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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ul 08. 2023

'밤새 안녕'이란 말 그대로

- 남희씨가 보내온 글

<<남희씨가 늦은 밤에 쓴 글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그 내용을 3인칭 시점으로 옮겨 적어 보았다.>>


남희씨가 노인복지센터를 그 근처로 옮긴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남희씨는 대 수술을 여러 번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한쪽 눈이 실명됐고 건강이 좋지 않은 편이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아프지 않은 데가 없으니...'


남희씨는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버텨오고 있는 셈이다.  남희씨는 사회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건강만 따라 주었더라도 센터장의 일을  지금보다는 더 잘 해냈을 것이라고 그녀는 아쉬워하고 있다.


남희씨는 다소 내성적이다. 자존감도 낮은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사람들과 친절하게 인사를 하거나 정겹게 얘기를 나누는 일이 어색하다.


'사람들은 편하게 잘 사는데 나는 왜 사는 게 쉽지 않지?'


남희씨는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쉽게 인생을  살고 싶은데 그게 만만치 않음을 늘 느낀다.




그런 남희씨와 달리, 그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복지사 Kang샘은 우뚝한 자존감으로 주변 사람들과 쉽게 친하게 지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그래서 더러는, '저분은 일도 않고 밖에서 주로 놀기나 하는 분'으로 여긴다. 그러나 본인의 일은 빈 틈 없이 해낸다.


"조금만 돌아보면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은 법이지."


복지사 Kang샘은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몸을 사리지 않는 편이다. 그런 Kang샘 덕택에 남희씨는 센터 운영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


또한 복지사 Lee샘은 지혜롭고 상냥하다. 때에 맞는 자존감으로 주변을 즐겁게 해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센터장님, 센터장님!"


복지사 Lee샘의 나긋한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남희씨는 피로가 풀리는 느낌을 받곤 한다.


"네네, 당연히 그렇지요.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지사 Lee샘은 어떤 전화가 걸려와도 편안하고 친절하게 응대한다. 남희씨는 맘으로는 뻔해도 복지사 Lee샘처럼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하는 것이 머쓱하다. 맘 같아서는 무슨 말이라도 다 하겠으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몇 마디 없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말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희씨는 이런 사회 복지사 샘들과 함께 센터를 운영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남희씨는 그분들의 인성이 늘 부럽다. 또한 그분들은 남희씨가 힘들 때는 짚고 걸어갈 수 있는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Kang샘은 센터 밖에만 나갔다 오면 여러 가지 세상 사는 이야기를 가득 들고 온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새롭기도 하고 때로는 복잡할 때도 있다. Kang샘이 YJ형님이라 부르는 분이 있는데 아무나 구슬릴 수 없다. 옹고집이다. Kang샘이나 되니 YJ님을 케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남희씨는 믿고 있다.


YJ님은 젊었을 땐 아주 잘 나갔던 분이었다. 지금은 혼자서 기초 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는 분이다. 때론 어린아이 같이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어떤 때는 질책받을 만한 일을 하기도 한다. 그는 참 까다로운 수급자다. 남희씨 센터의 요양사가 돌봐주고 있다. 때때로 Kang샘이 나서서 YJ님을 다독거려야 동네가 조용하다.

정부에서 들어오는 수급 급여를 단 며칠 만에 다 써 버린다. 통장에 잔고 하나 남기지 않고 돈을 다 찾고 싶어 한다. 자동이체로 빠져나갈 정도의 돈은 통장 잔고에 남겨 두어야 한다고 복지사인 Kang샘이 설득시키지만 YJ님은 이해하는 둥 마는 둥 한다. 자신의 삶 전체를 정부가 다 해결해 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날은 남희씨와 Kang샘이 다른 지역으로 외근을 나갔는데 그 YJ님이 화가 나서 빌라 1층 주차장에서 의자를 집어던지고 난리를 피웠단다. Lee샘은 그 상황이 엄청 무서웠다며 전화로 남희씨에게 알려주며 떨고 있었다.

"센터장님, 난리 났어요.
YJ님이 화가 엄청났나 봐요.
아무래도 Kang샘이 오셔서 YJ님을 다독거려야 할 것 같아요."

Lee샘의 연락을 받고 외근하던 곳에서 혼비백산하여 센터로 돌아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도 그다음 날이면 YJ님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를 Kang샘이 자연스럽게 알아낼 게 뻔했다.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Kang샘의 소통에 YJ님은 철없는 아이처럼 찬찬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준다.




가끔 남희씨가 출퇴근하는 시간에 점잖게 생긴 분이 멀리서 인사를 하곤 했다. 당연히 Kang샘은 그분을 잘 알고 있으리라. 남희씨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덩달아 맞인사를 해오고 있었다. 그가 바로 BS아저씨다.


어느 날엔가는 BS아저씨가  YJ님과 요양사샘을 자신의 차에 태워 점심대접을 하러 가시는 길에 Kang샘 Lee샘도 함께 가자고 하시더란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그러기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


남희씨는 BS아저씨가 여러 사람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국수 정도 사 주시려나 보다.' 


남희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그날 BS아저씨는 여러 명에게 매운탕을 얼큰하게 한 턱 쏘셨다.


"BS아저씨는 기마이* 가 좋아요.(* 인심이 좋다는 뜻) 매일 누군가를 돕고 살아요."


'BS아저씨는 더러 주위사람들에게 부지 중에 선행을 베푸는 좋은 '이라고... Kang샘이 말했다.


Kang샘이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BS아저씨 아내는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 외에도 Kang샘이 미주알고주알 BS아저씨의 근황을 남희씨에게 전했다.


"그 양반은 사람도 좋아하지만 동물 사랑도 남 달라요. 그러니까 마나님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그 강아지 두 마리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거겠죠."


"Kang샘은 방송국 기자처럼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라고 남희씨가 말했다.


"다 우리 이웃이고 동포 아닙니까? 인생 뭐 있습니까? 서로서로 형제처럼 지내면 좋지요. 그래서 저는 BS아저씨가 참 좋심더. 강아지 돌보겠다고 마나님과 떨어져서 이곳에 사는 것도 멋집니더."


이미 Kang 샘은 BS아저씨의 열렬 팬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남희씨는 그날 비보를 전해 들었다. 

뜻밖에 BS아저씨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었다.

전 날까지 일상생활을 했다는데 아침에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BS아저씨는 향년 72세였다.


남희씨는 가슴이 아팠다. BS아저씨와는 멀리서 인사나 주고받았던 사이였지만 '밤새 안녕'이란 말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맘으로 주변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선을 베풀고 아침의 이슬처럼 생을 마감하셨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별이 하나 떨어진 것 같았다. 아니 다시 별이 되어 하늘 공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이를 향해 비춰주고 있을 것 같았다.


선을 베풀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이 남희씨 뇌리에 맴돌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남희씨는 자신의 주변 어디엔가도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비록 남희씨가 건강이 여의치 못하고 가진 것은 없으나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봐도 잠이 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BS아저씨에 대한 생각으로 남희씨가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하얗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아픈 마음을 남희씨는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23년 6월 말, 늦은 밤에,  from 남희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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