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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Jul 24. 2023

장화 때문에...

- 내가 뭘 잘못했을까?

"삑삑삑 삐삐빅"

일요일 아침 일찍 현관문 도어록 버튼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연락도 없이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버튼을 잘못 누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도 제대로 못 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 난 듯했다.


'갑자기 급*이 마려웠나?'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울상을 한 남편이,


"죽을 뻔했어, 완전."이라고 하면서 현관 의자에 앉았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잠깐 전에 내 휴대폰에 부재중 통화 표시가 뜬 것을 봤는데 알고 보니 그게 남편이 했던 전화였다.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나는 농담 삼아 남편에게 말했다.


"대통령이 장마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당부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저도 장화를 샀어요."


내 것을 사고 나니 남편에게도 장화가 필요할 것 같았다. 날마다 아들을 돌보러 가는 남편의 장화도 구입했다. 이름하여 '덧신 장화'였다. 알고리즘을 따라 올라온 광고로 알게 된 그 장화는 가히 획기적인 아이템이었다.

[쿠* 에 적힌 레인슈즈 광고]

<비싼 신발 비에 젖게 하시렵니까?>라는 광고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던 장화와 달리 실리콘 재질로 된 것인데 신발 위에 덧신처럼 신는 것이었다.


'상세 설명' 1번에는 '미끄럼 방지, 방수 레인 슈즈'라고 적혀 있었다.


장마철에 우산을 챙기듯이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다가 신으면 될 듯했다. 옆에 앉은 선생님들께도 권했다. 그분들도 신기해하며 몇 켤레를 장만했다.


내가 그 덧신 장화를 처음 신은 것은 바로 어제(7/22), 교회 화장실을 대청소할 때였다. 그것을 신고 화장실 청소를 하니 참 좋았다. 물이 묻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마구마구 시원스럽게 물청소를 할 수 있었다.


"오늘 교회 화장실 대청소 했는데 이 장화 벌써 본전 뽑았어요. 그저 그만이었어요."


깔끔한 실리콘 장화를 남편한테 보이며 자랑을 했다. 




오늘 아침(7/23) 일찍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목사인 남편은 일치감치 교회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 덧신 장화가 빛을 발할 날이 됐다. 현관 의자에 앉은 남편에게 그 장화를 신겼다. 마치 유치원생이 등원할 때 엄마가 장화를 신겨주듯이...


남편은 장화를 신고 비옷까지 입었다. 그리고 우산을 쓰고 가방도 챙겨 들고 집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뿌듯했다. 교회에서 그 장화에 대한 반응이 괜찮으면 하나씩 선물을 해야겠다고 까지 맘먹고 있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 사람아, 이거 당장 버려! 당신이 이것 신고 교회 오다가 변 당할까 봐 걱정됐어. 장화 신고 오지 말라고 하려고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아서 올라왔네." 남편은 아예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말을 했다. 

[남편이 덧신 장화를 신고 가다가 넘어진 아파트 진입 경사로. 내가 화장실 청소 할 때 미끄럽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은 화장실 타일이 미끄럼 방지가 되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 정도가 아니야, 큰 일 날 뻔했어. 이건 장화가 아니라 스케이트야. 미끄러워서 사람이 제어를 못할 정도였어. 넘어졌는데 팔꿈치, 엉덩이 다 다쳤어." 


남편은 거의 실성한 사람 같았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엄청 놀란 것 같았다.


'이건 무슨 날벼락인가?'라고 생각하며 내가 했던 첫마디는,


"어? 이거 '미끄럼 방지'라고 적혀있었는데..."였다. 


우리 내외가 장화 때문에 시끌벅적하게 얘기를 하고 있으니 딸 내외도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이 와중에 그 광고 멘트를 말씀하시네요? 그 광고가 그렇든지 말든지 중요한 것은 아빠가 넘어지셨다잖아요?"


나에게 늘 충언만 하는 충신 같은 딸에게 아침부터 말펀치를 한 방 맞았다.


'아, 나의 이 'T'(MBTI 중) 성향이 또 문제네.'


남편이 어느 정도 다쳤는지 걱정하고 식겁한 남편을 달랬어야 했다. 'F' 성향들은 이런 경우에 그 몹쓸 것 같은 덧신 장화를 흠씬 욕 해주는 모양이다. 엉덩방아로 정신없는 남편을 공감해 줬어야 했다.


천만다행으로 남편은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자고 나 봐야 어디가 아픈 지 알 수 있지 않던가?


그 순간, 내가 추천해 준 덧신 장화를 샀던 동료 교사들에게 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남편이 당한 일을 그들은 당하면 안 될 일이었다.


[동료 교사는 아마도 F성향인듯 했다]




다행히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배 인도를 무사히 마쳤다. 동료교사의 말처럼 남편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은데? 내가 뭘 잘못했을까?


[커버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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