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의 나는 입을 만한 바지라고는 달랑 하나였다. '죠다쉬', '24인치', '청바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바지가 부지기수다. 그럴 때마다 구약 성경의 야곱이 생각나곤 했다.
에서는 야곱에게 팥죽을 받고 장자권을 판 적이 있었다. 장자의 복을 야곱에게 빼앗기고 분노하여 야곱을 죽이려 하였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친정(하란) 오빠 라반에게로 도피하라고 한다.
야곱은 외삼촌을 위해 20년간 일한 후, 부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야곱은 빈 손으로 외삼촌 댁으로 갔지만 부자가 되어 귀향한다. 야곱은 떼부자가 되었고 나는
그냥 바지 부자다.
남동생의 장모님이 바지 전문점을 했다. 그 사돈은 시시때때로 내게 옷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평생 옷 걱정은 않고 살아온 셈이다. 바지는 쟁여두고 입을 정도였다. 그분을 만난 뒤부터 평생 바지 부자로 살았다. 그런 바지 부자가 요즘 하나의 바지에만 집착하고 있다.그것은 새롭게 불어닥친 바지 모양 유행때문이다.
요즘 바지의 트렌드가 확 바뀌고 있다. 와이드 팬츠 시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쫄바지를 입으면 간지 났다. 연예인들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스키니 바지를 입어야 멋져 보였다.
[쫄바지]
그런데 이제 그런 걸 입으면 유행에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촌스러워 보인다.유행이란 것은 사람의 생각 속에 침투해 오는 무형의 파도 같다.
[즐겨입었던 7부 여름 바지]
즐겨 입고 다녔던 바지들을 이제는 거의 입지 않게 된다. 맘먹고 쫄바지를 입은 후에 거울을 보면 영 아니다 싶어 벗어놓게 된다. 머쓱하다. 그래서 집 안에서나, 간단하게 외출을 나갈 때만 입는다.
[중간 넓이 정도의 7부 바지]
그나마 중간 넓이 정도의 바지 스타일은 입고 소화해 낼 자신이 있다.
카코바지는 약간 넓은 듯하여 쫄바지가 유행할 때는 즐겨 입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이 밑단이 잘록하여 어색하다.굳이 입으려면
셔링을 넣은 부분을 일일이 뜯어 리폼하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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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딸내미가 사이트 링크를 하나 보내 주었다. 와이드 팬츠가 가득 모인 '고고싱'이라는 곳이었다.
사이트를 몇 번이고 살펴본 후에 소심하게 바지 하나를 구입했다. 그러나 아직은 너무 펄렁거리는 느낌이라 입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딱 한 번 입었다.
유행에 앞선 자들은 펄럭펄럭 넓은 바지를 맘껏 입고 다닌다. 그렇다고 나도 곧바로 합류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와이드 팬츠도 아니고 쫄바지도 아닌 일자 통바지가 만만하다.
바지 유행의 과도기에서
내가 요즘 즐겨 입는 바지는,
남편의 바지다.
남편에게 옷이 수두룩하게 많은 이유가 있다.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의 교회는 매년 바자회를 연다. 그 바자회에서는 메이커 제품(아마 유행이 지났거나 진열품이었던 것 같다.)을 단돈 1,000원 정도로 구매할 수 있다. 매년 몇 차례씩 몇 백 벌의 옷을 판다. 그렇게 번 돈으로 불우 이웃 돕기 등을 해오고 있다.
우리가 그 바자회에 참석할 틈이 없는 것을 아시는 그 목사님이 남편의 사이즈에 맞는 옷을 따로 챙겨 두었다가 전달해 주곤 하셨다.
그 목사님께 전달받은 옷은 대체적으로 원단의 질이 끝내주게 좋았다. 그래서 남편의 바지 중에 하나를 슬쩍해 입어보았다. 남자 바지라 당연히 기장이 엄청 길었다. 그런데 바싹 마른 남편보다 내 허리가 더 굵어서 더 난감했다.
일단 기장을 적당한 길이로 수선하여 맞췄다. 허리 단은살짝 잘라시야기 처리를 한 후에 굵은 고무 밴드를 덧댔다. 그랬더니 그저 그만으로 좋았다.
그렇게 바지를 수선하여 두긴 했으나 거의 입지 않았다. 어중되게 뒷전으로 밀쳐져 있었다.
그런데 쫄바지를 입기는 애매하고 와이드 팬츠를 입기에도 부담이 되는 이 시기에 그 바지가 한몫하고 있다.
남자용 일자바지를 수선하여 만든 그 바지가 나는 좋다. 특히 원단이 좋아서 아무리 더운 날에도 허벅지에 닿는 느낌이 싫지않다. 상의에 무엇을 받쳐 입어도 잘 어울린다.그래서나의 최애 바지가 됐다.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닌다. 남편마저도 그 바지의 사연을 모르고 있다. 나만 아는 비밀 병기 같은 바지다.
지금 나는 바지 유행 물결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쫄바지를 입으려니 자꾸 촌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남편의 바지를 리폼한 일자 통바지를 입고 바지 유행의 기로에 서 있다.
그 바지를 입으면편하고 좋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나만의 트렌드로 나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