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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설 속 장면을 그려다오!

- 헤이, AI 비서야~

by Cha향기

'소위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때로는 풍경을, 때로는 맘을 그리는 작가의 묘사력에 늘 감탄한다. 펜으로, 어휘로, 문장으로 그려내는 작가님의 글은 가히 예술적이다. AI에게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부탁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작가님의 소설 속 장면을 텍스트화하여(브런치글은 복사 기능이 금지되어 있음) AI에게 건네며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방 안은 아무도 머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조촐하고 깨끗했다. 벽 쪽으로 붙어 있는 작은 책상 위에 메모지와 볼펜 한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바로 옆으로는 오래된 옷장 하나가 오도카니 서 있었다. 옷장 문을 열자 검고 작은 가방 하나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글을 보고 AI가 그린 그림이다. 제법 그럴싸하다. 이 그림을 댓글로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브런치 댓글 기능에는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툴이 없다. 그래서 이 그림을 sns에 올려 링크를 생성한 후에 댓글로 달았다.


AI는 작가가 묘사한 글에서 어휘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깨알같이 그림으로 그려냈다.

https://www.instagram.com/p/DHPYlFbBoP6/?utm_source=ig_web_copy_link&img_index=3

작가님은 댓글의 링크에 답글을 다셨다.


그 방안의 모습뿐 아니라 주인공이 찾아갔던 섬에 있는 남루한 오두막집 풍경을 그려달라고 했다. AI가 그려낸 바닷가 오두막집 내부 장면이다. 작가님은 이 풍경에 대하여,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멋지다',라는 댓글을 다셨다.




연재 중인 소위 작가님의 소설, <<너에게서 나와, 너에게로 갔다>>의 몇 장면을 AI에게 그려보라고 했다.


너는 택시를 탔다. 새벽에도 택시는 어김없이 달린다. 다리에서 다리를 건너고 골목에서 골목을 넘나 든다. 아파트 단지에서 단지로 빌라에서 빌라로 주택가에서 주택가로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닌다. 너는 믿음직한 택시의 뒷자리에 았아서야 마침내 마음 놓고 졸 수 있었다. 고개를 꾸벅꾸벅 주억거리노라면, 이따금 도로를 밝히고 있던 불빛들이 탁 하고 꺼지며 눈앞에 어둠을 던졌다. 그러면 너는 화들짝 놀라 실눈을 뜨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는 네가 아직 살아있다는 엉뚱한 안도를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AI가 이 미묘한 장면을 그려낼 수 있을지 미덥지 않았다. 이 장면에 대한 그림으로 AI가 그린 것은 잔잔한 소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음산한 범죄 도시처럼 보였다. 그래서 작가님의 소설 묘사를 버려두고 프롬트를 약간 변경했다.


새벽, 택시 뒷자리에 앉아서 앉아서 졸고 있다. 택시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빌라와 빌라 사이를 달리는 중이다. 골목길에 택시가 달리고 있다. 이런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주세요.


그랬더니 두 번째 그림이 나왔다. 길거리에서 한 남자가 술병을 놓고 졸고 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린 그림일까? AI의 두뇌 속이 심히 궁금했다. 내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AI 비서다. 해고할까, 말까?

[첫 번째 구현된 그림/ 두 번째 그림/ 세 번째 그림]


그래서 다시 프롬트를 입력했다.


택시 안에서 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그려주세요. 새벽 풍경, 골목길,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빌라와 빌라 사이.


엥? 그랬더니 못하겠단다. 이런 맹랑한 AI 비서를 봤나?


죄송하지만, 요청하신 삽화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이 장면을 글로 더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도와드릴 수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참아야지, 인내심을 가지고 만족할 만한 그림이 나올 때까지 살살 구슬려야 한다.


불빛 반짝이는 새벽, 아파트 골목길을 달리는 택시를 그려 주세요.


라고 다시 요청했다. 프롬트는 점점 단순하고 명료한 쪽으로 축약되고 있었다. 그렇게 하여 세 번째 그림이 나왔다.


요청하신 새벽의 택시 장면을 곧 완성했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


에고,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실망 빛이 점점 짙어지는 나와는 달리, AI는 나름 신이 난 모양이다. 기대하라며 나를 달래는 게 아닌가? '소위' 작가님의 글 속 장면을 위한 삽화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세 번째 그림을 간택해야 한단 말인가? 아, 차라리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두 번째 그림에서 쓸데없는 부분을 지우기 위해서 캡처했다. 그 순간 디지털 풍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디지털 풍화가 일어나면 질이 점점 떨어기 마련이다.


* 디지털 풍화: xkcd 사진, 음악, 동영상 파일이 인터넷상에서 여러 번 전달되는 과정에서 화질이나 음질이 열화 되는 현상을 풍화에 빗대어 표현한 단어다.(출처:나무위키)


두 번째 그림 속, 앞쪽에서 졸고 있는 사람을 지우고 싶었다. 글 속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럴 때는 AI 지우개를 사용하면 된다. AI지우개로 졸고 있는 남자와 술병을 지웠다.


[AI 지우개 사용 중/ 쓸모 없는 부분을 AI 지우개로 지운 그림으로 완성]


이왕 내친김에 몇 장면을 더 그려보기로 했다.


사무실 바로 옆엔 작은 백반집이 하나 있었다. 너는 거기에서 365일 내내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음식을 먹으면 식비는 지원되지 않았다. 사장은 하루도 쉬지 말고 일하라는 압박을,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밥을 주겠다는 호의로 둔갑시켰다. 식당 장부엔 꼬박꼬박 이름이 적혔다. 그 장부는 밥값을 정산할 용도였지만 실은 야근을 기록하는 제2의 출근부였다. 사장은 두툼한 엉덩이로 직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게걸스럽게 밥 한 그릇을 먹어치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너는 입맛을 잃고 숟가락을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배를 채우고 나면 사장은 매번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이런 그림을 그려냈다. 노답이다. 도대체 AI의 속내를 모르겠다. 맘에 들지 않았다. 더 이상 그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다른 장면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시도해 봤다. 왠지 그 장면이라면 멋진 그림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태양은 항성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 다른 말로 별이다. 태양계는 항성인 태양과 그 중력에 이끌려 있는 주변 천체가 이루는 체계를 말한다. 항성을 가운데 두고 여러 행성들이 일정한 궤도 안에서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 너는 극단에 가면, 태양인 다비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그의 주변을 돌고 있는 수많은 행성들을 목격하곤 했다. 태양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우주의 질서와도 같았다. 행성들 중에서 가장 멀리에 있으면서 눈에도 띄지 않는 존재가 바로 '너'였다. 이제는 태양계에서 퇴출당해 버린 외딴 행성. 너는 명왕성이 되어 아득한 눈으로 태양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헉, 정체불명의 이 그림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작가님이 이걸 보신다면, "이 그림은 뭐예요?"라며 생뚱맞은 표정을 지을 것 같다.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 치고 다른 장면을 프롬트로 입력했다.


수면제 한 주먹을 집어삼킨 엄마가 위 세척을 한 뒤 살아 돌아왔을 때, 너는 아빠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은 죄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다버렸다. 너의 방에는 아빠가 전국의 행사장들을 돌아다니며 구해온 갖가지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눈부신 황금빛 모래가 담겨 있는 유리로 된 모래시계였다. 너는 그 모래시계를 뒤집어놓고 금빛 모래들이 아래로 다 흘러내릴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한 적도 많았다


AI가 이 장면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없나 보다. 못하겠단다. 안 할 맘이다. 이런 정도의 그림 정도는 뚝딱 그려내야지.


죄송하지만, 요청하신 삽화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이 장면을 글로 더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도와드릴 수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I 비서가 연수를 좀 더 받아야 할 것 같다.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하면서 큰소리치고 있나 싶었다. 그래서,


모래시계 하나 그려 주세요.


라고 짧게 말했다. 그랬더니 아주 맘에 드는 모래시계를 그려 냈다. AI는 복잡한 풍경보다는 심플한 사물 하나를 더 잘 그린다는 걸 알게 됐다.



끝으로 가장 분위기 있어 보일 것 같은 그림을 한 장 더 그려보기로 했다.


탕비실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았았다. 너는 잠시 그를 자리에 앉혀 두고 둥굴레차 두 잔을 타서 테이 블 위에 올려놓았다. 차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이 이 대리의 얼굴 위로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그의 안경에 뿌연 김이 서리자 눈동자가 부옇게 흐려졌다. 난방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무실은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내내 겨울이었다. 입을 열자 입김이 먼저 터져 나와 김을 사방으로 흐트러뜨렸다. 순간 너도 모르게 열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과 달랐다. 최악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시키니 AI가 삐친 모양이다. 1번 그림은 '뜨거운 김'이라는 단어만 야무지게 뇌리에 담았던 것 같다. 김 서림이 화재 발생 수준의 연기로 표현되어 있다. 2번 그림은 남/여라고 했건만 두 남자를 그려놨다. 3번 그림은 두 '남녀'를 못 알아듣길래 '남자와 여자'라고 명시했다. 그러려다가 프롬트 지문을 복사하여 수정할 때 '두'자를 미처 삭제하지 못하여 '두 남자와 여자'라고 입력했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실수다. '두' 남자와 여자 라고 했으니 3번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번/2번/3번]

AI 비서를 살살 달래어,


탕비실에서 테이블에 놓인 차를 함께 마시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그려주세요


라고 부탁하여 그려낸 그림은 꽤 맘에 든다. 그러나 작품에 걸맞으려면 '동양인, 남자와 여자'이런 말을 더 넣었어야 했다.


'동양인 남자와 여자'라는 말을 넣었더니 아래에 있는 1번 그림을 그려내는 게 아닌가? 그래서 1번 그림을 다시 '유화'로 그리라고 했더니 또다시 서양인 모습이었다 동양인을 강조하여 프롬트를 넣었더니 중국인 여자 둘이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다. 더 이상 가봤자 좋은 꼴 볼 것 같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1번 / 2번 / 3번]




AI, AI,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인간 없이 AI 혼자서 뭔가를 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AI와 협업, 상생이 길인 듯하다.

결국, AI를 적절하게 비서로 잘 활용하면
많은 도움은 되겠지만
전적으로 AI의 재능이나 지식을 다 신뢰할 건 못 된다.

AI가 해내는 일에 대한
감수를 제대로 하는 일이

AI시대에

인간의 몫이라고 여겨진다.



# '소위' 작가님

#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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