심하게 척 걸치고 산다. 따라서 작가는 꾸안꾸* 패셔니스트다.
-한때는
가방, 신발, 옷, 액세서리를 사러
홍콩, 밀라노, 도쿄 돌았었다.
지금은 다 한국에 있다.
이십 년 전에는 유럽이나 외국에 나갔지만,
이제는 영감을 받으려면
서울로 가면 된다. (225)
이 책은 대출해서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닌 듯하다.
예쁘고 깜찍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림은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50대를 바라보는 사람이나 나이 50을 지나 버린 모두에게 감성을 불러일으킬 글과 그림이 가득하다. 그래서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는 애장, 소장용인 것 같다.
그림에 글이 있고 글을 읽으면 재미있는 그림이 연상됐다. 겨우 몇 줄 되는 글 속에 깊은 사유와 웃음을 머금고 있다. 문정 작가만의 통찰이 가득했다.
커피를 아껴 마시듯,
뷰 좋은 카페에서는 더욱 천천히 마시듯이
이 책을 음미하며 보고 싶다.
*'꾸민 듯 안 꾸민 듯'의 줄인 말
지금은 봄, 비 오고 나면 푸른 여름 문정 (지은이), 책 읽는 수요일(2025)(책 정보)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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