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읽어보셨나요?

[서평] 문하연 작가 <다락방 미술관>

by Cha향기
IE003583516_STD.jpg ▲ <다락방 미술관>을 읽으니 미술 감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 평단

시골 촌뜨기였던 내가 그림 그리는 것에 트라우마를 겪은 적이 있다. 학교 대표로 사생 대회에 출전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간 것만으로 어안이 벙벙했는데, 낯선 교실에서 <개에게 쫓기는 고양이>를 그려야만 했다.


칠판에 적힌 그림 제목만 쳐다보다가 결국 백지를 냈다. 그때부터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긴 듯하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 해와 꽃과 나무를 그리며 놀았던 내가 동물을 그리는 건 무리였다. 그것도 쫓아가고, 쫓기는 역동적인 모습과 표정을 그려야 했으니 머리가 하얘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날로부터 그림이 싫었다.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미술을 일찌감치 끊었다. 남모르게 겪은 아픔이 한평생 내내 생채기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다락방 미술관>을 읽어 나가니 외면했던 미술에 비로소 화해하는 손을 내밀 수 있었다. 이 '미술 에세이' 속에는 화가들의 인생과 그림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었다. 책에서 말해주는 배경 지식을 가지고 그림을 보니 감상에 도움이 되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 근대 미술(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현대미술(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그 밖의 현대미술(독창적인 기법 창조)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세계 27곳의 미술관도 소개되었다.


책을 읽어가던 중, 초상화나 자화상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화가들은 그런 그림은 거울을 두고 자신을 보면서 그릴까? 사진을 보며 그릴까? 검색해 보니 거울이 자화상 작업의 가장 중요한 도구였단다. 자화상은 화가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내면의 생명력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예술이라고도 했다.


한편, 작가 개인의 감상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베르트 모리조 그림 앞에서였다.

착해지고 순수해지고 싶다. <접시꽃과 어린아이>는 어린 시절 장미 넝쿨이 우거졌던 우리 집과 닮아있다. 작은 시골집 대문 위로 장미 넝쿨이 우거지고 그 아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피어있던 우리 집. 언니, 오빠가 학교에 가면 나 혼자 남아 그 넝쿨 아래서 땅을 파기도 하고 온갖 벌레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 잊고 있었는데 이 그림을 마주하자 그 옛날 집이 떠올랐다.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 어린 내게 무슨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집도 아니었는데. 추억이란 이런 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기만 해도 맘이 그림 속 빛처럼 일렁인다. -67P


IE003583517_STD.jpg ▲'접시꽃과 어린아이' - 작가가 깊은 감상에 젖어들었던 그림

이 책 속에서 세잔, 고흐, 루소, 피카소, 샤갈,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재능에 발목 잡힌 불운의 천재 화가 나혜석의 세계관도 엿볼 수 있었다. 유명한 화가, 고흐를 소개하는 부분은 마치 한 편의 소설 같았다.


고흐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위해 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했고 여의치 않자 벨기에에서 가장 열악한 탄광촌으로 가서 전도사의 길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무거운 석탄 자루를 이고 지고 힘겹게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저들의 비참한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말이다. 그는 마침내 설교 대신 붓을 들었다. -113P


그런 고흐가 거리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그 여인을 모델로 하여 누드화 <슬픔>을 그린다. 그가 고갱을 만나긴 하지만 '같은 모델, 다른 느낌'으로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는 일이 생긴다. 그는 고갱이, 고흐 자신의 초상화를 미치광이 모습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격노하게 된다. 그런 고흐를 견딜 수 없어서 고갱이 떠나려고 하자, 혼자 남겨질 것에 불안한 고흐는 자기 귀를 자른다.


20세기, 피울라 모더존–베커라는 화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서양 미술사를 통틀어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린 여자다. 현대미술로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가 판치던 때인데 그녀는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 등 6점이나 되는 누드 자화상을 그린다.


눈여겨볼 만한 곳은 피카소를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피카소는, 어린 시절에는 성인처럼, 말년에는 아이처럼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피카소가 유명한 그림이 많이 그렸지만,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그림에서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IE003583519_STD.jpg ▲ 피카소 그림,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보다는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인간의 무자비함과 전쟁 자체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림이라고 한다.


오래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른 적이 있다. 그 값지고 고귀한 미술품들 앞에서 감상할 줄을 몰라 주마간산으로 겉만 훑어봤다. 다시 그곳에 갈 수 있다면 이제는 핸드폰을 펼쳐 관련 그림에 대한 사연이나 화가의 일생을 보며 감상하고 싶다. 그러나 기회란 쉽게 오는 것이 아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다락방 미술관>이라는 책은 미술에 대해 틀어졌던 관계를 바로잡게 해 주었다. 이제는 미술 전시회가 있다면 그곳을 다락방 삼아 한참 머물며 감상에 젖을 수 있겠다. 이 책은, 내게 미술 감상에 대한 마중물이 되었다. 그래서 미대 교양 과정 교재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독후 활동으로 책에 나온 그림 하나를 따라서 그려 보았다. 프리다 칼로의 <인생이여 만세>라는 그림 흉내를 내봤다. 수박이라는 정물화를 통해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한없이 부드럽고 쉽게 으스러지는 자기 자신을, 스치는 바람에도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마음을 그렸다.

IE003583522_STD.jpg ▲ 독후 활동으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흉내 내며 그려봤다.


'인생 만세'라는 마음으로
나도
그 화가처럼
수박을 그려봤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7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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