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30. 2024

'미다스의 손'이란?

B로 시작하는 Boardbox(보루박스/종이 상자)

가야산 자락, 고향, '야로'를 떠나온 지 몇십 년이 흘렀다. 그러나 고향에 가 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냥 그리움 속에 있는 고향이다.


우리 오 남매의 학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덜컥 세상을 떠났다. 아름드리 빚을 안은 어머니가 홀로 우리의 학업을 마무리시키고 혼사까지를 치러야 했다.


 "난, 돈 많은 집의 후실로 가서라도 우리 집안을 꼭 일으키고 싶어."


앞이 막막하던 때에 여동생은 그런 맘을 품었다. 그것이 여동생의 진심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러구러 우리 오 남매는 하나, 둘 차례대로 학업을 마쳤다. 그동안의 삶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지난하고 팍팍했다. 다행히 우리는 각 자의 반려자를 만났고 순서대로 결혼했다.


여동생의 신혼 생활은 맨땅에 헤딩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다. 우리 집안 살림과 사업체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빚이 가득한 마이너스로 출발했다.


몇 년 후에 동생은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동업자가 사업 자금을 들고 사라졌다. 애간장이 끊어질 듯한 배신이었다. 그러잖아도 지하 동굴 같은 삶이었는데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었다. 그건 생지옥이었으리라.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나날을 보냈던 동생 부부는 보루박스(Boardbox)를 만들기 시작했다. 보루박스는 다른 말로 종이상자다.


가야산 자락에서 출발한 야성강 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 나오면 분기라는 삼거리가 있다. 로터리를 돌아 왼으로는 대구, 오른쪽으로는 거창으로 가는 길이다. 동생의 보루박스 공장은 분기 근방에 있었다. 공장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야트마한 산이 있었다. 동생의 공장은 배산임수를 갖춘 명당이었지만 인가는 거의 없었다.


그곳에서 동생 내외는 묵묵히 일하며 땀을 흘렸다. 그 시절, 동생은 일에 골몰하여 사람과는 거의 소통하지 못했다. 그 때의 동생을 돌아보면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묵묵히 양을 치며 지냈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동생은 그냥 주구장천 일만 했다. 하지만 수동으로 하는 작업이라 일하는 것에 비해 수익은 미미했다. 그렇게 분기에서 15년 정도를 전전긍긍하며 보루박스 공장을 운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대구에 있는 보루박스 공장에서 제안이 왔다. 평생 포장박스 제작을 했던 그분은 동생 내외와 거래를 해왔었다. 성업 중이던 자신의 공장을 동생 내외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그분이 너무 연로하여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구 지역에서 보루박스 제작 전자동 기계를 갖춘 유일한 곳이었다. 인수 조건이 좋았다. 일단 계약금만 걸고 나머지 잔금은 몇 년간 돈을 버는 대로 갚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계약금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돈을 좀 빌리려고."


동생이 내게 아쉬운 부탁을 했다. 참 난감했다.


"서운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 약속을 했어.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보증을 서 주지 말고, 돈도 빌려주지 말자,라고..."


그렇게 나는 동생의 부탁을 거절했다. 동생에게 그때 돈을 빌려주지 못했던 것이 내내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 있다.


동생은 백방으로 돈을 융통하여 그 공장을 계약했다. 원래부터 성업 중이었던 그 공장은 동생이 인수한 이후부터는 더욱 일이 넘쳤다. 그 공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치 모터를 단 듯이 잘 굴러갔다. 그래서 몇 년에 걸쳐 갚기로 했던 잔금을 몇 개월 만에 다 갚았다.


대구로 나간 지 5~6년쯤 지났을까? 월세 단칸방에서 지냈던 동생은 전세나 작은 평수 아파트를 거치지도 않고 곧바로 60평 아파트를 샀다. 그것도 대출 없이 현찰 박치기로... 마이너스로 출발했던  동생이 마침내 미다스의 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동생이 손대는 것은 땅이든, 집이든, 공장이든 곧바로 금싸라기가 되었다.


공장 부지로 땅을 샀는데 곧장 그곳이 도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으로 선정되었다. 마치 행정 기밀을 알기나 한 사람 같았다. 또 공장을 구입하면 얼지나지 않아 공장 앞에 도로가 뚫리거나 고속도로 IC가 생기기도 했다. 허물어져 가는 식당을 매입하여 대형 건물로 건축하더니 그것이 금싸라기 같은 부동산이 됐다.


박스 주문량은 폭주했다. 동생네가 감당할 수 없어서 점점 하청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단골 고객이 넘쳐났다. 그렇게 동생은 이른바 서민갑부가 되었다.


'미다스의 손'을 방불케 하는 동생 덕분에  나도 혜택을 꽤 입었다. 내가 집을 살 때마다 동생이 뒤를 봐줬다. 그래서 맘에 드는 집을 먼저 산 후에 차분히 내가 살고 있던 집을 팔 수 있었다. 계약금은 물론 부족한 자금을 동생이 융통해 주니 일처리가 쉬웠다. 차후에 살고 있던 집이 팔리는 대로 동생에게 빌렸던 돈을 갚았다. 그래서 새로 집을 사려고 할 때면 워키토키 하듯 동생과 대화했다. 동생의 판단은 여지없이 맞았다. 동생이 괜찮겠다고 하면 그 촉을 믿고 집을 계약하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샀던 집은 곧바로 값어치가 오르곤 했다.


한편, 동생은 20년 전에 분기에 있던 공장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그런 것은 신경 쓸 여력도 없었거니와 어느 누구도 그 허름한 공장 건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뉴스를 접했다. 동생의 공장이 있던 그곳에 달빛 철도 <구벌(대구)과 고을(광주)을 잇는 철도> 환승역이 세워진단다. 바로 해인사역(야로역)이다. '미다스의 손'이 버려두었던 것은 세월이 지나 어느 순간에 엄청난 가치로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보루박스 제작의 외길 인생, '미다스의 손'인 동생은 형제나 이웃을 돌아보며 살고 있다. 형제들에게 시시때때로 먹거리와 보약 등을 챙겨준다. 힘든 형제에게는 주저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펼친다.


요즘 동생은 또 하나의 건축을 시작했다. 20~30억이 되는 큰 일을 또 진행한다. 아무래도 재미를 붙인 듯하다.


"너한테는 한평생이 너무 짧은 것 같네. 어쩌면 그렇게 할 일 많아? 뭐가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돈줄이 막 보여? 다 좋은데, 이제 나이도 들어가니 건강 챙기며 좀 편하게 쉬어."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동생에게 말하곤 한다. 동생에게는 될 성싶은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나는 평생에 한 번 해보지 못할 큰 일을 동생은 마치 소꿉장난하듯 척척 해치운다.



'미다스의 손'은
기적이 아니라,
성실하게 일하며
도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 듯하다.

동생을 보면 그렇다.


[사진: 동생이 새로운 공장을 하나 더 운영한다며 로고를 생각해 보라고 하여 필자가 제안해 본 아이디어]

#미다스의 손  #보루박스  #종이박스 # Boardbox  

이전 04화 그 아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