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가 어느 날 홀연히 이 지구상에서 없어졌다는 가정을 해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 하나쯤은 없어져도, 태양은 변함없이 떴다가 질 것이고 지구는 같은 속도로 돌 것이다. 오싹했다. 또한 내가 동물이나 식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에 이어서, 이 광활한 우주가 우연히 생기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우주는 생각하면 할수록 신묘막측하다. 손목시계 하나조차도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이가 있듯이, 이 우주가 저 홀로 스스로 진화하듯이 생겨났을 리 만무하다. 메가톤 급 지능을 지닌 조물주,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어졌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 태어났다. 아니 내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 때가 되어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이다. 때로는대한민국이 내 조국인 것도 감사하다.
'극한 직업'이라는 프로에서, 방글라데시의 벽돌공들의 일상을 본 적이 있다. 진흙으로 벽돌 하나를 굽기 위해서 먼 섬에서 흙을 배로 싣고 와서 그것을 반죽하고 주형틀에 넣어서 제작한 후에 불에 굽는 작업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만들어진 벽돌을 10개 정도씩 머리에 올려서 다음 단계의 공정하는 곳으로 옮겼다. 때로는 수레에 싣고 가다가 경사로에서 와장창 다 부서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가장 힘든 과정은 벽돌을 굽는 일이었다. 힘들게 일을 하지만 품삯은 극히 적었다. 그런데도 그 일이라도 달가워하며 생명줄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운명처럼 그것이 인생이려니 생각하고 살다가 죽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태어났더라면 나도 그런 삶으로 한평생을 보냈을 것이다.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의 천로 역정> 매거진의 마무리 지점에 왔다. 이미 구상했던 대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믿음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의 조각들을 끌어 모아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믿음
믿음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믿음(Belief, Faith)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크게 2가지인 것 같다.
구원받는 조건이 되는 믿음
이 믿음은 '행위'와 대조되는 것이다. 무엇을 한 것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그 믿음만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이 말씀이 구원받는 조건이 되는 믿음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이 믿음은 선물이다. 선물은, 받을 사람이 선물을 달라고 조를 수도 없는 것이고 받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했을 때 주어지는 것은 이미 선물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보상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는 믿음
확신, 욕심, 야망, 바람, 신념 등을 믿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 사회에서 이런 것들을 믿음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확신:
우리 팀의 승리를 확신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를 했는데 우리 팀이 승리를 했다고 하자. 그것을 믿음 좋다고 할 일은 아니다.
욕심: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고 그것을 쟁취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것을 얻었다고 해서 믿음이 좋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욕심이다.
야망:
교회 예배당을 크게 짓겠다는 야망을 믿음으로 교회를 건축한다고 말할 때가 참 많다. 그것은 목회자와 교회 중직자들의 야망이고 그 야망을 위해서 성도들이 헌금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바람:
자식이 바라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위해서 100일 기도를 하여 마침내 합격했다고 그 사람이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 즉 바람이다.
신념:
신념이란 어떤 것에 대해 가진 '확실한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도 신념이 없으면 꿈을 이룰 수 없다. 신념이 강한 성도들을 일컬어서 대부분, '저 집사님은 믿음이 참 좋다.'라고 말하곤 한다.
성경에는 몇 가지의 믿음들을 보여주고 있다.
겨자씨만 한 믿음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지만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 13:32)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너희가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라는 말씀에서 살펴보면, 겨자씨 만 한 믿음은, 매우 작고 보잘것없게 보이지만 무한한 능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믿음을 의미한다. 미약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생명력 있는 산 믿음을 말한다고 한다. 믿음이 크든 작든, 이러한 살아 있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열된 선진들의 믿음
11: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11:2 옛날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 선진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을 믿고 의지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보상해주시는 이심을 믿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한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하나님을 본 후에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보았던 사실을 기억하고 아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창 자국, 못 자국을 만져보지 않고는 예수님이라고 믿지 않겠다는 제자에게,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기독교의 출발은 믿음이다.
믿음 없이 목회를 하거나 사역하는 것은 기만이고 사기며, 자기만족이다. 바르고 참된 믿음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것은 캐논인 말씀에서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믿음은 출발지가 어디인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신비 체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니 기분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다. 말씀이 바탕이 된 단단한 믿음이 있다면 불시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사도신경은 믿음을 가장 잘 정리한 고백이라고 여겨진다.
여기까지 정리해보니 사도신경을 몇 퍼센트 믿느냐? 백 퍼센트를 믿으면 믿음이 좋은 것이고 몇 가지만 믿으면 믿음이 약하거나 믿음이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꾹꾹 눌러서 사도신경을 적어보았다. 캘리그래피 서체로. 이 사도신경이 다 믿어진다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클래스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