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채수아 작가 <사람을 사랑하는 일>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모름지기 받을 훈련이 있다고 본다. 책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작가는 소곤소곤 그걸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 과정을 겨우 통과했으니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훈련을 잘 받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책은, 상처받은 마음이 마침내 치유되고 단단하게 회복되는 이야기였다. 수녀가 되고 싶었던 작가는 그 길을 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결혼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 시어머니의 거친 말투와 악담에 작가는 만신창이가 된다.
작가는 상처받으면서도 시어머니를 가엽게 보는 양가감정을 안고 산다. 결국 우울증 약을 먹게 된다. 스트레스가 병이 된 작가는 더 이상 교직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40대 초반에 교직을 떠난다. 작가는 책 곳곳에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하신 작가의 아버지는 누구나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작가는 아버지를 든든한 버팀목으로 삼고 살았다.
오빠에게나 나에게나 너무나도 특별했던 아버지의 존재! 우리는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일까? 길을 잃고 헤맬 때,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주저앉아있을 때, 가끔은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힘들어할 때,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존재가 있으니까. -156p
이 부분을 읽을 때, 내 눈에서는 두 가지 빛깔의 눈물이 떨어졌다. 좋은 아버지를 둔 작가가 부러웠던 눈물과, 또 한편으로는 힘들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작가의 아린 맘이 내게 닿아 흘린 눈물이었다.
작가는 지극히 착하고 자존감도 높았다. 건널목 옆에 허리가 90도로 굽어진 할머니가 파는 상추를 무려 다섯 봉지나 산다. 그리고 봉투에 들어있는 10만 원을 그 할머니께 전하며 고기 사서 드시라고 말하는 분이다. 또한 친정 쪽 조카네가 IMF 때문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전해 들었을 때, 대출받아 사업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약하디 약한 교사를 괴롭히는 교감 앞에 가서 '일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시라'라는 말을 용감하게 한다. 비겁하게 살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 영향이었단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도중에 작가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났다. 때로 위선적이었고, 솔직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비겁하게 살았던 일들이 나의 내면에서 울렁댔다. 나만 알고 있는 못난 마음을 다 들킨 기분이었다.
작가는 질투라는 감정 주머니가 없다고 했다. 그건 상상이 안 된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때 가능한 일이다. 작가는 만인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타고났다. 한편으로, 이런 작가의 시어머니에게서 나의 친정어머니 모습이 종종 보였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 자녀를 잘 길러내려고 아등바등 살아오신 것이 일단 비슷했다. 세파에서 거친 악다구니가 몸에 배었던 내 어머니 생각이 났다. 게다가 그런 시어머니를 만나 힘들었을 올케 언니의 입장이 만 번 이해됐다.
아무튼, 거칠고 투박한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작가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상한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어려운 인간관계 기술의 정석을 터득했다.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 사랑하면 허물도 가려지고 미운털이 뽑힌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 먼저는 '측은지심'이나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면 관계에 엉킨 실타래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미 그 단계까지 가 있었다. 그런데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는 관계에 일정 거리를 두는 게 의외로 쉬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시어머니와 분가한 후에 마침내 고질적인 갈등 관계에 치유가 일어난다.
단절이 아닌 자신과 타인의 심리적, 정서적, 신체적 공간을 구분하는 건강한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 관계 기술이다. 명확한 의사 표현, 자기 돌봄을 하면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는 것이 해답이다. 작가는 분가하여 지내게 되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고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고백까지 하게 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이별식'이란 글이었다. 마치 한 편의 인생 영화 끝자락에 악역을 맡았던 주인공이 퇴장하는 장면을 방불케 했다. 그것도 주인공이 애틋하고 정겨운 사람으로 변하여 마지막 호흡을 하는 걸 보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혼연일체가 되어있었다. 이별이 슬프셨는지, 아니면 모두에게 고맙다는 표현이셨는지, 어머니는 눈물을 조금씩 계속 흘리셨고, 나는 그 눈물을 계속 닦아드리고 있었다. 어머님의 숨이 어느새 멈춰 있었다. 어머님은 평화롭고 고운 모습으로, 우리와의 이별식을 마치고 근심이 없는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셨다. -208p
결국 관계 기술의 해답은 사랑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연습하러 이 땅에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죽하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이 있을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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