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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Dec 15. 2022

<나의 해방 일지>의 제목을 바꿔보고 싶었다

- 그리고 추앙받고 싶었다

*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출처: JTBC 홈피

살면서 마음이 정말로 편하고 좋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항상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몸은 움직여주지 않고,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지리한 나날들의 반복. 딱히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는 말도 못 한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
해방. 해갈. 희열.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있던가?
‘아, 좋다. 이게 인생이지.’라고 진심으로 말했던 적이 있던가?
긴 인생을 살면서 그런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살다 가는 게 인생일 리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혹시 아무것도 계획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 보면 어떨까?
혹시 아무나 사랑해보면 어떨까?
관계에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기에 이렇게 무기력한 것 아닐까?
시골과 다를 바 없는 경기도의 끝, 한 구석에 살고 있는, 평범에서도 조금 뒤처져 있는 삼 남매는
어느 날 답답함의 한계에 다다라 길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각자의 삶에서 해방하기로!
제목을 바꿔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깡그리 잊어버렸을 즈음에, 나는 <나의 해방 일지>를 때늦게 정주행 했다. 한창 그 드라마를 보고 얘기를 나누곤 하던 때에 나도 한 번 슬며시 그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회자되는 정도에 비해서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고 내용도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잠깐 보다가 관뒀다. 지금 생각하니 그 드라마의 갈등과 클라이맥스가 다 지난 부분을 봤던 것 같다. 내 취향이 아닌 듯해서 더 이상 다시 볼 생각도 없이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에 대해 무심히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유퀴즈'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의 해방 일지>의 주연이었던 손석구 씨가 '자기님'으로 출연했었다. 그 프로를 통하여 배우 '손석구'를 알게 됐다.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다는 <나의 해방 일지>를 처음부터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싶었다.


마음을 열고 드라마의 첫 회부터 보기 시작하니 금방 몰입되고 빨려 들어갔다. 하루에 3회씩 논스톱으로 16회까지 정주했다. 대사가 찰졌다. 구성도 좋았다. 출연진들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당미역(당정역과 대야미 역을 합성하여 만든 가상의 역) 근처 산포(군포와 산본에서 조합한 가상의 역)에서 싱크대 사업을 하는 염씨네 3남매와 싱크대 공장에 일하러 굴러 들어온 구 씨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좌우돌 사랑앓이 이야기였다.

[구 씨와 염씨네 삼 남매]

                                                      

드라마에서 그들은 저마다의 삶에서 주연으로 살고 있었다. 특히 염기정의 늦사랑과 염창희의 인간 냄새가 폴폴 나는 삶의 모습에 정이 끌렸다. 우리의 주위를 돌아보면 수많은 염기정과 염창희가 있다. 그들의 속마음을 후벼 파며 대변하는 등장인물들의 연기에  공감이 갔다. 작품과 연기가 어우러져서 설득력이 배가되었다. 그냥 어둡기만 해 보이는 염미정은, 출구 없는 사랑에 지쳐있다가 구 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당돌하게 요구한다. 구 씨와 염미정은 결이 많이 다른 사람이지만 각각 인간에게 상처받고 질린 것으로는 통하는 사이였다.


드라마의  제목이 <나의 해방 일지>다. 염미정이 회사에서 동호회에 가입하지 않고 버티다가 남아 있는 다른 사람들과 결성된 '해방 클럽'이라는 신생 동호회를 결성하게 된 데서 붙여진 것 같다. 그러나 드라마를 시청한 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드라마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으로는 다소 약한 감이 있는 것 같았다. 대체할 만한 다른 제목을 생각해봤다.


작가(박해영)님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정한 제목일 것이다. 그러나 제목으로는 약간 머쓱한 것 같서 혹시 괜찮은 것이 있을까 하고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다. 결국 '딱 이거다' 고 바꿔치기할 만한 것은 생각해내지 못했다. 몇 가지 떠오르는 제목들을 나열해보았다.


<저널: 삼 남매의 사랑앓이>

<사랑으로 해방되는 다이어리>

<추앙하며, '지금'을 헤쳐 나가며>

<사랑하는 법에 대한 저널>

<염씨네 남매들의 사랑 일지>

<해방을 꿈꾸는 사랑 일지>

<서울 근교에서 쓰는 사랑 일지>

<당미역, 그 언저리에 부는 바람>

<해방을 외치는 세 남매의 성장통>

<구 씨와 염씨네 삼 남매>


이 중에서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당미역, 그 언저리에 부는 바람>을 선택하고 싶었다. 아니면 <추앙하며, '지금'을 헤쳐 나가며>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본을 읽고 싶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대본을 구해서 읽고 싶어졌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대본을 구해서 빨강, 파란색의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고 싶었다.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는 삭히고 묵힌 후에 나온 것이라 인생철학이 들어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렇지, 저 상황에서는 딱 저 표현 외에는 딴 말이 없지


라고 엄지척을 해주고 싶은 대사가 많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당장 대본을 구할 수 없으니 우선 <나의 해방 일지> 명대사를 검색해서 찬찬히 읽어봤다. 뭐니 뭐니 해도 염미정이 외쳤던,  


"나를 추앙해줘. 사랑으로는 안되고 추앙해달라고"


그 말은 참 신선했다. 집안일을 할 때 배경음악을 켜놓고 일하듯이 <나의 해방 일지>를 배경 드라마로 켜놓고 싶었다. 다시 들어도 감동인 대사도 많았고 놓치고 지나갔던 곳도 꽤 있었다. 아마도 한동안 <나의 해방 일지>에 집착할 것 같다.


 https://namu.wiki/w/%EB%82%98%EC%9D%98%20%ED%95%B4%EB%B0%A9%EC%9D%BC%EC%A7%80/%EB%AA%85%EB%8C%80%EC%82%AC


클리셰와 미장센

클리셰 (Cliche: '진부한 표현이나 상투적 말을 의미' 하는 프랑스 용어)는 거부하고 미장센(mise en scène 무대 위 등장인물의 배치·역할 및 무대 장치와 조명 등에 관한 총체적인 플랜)은 탄탄했다.


드라마의 잔잔한 내용 전개에, 이따금씩 구 씨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범죄도시'를 방불케 하는 액션 장면은 시청자들의 지루함을 덜어내기에 충분했다. 염씨네 삼 남매의 일상이 다소 목가적이고 서민적인 일상일 것 같으나 결국 삶의 이면에는 아찔할 만큼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등장인물들의 연기나 대사가 진부하지 않았다. 작가가 드라마 대본을 완성할 때 한 마디 한마디를 얼마나 각고 조탁했을지 알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작가의 차기작이 기다려질 뿐만 아니라 이전의 작품들도 챙겨서 보고 싶어졌다. 긴 시간 고뇌하며 현실에 있음 직한 등장인물들에게 영혼을 입히고 생기를 더한 작가의 능력이 대단해 보였다. 미장센이 잘된 드라마라고 여겨졌다.


아쉬움이 있다면?

구 씨의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미드를 볼 때 발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에 느끼는 것과는 다른 답답함이 있었다. 분명히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장면일 텐데 말이다. 아마도 알코올 중독자의 불분명한 발음을 의미하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느낀 점은 그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본의 지문에 (발음을 불분명하게)라고 명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구 씨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말을 정확하게 다 듣고 싶은 마음에는 아쉬움이 참 컸었다.




나는 왜 이 <나의 해방 일지>에 빠져들었을까? 나도 '지금'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발목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서 놓임 받고 자유롭게 날아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10년 동안 아들을 중환자로 눕혀놓고 사는 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될 정도로 힘겹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인내하며 지내고 있지만 만성 피곤과 스트레스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나도, 염미정이 새로  결성한 그 해방 클럽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나도 추앙받고 싶었다. 특히 드러누워 있는 아들 녀석이 깨어나서 효도는 못할 망정 추앙을 해준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사진: JTBC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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