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예배 후에 교회 안에서 애찬을 나누지 않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부터 교회에서 하던 식사 타임이 사라졌다. 방역 의무가 느슨해졌지만 여전히 교회 내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예배 후에 먹방 투어하듯이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며 한 주간 동안 각자가 지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하며 교제의 시간을 가진다. 작은 교회라 그렇게 하는 것이 번거롭지 않았다.
그날 한 창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기상태가 불안한지 비가 왔다 말다를 반복했다. 식당에 있는 TV 뉴스에서는 양양 해변에서 날벼락을 맞았다는 속보가 떴다.
요즘은 대부분 휴대폰에 날씨 앱이 깔려 있으니 오늘 날씨는 물론이거니와 한 주간, 한 달 정도의 날씨는 대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엉터리 예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날이 바로 그랬다.
어? 예보에는 없었는데?
- 그러게 갑자기 소나기가 오네요.
저 봐요. 먼저 식사를 끝낸 저분들도 오도 가도 못하고 있네요.
-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네요.
어떡하죠?
식사하던 성도들이 바깥을 내다보며 걱정 섞인 말을 한마디씩 했다.
여기 보니 20분 후에 비가 그치네요.
그때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딸이 말했다. 비가 곧 그친다고 했다. 설마 이렇게 쏟아지는 비가 그치기야 할까? 나는 딸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그냥 바깥을 보니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4개의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식당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양산을 나누어 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비가 하염없이 올 것 같아요. 편의점에 가서 우산을 사 와야겠어요.
라고 내가 말했다.
- 그러게요.
옆에 있던 어떤 분이 맞장구를 쳤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도로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양동이로 쏟아붓는 듯했다. 폭우였다. 난감했다.
한 집사님이 가져온 양산을 빌려 쓰고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편의점에 당도했을 때는 양산이 흠뻑 다 젖었다. 양산을 뚫고 비가 새어 들어올 정도였다.
사람들이 비 맞는 꼴을 볼 수는 없다. 라고나는 맘 속으로 생각하고 편의점에 있는 우산을 몽땅 다 샀다.
손님이 오셨나 보네요. 이렇게 우산을 많이 사시는 것 보니...
- 아뇨 식당에서 일행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데 이렇게 비가 갑자기 쏟아지네요.
태그를 떼 드릴 까요?
포장을 벗겨 드릴까요?
편의점 점원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다.
태그를 다 떼고 포장지를 벗긴 우산을 끌어안고 그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편의점으로 향할 때 그토록 쏟아지던 비가 뚝 그쳤다. 어쩌면 내가 편의점에서 우산값을 계산하고 있을 때 이미 벌써 비가 그쳤을지도 모른다. 나는 점원을 향하고 있었고 점원은 바깥쪽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 비가 잠시 그쳤네요. 우산 안 사셔도 되겠어요.
라고 한 마디 해주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는 부끄러움과 우산을 동시에 끌어안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 비 그쳤는데?
- 어쩌지?
환불해요.
- 태그와 포장을 다 뜯었는데?
그래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환불해요.
그때 딸이 말했다.
엄마는 제 말 안 들으신 거죠?
뭘?
제가 20분 후에 이 지역에 비가 그친다고 했잖아요?
20분 후?
딸이 그 말을 한 지 거의 20분쯤 지난 듯했다.
딸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러고 보면 내가 우산을 사러 나가고, 우산을 고르고, 계산하고, 포장을 뜯은 시간이 딱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