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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23. 2024

그 아기

- B로 시작하는 Baby(아기)

참 오래전이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가고 있었다.

동구 밖 둥천 뽈나무걸(버드나무거리) 그늘 밑에서 꼬맹이들은 놀이에 한창이었다. 골목 어귀 우물가에는 웃터댁 모지리 며느리가 하염없이 국수를 헹구며 나를 구경했다. 우물에서 여러 번 헹굼을 당한 국수는 이미 불어 터졌다.


골목 어귀 시궁창에는 설거지할 때 흘려보낸 밥풀 몇 알이 보였다. 우리 집 함석 대문 앞까지 당도했다. 그냥 발로 밀기만 해도 열리는 함석문을 그날따라 슬며시 밀었다. 마루에 처음 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마루에 앉아 있는 아기에게 시선이 꽂혀있었다. 사과 머리를 한 아기가 손뼉을 치며 방긋방긋 웃었다. 돌쟁이 정도 되어 보였다.


"이야(언니) 왔구먼."


그 여자를 대신하여 작은 방 마루에서 할머니가 아기에게 나를 소개를 했다.


"누구... 신지?" 여자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응, 나? 작은 엄마야."

'내가 언제 이런 작은 엄마를 둔 적 있었던가?'




첫 번째 작은 엄마는 키가 크고 미인이었다. 어느 날 작은 엄마가 내 앞에서 보따리를 싸더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라며 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하필 내가 첫 번째 작은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은 엄마는 둥천길을 유유히 걸어갔다. 작은 엄마는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같은 속도로 걸었다. 단 한 번도 뒤를 보지 않았다. 나에게 손도 흔들어 주지 않았다.


얼마 후에 두 번째 작은 엄마가 생겼다. 볼이 넓고 손이 도톰했다. 넓은 볼에 날이면 날마다 파운데이션을 잔뜩 발랐다. 손가락에는 매일 다른 색깔의 매니큐어를 발랐다. 볼 넓은 작은 엄마는 숙이와 현이 낳았다. 현이가 젖먹이였을 때, 애들을 우리 집에 팽개쳐 두고 작은 엄마는 대구로 가버렸다. 그 후론 다시 오지 않았다. 숙이와 현이는 우리 5남매에다 덧 붙여졌다. 밤마다 현이가 울었다. 현이가 울면 숙이도 따라 울었다. 남매가 울어대니 우리는 단잠을 자지 못했다. 현이와 숙이 때문에 엄마는 점점 거칠어졌다. 큰 소리로 할머니와 아버지께 대들었다. 집안은 전쟁통 같았다.


세월이 훌쩍 흘렀다. 그런데 아기를 대동한 세 번째 작은 엄마라는 분이 나타난 것이다. 아기를 보니 혈육이란 게 그런 건지? 그냥 정이 갔다. 그러나 그 아기를 안아 주지는 않았다. 그 아기가 과연 나의 사촌이기나 한지? 얄궂은 생각도 들었다. 하여간 나는 그날, 거기서, 그 아기를 딱 한 번 봤다.


몇 년이 지났을까? 작은 아버지가 의문사했다는 비보가 들렸다. 나의 어머니더러 시신을 확인하고 수습하라는 연락이 왔었다.


"뭔 일에 잘못 연결됐나 보더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단다. 복도 지지리 없으시구먼"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의 장례를 일상인양 해치웠다.


작은 아버지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 형제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어머니 팔순 때였다. 그러구러 1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우리는 쉬이 만남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사정과 형편이 다 달라서 그게 쉽지 않다. 친 혈육도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살면서 때때로 숙이와 현이의 안부가 궁금하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촌인 그들과는 연결 고리가 없다. 숙이는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현이는 병약하여 사람 구실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왜 단 한 번 봤던 그 아기가 때때로 보고 싶을까? 아기는 자라 지금쯤은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뿌리를 모르는 채 살고 있을 그 사촌 동생의 안부가 궁금하다. 혈육인데 이렇게 서로 평행선처럼 다시는 만나보지 못할 모양이다. 그 아기를 생각하면 참 허허롭다.

그 아기가 자기의 뿌리를 알까? 그때 출생신고라도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 아기의 인생이란? 참 그렇다. 혹시 기찬 우연으로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있을지?

 

고향집 마루에 앉아 앞니 하나 뾰족 올라온 채 방실거리던 그 아기를 한 번만 안아 줄 걸...

혈육으로 흐르는 알 수 없는 정이 나를 눈물짓게 한다.



우리 다시 만나면 좋겠는데... 인연이 닿으려나?

[사진:픽사베이]

#아기 #혈육 #고향 #작은아버지 #작은엄마 #사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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