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명절, 내겐 인생 명절

- 명절 타령

by Cha향기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TV에서는 도로 정체에 대한 뉴스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집 앞 도로변에는 많아진 차량을 정리하는 안전 지킴이의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다. 거리에는 선물을 양손에 든 사람들이 바삐 걸어가고 있다.


단톡방에는 미리 명절 휴가에 들어갔다며 다복하게 지내고 있는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모두 꿈틀거리는 명절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평소보다 더 외롭게 명절을 보내고 있는 이웃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그런 이웃들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사각지대에 관한 관심이 생긴 이유는 우리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명절을 쇠게 되어서 그랬다.


이번 명절은 일상처럼 보내고 있다. 별다른 일이 없다. 이렇게 조용하고 편한 명절은 처음이다.


유년 시절에는 까치설날이 되면 목욕했다. 온수가 콸콸 나오는 욕실도 아닌 허여멀건 마당에서 대형 고무 대야에 들어가서 목욕했다. 쇠죽솥에서 끓여낸 물을 보태 넣어가며 했던 목욕, 때를 씻어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명절이나 되어야 겨우 얻어걸리는 설빔을 안고 잤던 기억이 또렷하다. 새 신발을 사놓고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이라는 노래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하얀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졸리는 눈꺼풀을 감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었다.


부모님은 장터에 나가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설 대목이면 밤늦게까지 장사하느라 우리 집만 명절 음식 준비를 못 하는 게 속상했다. 온 동네에 지글지글 음식 만드는 소리가 가득했으나 우리 집은 음식 장만이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명절은 어머니가 편찮은 날이었다. 명절마다 어머니의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우리는 할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한 해 동안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대청소하며 설날 준비를 하곤 했다.


결혼하고 보니 7남매 맏며느리라 21시간이나 차가 밀리더라도 시댁에 가야만 했다. 피곤한 몸으로 도착한 시댁에는 할 일은 많으나 일할 사람은 없었다. 먹을 사람은 많았지만, 음식을 장만하거나 설거지할 사람은 없었다. 시어머니와 둘이 그 많은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뒤치다꺼리하다 보면 몸이 견뎌내지 못하여 급체하거나 열이 나곤 했었다.


명절 증후군, 명절 독박이란 말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 둔 것이었다. 그러다가 시동생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여 동서가 생기면서 명절 독박 포승줄이 풀리는 듯했다. 그러구러 시부모님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명절이 되어도 시댁에서 더 이상 일독에 빠질 일은 없어졌다.


그러는가 싶었는데 14년 전, 대학 3학년이던 아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여 중병 환자가 되고 말았다. 아들을 돌보던 간병인은 명절이 되면 본가에 갔고 우리가 대신하여 아들을 돌봐야 했다. 다른 간병인을 구해보려고 해도 구할 수도 없었다. 혹시 간병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소의 서너 배 정도 품삯을 지급해야만 했다.


명절에 간병인을 대신하여 아들을 병구완하러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병원 앞 식당이 모두 문을 닫는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독박 병간호하면서 굶기까지 해야 할 판이었다. 명절 아침에 이곳저곳 편의점을 찾아다니며 김밥이라도 사고 싶었으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물건이 공급되지 않았는지, 일찌감치 팔렸는지 요깃거리 매대가 텅텅 비어있었다. 명절이 아니라 곤욕이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부터는 아들을 집으로 옮겨와서 돌보고 있다. 활동지원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한 부부가 우리 아들을 돌보는 시간 2/3 정도를 도맡았다. 이 부부는 명절마다 2박 3일 정도 고향에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 되면 그 부분을 대신해 줄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도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 부부가 아들을 돌봐야만 했다. 그래서 명절이면 간병 독박이었다. 그런데 2년 전에 그 부부는 아예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자리를 다른 분들이 메꾸어서 일하고 있다.


또한 딸 내외가 4년 간 서울에서 지냈다. 그 덕택에 딸 내외와 함께 명절을 보냈다. 그럴 때는 백년손님, 사위가 있으니 대형 전통 시장까지 찾아가서 문어숙회나 부침개 같은 먹거리를 구해오곤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딸 내외가 진주로 직장을 옮겼다. 이번 구정에는 사정상 올라올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구정은 올 사람도 없고 우리가 어디 갈 일도 없다. 명절 기분이 전혀 나지 않는다. 다만 지인들로부터 떡국, 갈비, 김, 키위, 애플 망고, 홍삼 등의 선물이 들어오긴 했다. 평범한 일상과 진배없는 명절이라 별다르게 준비할 것이 없다. 냉동실에 넣어둔 갈비를 꺼내 구워 먹거나 떡만둣국을 끓여 먹으며 명절 기분을 구태여 내고 있다.


내가 지나온 명절을 더터보니,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없는 듯하다. 아무튼 이런 명절은 처음이다. 다행히 외롭거나 쓸쓸하지는 않다. 이 고요함을 만끽하고 싶다. 이번 명절이 내게는 인생 명절이다. 먹고 싶은 것이나 챙겨 먹으며 책을 읽거나 영화 감상을 하며 보낼 계획이다.


이렇게 편하게
명절을 보내는 날도
있나 싶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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