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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Sep 19. 2024

후딱 차려낸 햅쌀밥 식탁

- R로 시작하는 Rice(쌀, 밥)

추석 연휴를 맞은 여유 속에서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마침내 교체한 페달식 스토퍼]

비로소 그 일을 할 틈이 생겼다. 바로 현관문 스토퍼를 페달식으로 교체하는 일이었다. 새벽에 주문한 물품이 당일에 도착했다. 세상 살기 참 편해졌다. 명절이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로켓배송으로 받았으니 말이다. 

페달식 현관문 스토퍼는 나의 일상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세컨 하우스는 전실이 있는 구조라 두 개의 스토퍼가 필요하다. 그동안 불편해도 그냥 그냥 지냈다. 기존의 스토퍼를 떼어 버리고 드디어 편리한 페달식으로 바꾸었다.




나의 일상은 항상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할 일이 없다 싶으면 뭐가 망가져서 손봐야 할 일이라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요즘은 사물이 나를 귀찮게 해서 못 살겠네."라고 말하곤 한다. 이번 추석 연휴에 현관문 스토퍼가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면서도 미뤄왔던 일을 명절 연휴에 해결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남편의 눈에는 띄지 않는 모양이다. 

크고 작은 일이 남편을 보면 숨어버린다. 내가 혼자서 끙끙대며 어떤 일을 마무리할 때쯤이면 남편이 나타난다. 일복이 터진 나와 반대로 남편은 지지리도 일복이 없다.




내가 일복 못지않게 타고난 것이 또 있다. 

바로 쌀복이다. 나는 여태껏 쌀을 사 본 적이 없다. 결혼 후에 매년 시댁으로부터 1년 치 분량의 쌀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햅쌀이 나올 때쯤이면 마저 먹지 못한 쌀을 처치하느라 곤란했다. 그래서 미리미리 떡을 해서 나눔을 하거나 지인에게 나눠주곤 했다.


시아버지는 생전에 가지고 계셨던 전답을 미리 다 처분하셨다. 

그런데 문전옥답만은 남겨두어 자녀들이 먹을 쌀을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하셨다. 미꾸라지, 우렁이를 논에 넣어 짓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농사지은 쌀은 믿고 먹을 수 있었다. 맛도 좋았다.


6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더 이상 쌀을 받을 수 없으니 여지없이 쌀을 사 먹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문전옥답을 막내 시누가 샀다. 나눠주기를 잘하는 시누는 매년 가을 추수가 끝나면 형제들에게 쌀 한 가마니씩을 보냈다. 그래서 해마다 시누에게 햅쌀을 받았다. 그것 외에도 이따금씩 여기저기에서 쌀이 들어왔다.


또한, 사고로 누워있는 아들이 독거 중증 환자이기 때문에 '나랏미'라는 쌀이 한 포대씩 배달된다. 

그렇지만 아들은 물 한 방울도 넘길 수 없는 위루관 삽입 환자다. 밥을 먹는 대신에 그의 식사는 경장 영양제다. 매달 배급되는 그 쌀을 필요한 분에게 나눠 주거나 때로는 우리가 먹기도 한다. 요즘 정부미는 예전과 달라서 맛이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쌀을 사 먹지 않아도 된다. 

아무래도 나는 일복과 쌀복을 타고났나 보다.




올해도 막내 시누가 추석도 되기 전에 햅쌀을 보내왔다. 

그런데 올해 받은 햅쌀은 때깔이 고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햅쌀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묵은쌀을 햅쌀로 착각하고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봉황 골드 햅쌀로 지은 밥을 구운 김에 싸거나, 밥을 김자반에 굴려 먹으면 그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햅쌀밥은 잡곡을 넣지 않고 하얀 쌀밥으로 짓는 게 정석이다. 그러면 햅쌀의 풍미를 음미할 수 있다. 또한 햅쌀밥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법이다.


물을 다소 적게 붓고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었는데도 밥은 새하얗지 않았다. 


"밥이 약간 누르스름하네요."

"이 사람, 그거 얼마나 귀한 쌀인지 알아? 그게 바로 그 유명한 ‘봉황 골드’라는 쌀이야."


내 말에 남편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명품쌀 봉황 골드(전남 강진에서 출하되는 봉황 골드 명품쌀에 대한 기사) 


시누는 쑥쌀이나 향기 나는 쌀을 보내오곤 했다. 특별히 올해 받은 쌀은 봉황 골드라는 품종이란다. 


시누가 보내온 봉황 골드 쌀로 지은 밥맛은 끝내줬다.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될 정도였다. 햅쌀밥을 구운 김에 싸 먹는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하랴?


그다음 끼니는 햅쌀밥의 풍미를 최대한 살리는 식탁을 준비하기로 했다.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스캔해 봤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이것저것을 융합하면 때론 근사한 식탁이 된다. 

벼락치기로 하는 일이 어쩌다가 위대한 발명이 될 수도 있다. 대타로 섰다가 일약 스타가 됐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듣는다. 대기만성도 좋지만 벼락치기도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벼락치기로 햅쌀밥 식탁을 차려보기로 했다. 냉장고에 찐 감자와 쌈다시마가 있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찐 감자를 으깨기로 잘 으깬 후에 참치와 섞었다.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주먹밥을 만들어 쌈다시마로 싸니 그 맛 또한 별미였다. 

어느 날은 햅쌀밥에 김자반을 넣어 주먹밥을 만들기도 했다. 햅쌀밥을 다양하게 응용하여 맛있게 먹었다. 


우리의 가을은 햅쌀밥으로 원기를 돋우는 일로 시작되는 셈이다. 해마다 햅쌀을 보내주는 시누에게 감사한 맘이 가득하다. 


짧은 시간에 응용하여 차린 식탁이지만
 담백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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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  #스토퍼  #페달식  #쌀 복  #햅쌀 #봉황 골드  #주먹밥  #쌈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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