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키나와 구름
지난해 푸꾸옥 가족 여행을 갈 때는 국적기가 하루 1회만 달랑 운행됐었나? 아무튼 그때는 여행 일정상 '저가' 항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4시간 남짓하면 도착하는 곳이니 어떤 비행기인들 무슨 상관이랴 여겼다. 비행시간이 14시간이나 걸리는 항공기를 몇 번 타봤지만 비행기 소음이 성가신 적은 없었다. 난생처음 타본, 저가 항공은 제트기 소음을 방불케 했다. 그때 딸 내외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준비하여 탑승했다. 그걸 끼어보니 그나마 견딜만했다. 저가 항공에는 비행기 의자 등받이에 스크린이 없으니 폰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다운하여 챙겨갔다. 기내식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하여 다시는 저가 항공을 이용하지 않기로 맘먹었다. 이번에는 대한항공 티켓을 어려움 없이 구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준비했고 볼거리도 몇 개 준비했으나 필요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소음도 괜찮았고 등받이 스크린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었다. 기내식도 먹었다. 비행기 입구에서 일회용 이어폰이 제공되기도 했다. 더욱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었으니 비행시간 내내 애로사항이 없었다.
나하 공항에 도착하니 파란 하늘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하늘에 입혀진 구름이 정겹게 보였다. 구름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오키나와 하면 부드럽게 펼쳐진 흰 솜사탕 같은 아름다운 구름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어쩌면 한국의 하늘에도 새하얗고 몽실몽실하게 하늘을 수놓은 구름이 있었을 것이다. '일상을 떠나면 비로소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내게 먼저 보인 것은 구름이었다.
그런데 바람에 실려 흐르는 새털구름 속에 어머니 얼굴이 아른거렸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지금 요양원에서 지내신다. 그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구름을 보시며 하루하루를 멍하니 계실 것이다. 내 사는 데 골몰하여 어머니와 일본 여행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자책감이 마구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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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신 분이다. 남몰래 한 번씩은 일본을 그리워하셨을 텐데 그런 어머니 속마음을 이제야 알아차리게 되다니...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머니를 향하여 맘속으로 엽서를 띄웠다.
To. 엄마
엄마, 미안해요. 난생처음 일본에 와 보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나네요. 엄마가 걸을 수 있었을 때, 그리고 정신이 맑았을 때 우리랑 일본에 한 번 오셨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엄마 맘을 먼저 챙기지 못하고 살아서 죄송해요. 언뜻언뜻 엄마가 일본에서 태어나셨다는 얘기, 귀국하시며 겪었던 이야기, 한국에 정착할 때의 에피소드를 말씀하셨는데 귀 기울이지 못했던 것도 맘이 아파요.
엄마는 일본 어디쯤에 사셨나요? 엄마가 살았던 그 집은 여전할까요? 엄마 꿈에 일본에서 지냈던 유년 시절이 지금도 나오나요?
엄마에 대해 무심했던 것이 이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네요. 앞으로 엄마랑 일본으로 여행 가는 일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엄마 만나러 요양원에 들르면 엄마가 일본에서 지냈던 얘기를 청해 듣고 싶어요. <파친코>나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 일본에 관심이 유난히 가더라고요. 지브리 풍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엄마 생각이 났답니다. 일본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그때도 저렇게 몽환적으로 피어오르며 정겹고 예뻤나요?
엄마, 그냥 모든 게 다 죄송해요. 엄마가 주신 사랑은 측량할 수 없는데 저는 받기만 하고 말았네요.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틈내어 꼭 엄마 보러 갈게요. 그때까지 절 기다려 주실 거죠? 엄마 사랑해요.
2025. 5. 큰 딸 올림
구름을 보며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을 잠시 한 후에 모노레일을 타러 이동했다. 그 열차에 오르니 진작에 일본에 가지 못했던 것이 후회됐다. 남편과 딸 덕분에 내 속에 감춰져 있었던 일본 여행 로망이 베일을 벗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여행 다녔던 어떤 나라보다 쉽게 적응됐다. 오래전에 와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학생들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까?
-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
그 대사가 아련했다.
"나, 혹시, 어느 나라에 가서 살고 싶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일본이라고 말하고 싶어."
뜬금없이 내가 말했다. 안물안궁이었는데...
일본과 내가 금방 어울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머니의 DNA가 스며 있기 때문인 듯하다.
서두르지 않으며 조용조용한 일본 국민성이 모노레일 안에서 느껴졌다. '빨리빨리'에 젖어 있으며 목소리 높이던 우리나라 문화와 비교됐다.
모노레일을 타고 국제거리에 있는 호텔에 당도했다. 호텔 프런트데스크에 근무하는 호텔리어는 단정하고 정갈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상대방만 들을 만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아 짐을 호텔에 맡겨 두고 '오키나와 월드'로 갈 참이었다.
일본에는 디디(DiDi) 택시 앱이 있다. 딸내미는 이미 그 앱을 깔아 두었단다. 딸내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등, 일본을 몇 차례 다녀왔었다.
호텔리어와는 영어로 소통하니 어려움이 없었는데 택시기사와 통화는 쉽지 않았다. 택시가 제대로 우리 앞에 당도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근처에 오긴 한 모양인데... 우리나라도 카카오택시를 부르면 자칫 도착지 설정에 에러가 생겨 정확하게 택시를 맞닥뜨리지 못할 경우가 있잖은가? 데스크에서 우리를 살펴보던 호텔리어가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뾰족구두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게 아니라 남방셔츠와 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불편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녀는 우리 폰을 건네받아 택시 기사와 유창하게 (당연히 모국어이므로) 대화했다. 호텔리어 덕택으로 무사히 택시에 탑승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이정표를 훑어 보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감이 잡혔다. 건물에 붙어있는 간판을 보면 그곳이 뭘 하는 곳인지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영어와 한자를 읽고, 남편은 한자와 일본어를 읽고, 딸은 영어와 일본어로 이정표나 간판을 읽었다. 한자를 배운 건 학창 시절이었는데도 그게 읽어진다는 게 신기했다. 장기 기억은 단기 기억과 달리 용량 제한이 거의 없으며, 수년 또는 평생 동안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더니. 일본에서 한자와 영어를 읽을 수 있으니 낯선 이국 같은 느낌이 덜 했다.
택시로 오키나와 월드를 향해 가는 길은 여행의 한 코스 같았다. 멍 때리며 하늘만 보고 있기만 해도 한 나절 보내겠다. 맑은 하늘에 하얗게 떠다니는 구름이 맘을 부풀게 했다. 택시를 타고 가며 우린 계속 감탄을 연발했다.
하늘이 구름옷을
샤랄라라
멋지게 입은 날이었다.
5/19 ~ 5/22(3박 4일)에 다녀온 '오키나와' 가족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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