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Jun 26. 2023

편의점에 있는 우산을 죄다 샀는데...

- 마른하늘이 무심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했다. 전형적인 6월의 날씨였다.


일요일 오전 예배를 은혜롭게 마치고 전 교인이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교회는 예배 후에 교회 안에서 애찬을 나누지 않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부터 교회에서 하던 식사 타임이 사라졌다. 방역 의무가 느슨해졌지만 여전히 교회 내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예배 후에 먹방 투어하듯이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며 한 주간 동안 각자가 지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하며 교제의 시간을 가진다. 작은 교회라 그렇게 하는 것이 번거롭지 않았다.


그날 한 창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기상태가 불안한지 비가 왔다 말다를 반복했다. 식당에 있는 TV 뉴스에서는 양양 해변에서 날벼락을 맞았다는 속보가 떴다.



요즘은 대부분 휴대폰에 날씨 앱이 깔려 있으니 오늘 날씨는 물론이거니와 한 주간, 한 달 정도의 날씨는 대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엉터리 예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날이 바로 그랬다.


어? 예보에는 없었는데?

- 그러게 갑자기 소나기가 오네요.

저 봐요. 먼저 식사를 끝낸 저분들도 오도 가도 못하고 있네요.

-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네요.

어떡하죠?


 식사하던 성도들이 바깥을 내다보며 걱정 섞인 말을 한마디씩 했다.


여기 보니 20분 후에 비가 그치네요.


그때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딸이 말했다. 비가 곧 그친다고 했다. 설마 이렇게 쏟아지는 비가 그치기야 할까? 나는 딸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그냥 바깥을 보니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4개의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식당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양산을 나누어 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비가 하염없이 올 것 같아요. 편의점에 가서 우산을 사 와야겠어요.


라고 내가 말했다.


- 그러게요.


옆에 있던 어떤 분이 맞장구를 쳤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도로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양동이로 쏟아붓는 듯했다. 폭우였다. 난감했다.


한 집사님이 가져온 양산을  빌려 쓰고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편의점에 당도했을 때는 양산이 흠뻑 다 젖었다. 양산을 뚫고 비가 새어 들어올 정도였다.


사람들이 비 맞는 꼴을 볼 수는 없다.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편의점에 있는 우산을 몽땅 다 샀다.


손님이 오셨나 보네요. 이렇게 우산을 많이 사시는 것 보니...

- 아뇨 식당에서 일행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데 이렇게 비가 갑자기 쏟아지네요.

태그를 떼 드릴 까요?

포장을 벗겨 드릴까요?


편의점 점원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다.

태그를 다 떼고 포장지를 벗긴 우산을 끌어안고 그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편의점으로 향할 때 그토록 쏟아지던 비가 뚝 그쳤다. 어쩌면 내가 편의점에서 우산값을 계산하고 있을 때 이미 벌써 비가 그쳤을지도 모른다. 나는 점원을 향하고 있었고 점원은 바깥쪽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 비가 잠시 그쳤네요. 우산 안 사셔도 되겠어요.


라고 한 마디 해주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는 부끄러움과 우산을 동시에 끌어안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 비 그쳤는데?

- 어쩌지?

환불해요.

- 태그와 포장을 다 뜯었는데?

그래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환불해요.


그때 딸이 말했다.


엄마는 제 말 안 들으신 거죠?

뭘?

제가 20분 후에 이 지역에 비가 그친다고 했잖아요?

20분 후?


딸이 그 말을 한 지 거의 20분쯤 지난 듯했다.


딸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러고 보면 내가 우산을 사러 나가고, 우산을 고르고, 계산하고, 포장을 뜯은 시간이 딱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 응? 예사로 들었지.

에구 이 앱을 통해서 보면 초단기 예측이 가능하단 말이에요.


라고 하며 딸이 링크 하나를 보내주었다.


 https://www.weather.go.kr/w/image/vshrt/rain.do

딸이 보낸 링크는 초단기 예측으로 당장 눈앞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링크를 열어봤지만 어떻게 활용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여간 한 발 앞서가는 딸을 좇아갈 재간이 없다.


일기예보가 실시간 그렇게 딱 맞나? 우리가 대체적으로 보는 앱은 1시간 간격으로 예보가 나와 있지 않던가?


딸의 말을 흘려 들었던 것이 미안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바보같이 우산을 몽땅 사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간 내가 한심했다.

[1시간 간격으로 예보되는 일반적인 날씨 앱]

친절한 편의점 점원이 포장과 태그를 떼 주신다고 했던 것도 원망스러웠다. 그냥 들고 나오려고 했는데... 그랬더라면 환불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집에 쌓이고 쌓인 게 우산이다. 집에 우산이 가득한데 피치 못하게 우산을 사야 할 때 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예보를 보고 미리 우산을 챙겨나가게 된다.


- 환불해요

누군가 또 한 번 말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환불? 비 올 때 급하게 산 우산을 어떻게 비가 그쳤다고 환불하겠는가?




식사 후에 카페로 향하는데 햇빛이 쨍쨍했다. 우산을 양산 삼아 썼다.


커피 맛은 둘째치고 나는 틈틈이 바깥을 내다보았다.


비가 와야 한다.

비가 오면 좋겠다.


하늘도 무심했다. 쨍쨍 마른하늘이었다.


그날 우리 교회 성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우산 하나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산을 쥐어 보내는 기분이었다. 달가워하지도 않을 우산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그런 상황이 되면 나는 우산을 사러 또 나갈 것 같다. 나의 오지랖도 보통이 아니다.

아마 오지라퍼 증후군이라는 정신심리학적  병명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진:픽사베이]

이전 14화 고고싱♬ 바지 타령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