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아내를 '사모'라고 부른다

- 아무래도 함량 미달인 것 같지만~

by Cha향기

목사의 아내인, '사모'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했지만 운명처럼 사모가 되었다. 성향상 닥치면 해내는 기질이라 사모로서 최선을 다했다. 해야 할 것은 했다. 새벽기도부터 시작하여 모든 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하러 다니기도 많이 했었다. 특히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헌신했었다.


그러나 목회자 부부 모임에 참석해 보면, 나는 '나이론' 사모인 게 분명했다. 말씀을 가까이하지도 않고 밤새워 기도하지도 않는 사모였다. 대신에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는 사모여서, 내게는 성도들이 마냥 예쁘게만 보였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 없으니 성도들의 작은 헌신도 감동일 뿐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에 완벽한 사모님들은, 성도들이 분에 안 차는 모양이었다. '주일 성수를 못하네, 십일조를 안 하네, 충성·봉사를 하지 않네' 라며 하소연했다. 아마도 본인들이 잘하고 있으니 그 기준으로 보면 성도들이 안타깝게 여겨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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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잖아도 시원찮았던 사모 역할을 내려놓다시피 할 수밖에 없을 일이 생겼다. 개척한 지 12년이 되던 해에, 아들이 덜컥 사고를 당했다. 존재(existing)할 뿐이지 삶(living)이 없는 아들을 지켜보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오죽하면 옛말에, '마른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보기 좋다'라고 했겠는가? 그런데 자식이 우리 앞에서 10년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살고 있으니 우리의 심정은 상할 대로 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의 간병에 매달려야만 했다. 다른 길이 없었다. 믿음이 좋은(?) 목사님들은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헤쳐 나가실까 종종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는 아들을 품고 10년 동안 목회를 해오고 있다. 아주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경주를 하는 느낌이다. 그동안에는 새벽 기도회도 없고 수요 예배나 금요 심야 예배 등도 없었다. 말하자면 목회라고 말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주님께는 늘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평안이 있었다. 교회에 자주 모이고 교회 일을 많이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복음'을 깨달으면서 알게 되었다. 근본적인 것은 온데간데없고, 교회 건물을 높이고 사람을 많이 끌어모으고(별의별 방법까지 동원하여) 이적을 일으키는 것에만 치중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양의 털을 너무 자주 깎고 젖을 심하게 짜서 양이 비루해지게 하듯이, 성도들을 교회 일을 한다고 몸살을 앓도록 한 것에 대하여 눈치를 채지 못하는 목사들도 많이 보았다.

이 글을 적기 위해서 계속 묵상하고 있는 중에, 귀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바로 '마틴 로이드 존스'가 쓴 책, <내가 자랑하는 복음>이다. 아들이 재활 훈련을 할 때 전동자전거를 타는데, 휠체어의 뒷 받침대 부분에 무엇인가를 받쳐야 했다. 책 커버가 두꺼운 이유로 이 책이 받침대로 쓰였던 것이다. 나는 신학이나 철학적인 책은 어려워서 아예 펼쳐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책 커버를 열어보니 손글씨가 정성스럽게 쓰여있었다. 아들의 선배가 아들에게 선물로 사준 책이었다. 게다가 제목도 마음에 끌려서 단숨에 읽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속이 후련해졌다.

나는 기도를 많이 하거나 전도를 잘하는 사모가 아니지만 하나님께 특별히 사랑을 받고 있는 사모라는 자존감을 심어준 책이다.


내가 어떻게 많은 것을 행하여서가 아니라 그분의 주권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바로 복음이었다. 그것은 또한 은혜였다.


그 책의 'Chapter 7'에서, 인생 자체에 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함량 미달인 사모에게 명쾌한 답을 보여주시는 글이 있었다.

사도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이 말씀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부정 어법은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문제들은, 사람들이 복음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본래 “행위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신에게 영혼-이전까지 잊고 있었고 완전히 무시하고 전혀 관심 두지 않았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언젠가 그분 앞에서 자신과 자신이 걸어온 삶의 여정에 관해 설명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틀림없이 이러한 반응을 먼저 보일 것입니다. “아하,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구나.

때때로 '이렇게 부족한데, 그리고 스스로 자원해서 사모가 된 자도 아닌데 주님은 이렇게 저를 사랑하십니까?' 라며 남몰래 속삭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세미하게 들리는 성령의 음성은,


첫째, 그냥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당신의 주권적인 마음이다.


둘째, 그 목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늘 채워주니 (물질, 잔잔한 일처리, IT부분 협조, 조직적으로 계획 세우는 것에 아이디어 제공 등) 고맙다.


셋째, 그 아들의 어미라서 사랑한다.

(아들은 전도하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황급히 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지만 그 사고에 대해서 원망이나 불평 없이 묵묵히 감사하며 그 숱한 세월을 걸어가니 대견스럽다.)


목사의 아내를 사모라고 부른다. 나는 사모다. 그런데 아무래도 함량 미달인 것 같다. 그래도 주님이 주신 자존감으로 사모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것도 미자립교회의 사모인 것이.


[계속]

[사진: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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