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남동구 모래내 시장
매주 한 번씩 산책을 함께 다니는 지인이 뜬금없이 시장 구경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집 근처에도 전통 시장이 있지만, 인천 남동구에 있는 모래내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자동차로 몇 번 가 본 적 있는 곳이다. 마음이 바빠서 부침개, 생선 등 몇 가지 음식만 후딱 산 후에 선걸음에 돌아오곤 했다.
집에서 모래내 시장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인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가 인천 시청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 두 정거장만 가면 목적지, 모래내시장역이다. 시골 촌놈 서울 구경하듯이 시장 구경에 나섰다. 시장에 들어서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어슬렁거렸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빌딩 숲 사이에 쏙 들어앉은 모래내시장은 꿈틀거리는 활어 같은 곳이었다. 넓은 대로를 중심으로 수많은 상점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뭐든지 다 있네요."
"그러네요. 중소 브랜드 가게들도 많은걸요."
"아주 발 디딜 틈이 없어요."
"명절 대목 앞인 다음 주에는 사람에 치일 것 같은데요."
"물건이 다 싱싱하고 값도 저렴하네요."
우리는 좌우를 둘러보며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었다. 인파 속 너머로 호떡이라는 큰 간판이 보였다. 당 폭발이 겁나서 좀처럼 먹지 않던 호떡이지만, 감성 돋게 종이컵에 하나를 구겨 넣어 꼬치로 찍어 먹어 보고 싶었다. 호떡을 사려면 줄을 서야 했다.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기다렸던 호떡을 받아 들고 맞은편 카페테라스 벤치에 앉았다. 호떡을 먹으며 하늘을 보니 세상 부러운 게 없었다.
본가에서 모래내 시장으로 떠날 때, 아들을 돌보는 활동지원사가 "시장에 가면 꽈배기를 사 오셔야죠"라고 했다. 그 말이 생각나서 대형 꽈배기 가게 앞에 섰다. 감기로 며칠간 두문불출 중인 남편에게도, 아들을 돌보고 있는 활동지원사들에게도 달콤한 꽈배기와 단팥 도넛을 건네주고 싶었다. 시장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호떡도 사 먹고 꽈배기도 샀다.
눈썰미 좋은 지인이 말했다.
"이 잔멸치 맛있어 보이네요."
"드셔보세요. 짜지 않고 맛있어요."라며 가게 주인이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제가 사 드릴게요."
지인이 잔멸치 두 봉지를 덥석 산다.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제일 좋아하시잖아요. 맛있게 드세요."
아, 30년 지기 지인은 내 입맛도 다 꿰뚫고 있다. 지인이 사 준 잔멸치에 꽈리고추를 넣을까, 청양고추를 다져 넣을까? 그런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삶이 지루할 땐 시장에 가라는 말이 있다. "시장 구경을 하고 가니 뭔가 생기가 돌아요" 그렇게 말하는 지인의 표정이 환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문득 헬렌켈러 생각이 났다. 급성 열병으로 시각과 청력을 상실하면서 말까지 못 하게 되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었으나 이 모든 장애를 이겨냈던 헬렌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냈다. 그녀는 그 셋째 날에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길 모퉁이로 나가,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싶다. 도시의 여기저기에서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눈여겨보며, 그들이 어떻게 일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다."라고 했다.
시장이나 큰길 모퉁이에서 많은 사람의 표정만 읽어도 생기가 돈다. 독서나 영화에서 받을 수 없는 온기가 닿는다. 시장 안 점포를 차지하지 못한 노파들이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한 길 가에 앉아서 대파나 푸성귀를 팔고 있었다. 그들의 에너지가 얼어붙은 콘크리트를 무색하게 했다.
집에 돌아오니, 군것질이라곤 하지 않던 남편이
"시장 다녀오는 사람은 빈손으로 오면 안 되지"라면서
꽈배기와 단팥 도넛을 반겼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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