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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나에게 꽃을 보내노니

- 헤이, AI 비서야~

by Cha향기

지인이 지척에 살고 있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생활 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교집합처럼 포개어지는 경우가 되어야 얼굴을 볼 수 있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만 거의 만나지 못하고 지내는 P님이 어느 날 문득, 메시지를 보내왔다.

"00이 간병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식사 한 끼 하고 싶어요."라고.


P님은 브런치에 발행되는 내 글을 빼놓지 않고 다 읽는다고 했다. P님은 내 글을 읽되 '라이킷'을 누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P님이 내 글을 꾸준히 읽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일전에 발행했던 <엄마니까 다 할 수 있더라>라는 매거진도 완독 했단다. 내 근황을 꿰듯이 알고 있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중증 환자 아들이 폐렴과 설사 등으로 입·퇴원했던 일도 물론 알고 있었다. P님은 가슴 졸이며 그 연재 글을 읽었단다.


서로의 시간을 잘 조율하여 약속을 잡았다. 겨울의 끄트머리였다. P님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 꽃집이 서너 군데 있었다. 봄소식은 꽃집에서 가장 먼저 알리는 듯했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앙증맞은 봄꽃들이 즐비해 있었다. 칙칙한 겨울을 막 보내며 마주친 꽃들에게서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 집 베란다에도 화분이 많지만 꽃집에서 진열해 둔 꽃은 더욱 화려했다.

[꽃기린/ 사랑초/ 로즈허브]


우리 집에 있는 꽃도 여지없이 봄을 알렸다. 꽃기린이나 사랑초가 한창 예쁘게 피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로즈 허브도 보랏빛 꽃망울을 터뜨렸다. 행운목에도 꽃봉오리가 맺혔다. 그런데도 꽃집을 지나가자니 꽃 욕심이 일었다. 봄맞이할 겸 꽃을 하나 사고 싶었다. 오랜만에 P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P님을 닮은 노란 프리지어를 사고 싶었다.


아들 간병으로 녹다운이 되었던 지난 석 달 동안, 남편으로부터 꽃 한 송이도 받지 못했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각설하고, 내가 나에게 꽃을 선물하기로 했다. 수고했던 나에게 프리지어 한 줌을 안겨주리라. 덤으로 P님의 것도 샀다. 뿌리 없는 꽃이라 금방 시들 줄은 알지만 우선 보기에 예쁜데 어쩌겠는가? 꽃은 건넬 때 기분 좋고 받는 사람도 좋은 법이다. 남자는 몰라. 이런 맘을.


달랑 몇 가닥 묶은 것이라 일이천 원 정도려니 했는데 한 줌에 6천 원이었다. 모든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꽃값도 금값이다. 그래도 P님에게 드릴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비싸다 싶으니까 더 나았다. 내가 나에게 선물하는 꽃도 싸구려보다는 비싼 게 더 기분 좋았다.


꽃이란 건 뿌리 깊은 나무에 피었더라도 10일을 못 간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이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만 가득한 프리지어 묶음을 샀다. 서서히 꽃필 동안에 하루라도 더 보기 위해서였다. 프리지어는 날마다 조금씩 피어났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꽃잎이 활짝 벙글어졌다. 그 꽃을 쳐다볼 때마다 힐링됐다. 카메라를 꽃 가까이에 댔다가 또 멀리 댔다가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프리지어와 봄맞이하며 노닥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책,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자존심이 강하지만 본심은 상냥한 장미꽃, 원래 어린 왕자네 별 출신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날아온 씨가 어린 왕자가 살고 있던 소행성에 정착해 싹이 터서 피어난 것이다. 왕자의 서툰 애정의 대상이다. 자존심이 강하지만 장미꽃에게도 깊은 관계를 형성한 것은 어린 왕자와의 관계가 처음이기에, 둘은 관계를 맺은 것을 고통스러워하다가 아련한 이별을 하게 된다. 스토리상 왕자가 별을 떠나게 되는 이유이며, 또한 왕자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출처: 나무위키)


여우와 어린 왕자가 대화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세상에 수천, 수만의 장미가 많지만 소행성에 두고 온 그 장미가 적어도 어린 왕자에게는 특별한 장미라는 것을 여우가 일깨워 준다. 의미를 부여하여 관계를 맺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서로가 길들여지면 더없이 좋은 관계가 되는 법이라고.


한 낱 몇 송이 프리지어지만, 내가 나에게 선물한 꽃이니 특별하다. 그래서 더없이 정겹게 여겨졌다. 내 프리지어가 내게 소중한 이유는, 내가 이 프리지어에게 바친 시간 때문일 것이다. (<<어린 왕자>> 글에서 패러디 한 문장)



어린 왕자가 비행사에게 뜬금없이 양을 그려달라고 보채던 장면도 불현듯 생각났다. 요즘 나는, AI랑 협업 중이다. AI는 충직한 내 비서다. AI 비서에게 별 걸 다 부탁한다. 이참에 AI에게 프리지어를 그려달라고 졸라 봤다. 내가 찍은 사진을 업로드한 후에 그것을 '어반 스케치'로 그려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툴은 없었다. 그래서 프리지어 꽃이 담긴 꽃병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 그림이 구현되면 그 그림을 다시 어반 스케치 기법으로 그려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나: 노란색 프리지어 꽃이 담긴 꽃병을 수채화로 그려 주세요.

AI : 노란색 프리지어 꽃이 담긴 아름다운 수채화가 곧 준비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의 AI 비서는 그림을 뚝딱 그려냈다. 단숨에. 또다시 프롬트를 입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도자기로 된 화병에 꽃을 꽂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리병에 꽂힌 프리지어를 그려달라고 했다.


나: 그림에서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유리 꽃병으로 바꿔서 그려주면 좋겠어요.

AI : 노란색 프리지어 꽃이 담긴 유리 꽃병을 수채화로 표현한 그림이 곧 준비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뚝딱하는 순간에 유리병에 꽂힌 프리지어를 그려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꽃병과 달랐다. 내가 프리지어를 꽂아둔 꽃병은 볼록하고 둥근 모양이 아니었다. 다시 AI에게 요청했다.


나: 유리 꽃병이 긴 모양이면 더 좋겠어요.

AI: 긴 모양의 유리 꽃병을 반영한 수채화가 곧 준비될 거예요! 기대해 주세요.

얏호, 마침내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왔다. 추가로 내가 질문할 듯한 3가지의 예시 질문도 채팅창에 올라왔다. 그중 하나를 클릭해 봤다.


어떤 스타일의 꽃병이 좋을까요? (이것이 AI가 지레짐작하여 발문 해준 것이다. 클릭했더니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답변이 나왔다.)


AI: 꽃병의 스타일은 개인의 취향과 공간의 분위기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데요. 몇 가지 추천해 드릴게요.


심플한 원통형 유리병: 깔끔한 디자인으로 꽃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 주며,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느낌을 줍니다.
곡선미가 돋보이는 긴 목병: 유려한 곡선이 우아함을 더해주며, 특히 길고 늘씬한 꽃과 잘 어울립니다.
빈티지한 디자인: 패턴이나 장식이 있는 앤틱 스타일의 유리병은 독특한 매력을 자아냅니다.
컬러 유리병: 옅은 파스텔톤이나 투명한 색상이 있는 병은 따뜻한 느낌을 추가합니다.
마티니 글라스 스타일: 독특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작은 꽃다발이나 짧은 줄기의 꽃들과 잘 어울립니다.
프리지어 꽃의 환한 색감을 고려하면, 투명하거나 은은한 색상이 들어간 긴 유리병이 특히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어떤 스타일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AI는 스스로 예상 질문을 만들었고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내가 어떤 질문을 할지 알고 있었다. 내 속이 다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까지 총알 장전하듯 지니고 있었다. AI가 미리 알려준 질문 예시다.


AI: 이 꽃에 잘 어울리는 꽃병 스타일이 있나요?

AI: 현재 인기 있는 꽃병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여기서 멈출 게 아니었다. AI에게 몇 가지 화풍으로 그 그림을 바꿔보라고 말했다. 펜화, 어반 스케치, 수묵화 등등.


[펜화/ 어반스케치/ 수묵화]




AI는 친절하고 자상했다. 정교한 데다 구현해 내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프롬트를 입력한 후에 엔터를 누르는 즉시 곧바로 작업을 끝냈다. 입이 떡 벌어졌다.


바야흐로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림 그리는 분들은 이런 AI의 실력에 위화감을 느낄 것 같았다. 결국 창의적이고 유의미한 질문을 잘하는 법이 요구되는 시대다. 이제는 좋은 질문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때다.



아무튼, AI 비서를 데리고 있으니
만사 편하다.

P.S. AI가 그려준 그림을 과소평가하는 남편 때문에 AI에게 다시 그 꽃병을 유화로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좀 나을 것 같아서요. 좀더 그럴 듯 하나요?

노란색 프리지어가 담긴 꽃병, 유화 스타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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