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복음

- 같은 빛깔의 신앙을 가진 그대를 기다리며~

by Cha향기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말씀을 제대로 깨달았던 것 같다.


그 이전의 기존 교회에서 집사로 봉사하던 때는, 주일이 되면 몸이 파김치가 되곤 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이후부터 출발하여, 주일학교 교사로 예배를 인도하고 곧 이어서 성가대 찬양 연습을 했다. 대예배를 드린 후에 점심 식사를 챙기는 봉사를 했다.

오후 시간에는 기관별 월례회 같은 것을 하거나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되든지 성도들과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교역자들을 위한 저녁을 준비하고 헉헉거리며 저녁 예배를 드렸다. 밤늦은 시간에 다시 성가대 찬양 준비를 했었다. 다음 주일을 위한 준비였다. 직장인들은 한 주간 직장에서 지쳤다가 잠시 쉬어야 하건만 주일은 더 힘든 하루를 보내야 했다. 피곤을 풀지도 못한 채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판국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직분자(장로, 권사, 안수 집사 등)가 직장의 일로 금요일 심야기도회 같은데 참석하지 않으면 주일 예배용 주보에 그 명단을 올리는 교회도 있었다. 그 교회는 '1천 번제'라는 미명 하에 전 성도들이 천 번씩 헌금을 하도록 유도하고 그 현황을 벽보처럼 만들어 부착해두기도 했다. 참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러한 환경에서 15년 이상 신앙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들었던 설교는 대부분 '제목 설교'로 이른바 특강 같은 것이었다. 목사의 사상을 강단을 통하여 강의하는 듯했고 때로는 성도들을 혼내는 설교도 했다. 충성하고, 헌금 많이 하면 축복받는다는 예화가 가득 찬 설교가 많았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하고 로마서 강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개혁주의가 되고 있었다. 그때까지 붙잡고 왔던 신앙에 대한 신념들이 많이 바뀌었다. 가장 힘이 되었던 말씀은, 로마서 4장 1~8절이었다.

1. 그러면 육신상으로 우리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아브라함 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 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을 은혜로 주는 것으로 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5.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6. 그래서 행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사람이 받을 복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7. "하나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복이 있다.
8. 주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실 사람은 복이 있다." (새번역)

아무 생각없이, 정신없이 끌려갔던 것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진정한 복음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나의 영적 무지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복음을 깨달은 이후에, 크리스천이나 다른 목회자들을 만나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 이상은 말을 하면 안 되겠다 싶은 순간에 이르렀다. 나와는 신앙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복음을 깨닫고 영적 고독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하면 좋은 것이고, 헌금도 많이 하는 게 신앙이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면 축복(물질, 건강, 가화만사성 등)을 받는 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오래전에 즐겨 읽었던 시 한 편이 있다. 김남조의 '가난한 이름에게'라는 시다.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 끝까지 '맞아, 맞아'하면서 장단을 맞추면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립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 모 없이 살다 갑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여인을 만나지 못해
당신도 쓰일 모 없이 살다 갑니까 (이하 중략)



나 자신의 기독교 세계관이 드러나는 몇몇 말들의 관념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나열된 단어들의 일반적인 의미는 구글링을 하고 나의 생각을 덧붙였음을 밝혀둔다.) 이러한 말들을 한 번 되짚어보는 것이 현재의 신앙을 점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인간(人間):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데 '사람'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고 영혼을 가지고 있다.
- 인생(人生):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나, 살아있는 시간, 경험, 삶, 생애, 일생 등을 뜻한다. 성경의 시편에서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표현한다.
- 영혼(靈魂): 육체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하는 숨결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 죄(罪): 규범이나 윤리에 어긋나거나 반하는 행위. "표적을 빗나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죄란 하나님이 만드신 그 창조의 위치와 순리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 본능(本能):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행동 양식.
생리적 본능: 배설욕, 수면욕, 식욕, 성욕
심리적 본능: 소유욕(물욕), 권세욕, 명예욕, 신앙심
- 이성(理性):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말. 성경적 가치관으로 회복된 이성과 신앙의 조화는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 철학(哲學):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 즉 인간의 본질,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
- 예수(Jesus): 기독교는 "예수는 성자 하나님이자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고, 기적을 행하는 동시에 교회를 창립해 인간을 구원하며, 인간을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다가 부활해서 천국으로 간 뒤 언젠가 재림할 것"을 교리로 삼고 있다.
- 성령(聖靈):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에서 하나님을 이루는 세 위격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
- 구원(救援):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 구출되거나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뜻.
- 천국(天國): 하늘 또는 그 이상으로 끝없이 확장되는 천상의 영역을 뜻.
- 지옥(地獄): 살아생전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사후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는 곳으로 일컬어지는 장소를 말한다.
- 죽음(死亡:사망): 생명체의 생명이 끊기는 것을 말한다.
- 복음(福音):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말함.
- 율법(律法):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규범.
- 은혜(恩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나타내는 데 사용됐다.
- 축복(祝福):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거나, 복 받은 사람을 축하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
- 개혁(改革): 급진적이거나 본질적인 변화가 아닌, 사회의 특정한 면의 점층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고쳐나가는 과정. 사회 운동의 하나.
- 교회(敎會):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그리스도교)인들의 신앙 공동체를 일컫는 말.
- 성전(聖殿):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 또는 그 장소.
- 기복신앙(祈福信仰):복을 기원함을 목적으로 믿는 신앙, 즉 신앙 대상인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추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형통과 소원 성취와 입신양명(立身揚名), 무병장수와 자손 번영 등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초보적이고 현세적(現世的)인 신앙 행태를 말한다.
- 신비주의(神祕主義): 세속 신비주의는 주관적 체험이 주를 이룬다.
- 영지주의(靈智主義): 신비적 지식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려 한 종교운동.
- 복음주의(福音主義):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중간 길을 택하는 제3의 길로 알려져 있다.
- 청교도(淸敎徒): 화려하고 호사(豪奢)스러운 것을 물리치고 신앙과 생활에서 순결·근엄을 중히 여김.
- 근본주의(根本主義): 종교의 교리에 충실하려는 운동이다. 경전의 내용에 대한 문자 그대로 절대적 준수를 지향한다.

뉴욕에 갔을 때, 펜실베이니아 부근에 있던 아미쉬 마을에 가본 적이 있다. 홈스테이 맘이, 그곳은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추천했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여겨 문명을 거부하고 대대 손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200년 전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아미쉬 사람들 - http://m.newspower.co.kr/9747


토론토에 갔을 때 메노나이트 마을을 가 본 적이 있다. 미시소거에 홈스테이가 있어서 세인트 제이콥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들은 재세례파라는 분파인데 박해를 피해서 온타리오 주 남부에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 또한 자신들의 신앙에 삶 전부를 걸었다고 봐야 한다.


메노나이트 집성촌 세인트 제이콥스를 가다 - https://www.travi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404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무소 부재하는 그분과 늘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람데오:신전 의식(神前意識,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이 있다. 반드시 새벽 기도회에 가야만 할까? 호흡하듯이 그분과 대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주일 성수는 모든 날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인데 그 순간만이라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나의 모든 삶을 잠시 홀딩시켜두고 하나님 안에서 예배하며 성도들과 교제하여 즐거이 천국의 맛을 보면 될 것 같다. 이것마저도 없다면 성도로 구별될 수가 없지 않을까?

십일조는 어차피 우리가 정량대로 십 분의 일을 구별할 수 없으며 율법대로 반드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물질을 주신 주님께 일정량을, 내가 쓰지 않고 주님 나라를 위해 드릴 수 있는 믿음을 보이면 좋을 것 같다.

교회는 주를 믿는 자들의 모임이지 건물이 아니라고 본다. 성전 시대가 아니니 초대형 교회 건축을 위해서 성도들에게 과분한 헌금을 하도록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미 믿는 자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고 어디든지 성전일 수 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의 어깨는 으쓱하고 미자립교회 목사들은 늘 부족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목회자들 세계의 은따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밝히 알 수는 없지만,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아미쉬 마을이나 메노나이트 집성촌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복음 안에서 자유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향내 나는 크리스천이고 싶다. 좀 고독해도 괜찮다.


[계속]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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