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이라고 연발하다

- 동남아시아 최대 지하 미술관, 종유석 동굴

by Cha향기

오키나와 여행이 주는 장점은 현지에 도착하여 곧바로 당일 일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여타 여행지는 거기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야간 비행을 하지 않고 아침에 출발해도 됐고 여행이 끝난 마지막 날 오후에 귀국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좋았다.




짐을 호텔에 맡겨두고 (체크인 시간이 아니었으므로) 곧바로 첫 코스, <오키나와 월드> 로 향했다. 택시로 이동했는데 그것도 해볼 만한 것이었다. 지브리를 연상케 하는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곳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종유석 동굴이 있었다. 종유석 동굴 몇 군데를 가본 적 있다. 동굴이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맘으로 습기 찬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린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어메이징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수 없이 돋아난 종유석은 마치 대형 샹들리에 벌브 커버가 잔뜩 매달려 있는 듯했다. 그동안 여행지에서 어메이징을 연발하며 봤던 곳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자연을 넘어서려는 인류의 역작 앞에서 감탄했던 곳이 몇 군데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인간이 참 작아 보이던 순간이었다. 수천 갈래의 물줄기가 땅을 찢듯 쏟아져 내리는 그 장면은, 마치 지구 숨소리를 듣는 듯했다. 그 경외감 앞에서 말을 잃었다.


온타리오 호수는 버스로 온종일 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던 상상 초월 크기였다. 어쩌면 그 호수크기는 우리나라 전체보다 클지도 모른다. 버스 창 밖으로 보이던 호수는 마치 대양 같았다. 오, 놀라워.


만리장성 앞에서 어메이징을 외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지구의 숨결처럼 이어지는 그 돌의 흐름 앞에서, 조용히 숨을 죽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성을 쌓기 위해 힘을 모았을까? 평생 그 돌만 쌓다가 죽은 사람도 많았을 것 같았다. 끝도 없이 긴 그 성에서 인간의 집념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 마천루(108층)에 올라갔을 때 마치 바벨탑 꼭대기에 선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 쌓고 쌓으면 그런 마천루를 만들어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어메이징을 외쳤다. 발밑의 세상은 장난감처럼 작았고, 숨조차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대만 예류 지질 공원이 있는 바닷가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자연이 만들어 낸 조각품이 인간의 예술을 비웃는 듯했다. 여러 가지 버섯 모양의 바위들을 보며 자연은 인간과 클래스가 다른 예술가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인간은 절묘한 자연의 재주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버섯 모양의 기암들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 예술품 같았다. 그 어떤 조각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손길이 느껴졌다.


뉴욕 그라운드 제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rld Trade Center) 재건의 현장 앞에서는 가슴이 턱 막혔다. 한 순간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그곳에서 그냥 주저앉지 않고 미국은 보란 듯이 일어서고 있었다. 마치 항거하듯 그 모양 그대로 그러나 더 멋지게 건축해 낸 걸 봤다. 수많은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그라운드 제로 앞에서, 무해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는 패러독스를 내세우는 미국의 저의를 가늠해보고 싶었다. 그곳은 아픔의 기억이 머무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극복의 의지가 자라나는 곳이기도 했다. 인간 정신의 불굴함을 보았다.




오키나와는 열대, 아열대 기후로, 연간 강수량이 많고 땅속이 따뜻해 미생물 활동이 더 활발해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다.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땅속으로 스며든 빗물과 결합해 약산성이 되어 석회암을 녹인다. 녹아내린 석회암 성분이 동굴 속 틈새로 배어 나오면서 물과 분리되고 종유석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산호를 주성분으로 한 오키나와 석회암은 성장 속도가 3년에 1mm씩 성장한다니 놀랍다. 그러므로 종유석은 자라는 돌, 즉 돌나무인 셈이다.


위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리면서 조금씩 자라 아래로 내려오는가 하면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돌이 살아 숨 쉬는 동굴이었다. 적어도 그 안에서는 돌이 광물이 아니라 식물인 곳이었다. 종유석에서 떨어진 물은 계곡을 이루고 그 계곡 속에는 '케이브볼'이란 것이 눈에 띄었다. 특히 위에서 아래로 자라서 내려오는 것을 빨대 종유석이라고 하는데 속이 빨대처럼 비어있어서 그 가운데로 지하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가지 않으면 틈틈이 그 지하수를 맞게 된다. 하나의 기둥이 되어버린 석주도 많았다.


종유석은 100만 개 정도이며 동굴의 길이는 5km 된다고 한다. 그러나 890m 정도만 개방하고 나머지는 연구용으로 비공개해 둔 상태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보느라 정신없는 나와 달리 남편 얼굴은 하얬다. 내가 못 보는 공포영화를 잘도 보는 양반이 종유석이 자기에게로 떨어질 것만 같다면 떨고 있었다.


"만약 그런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일어났다면 이 동굴을 폐쇄했겠죠.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일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나는, 떨고 있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귀신영화, 재난영화, 폭력영화 등을 못 본다는 나를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런데 위를 쳐다보는 순간, 아닌 게 아니라 한 두 개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슬쩍 들어 섬찟했다. 남편은 '송곳 공포증'이나 '낙석 공포증' (덜덜 떠는 남편을 보고 붙여 본 불안장애 증후군) 같은 특정 포비아를 가지고 있을 듯했다.


자연이 만든 조각 미술관, 그 동굴 안에서 관람객이 아니라, 한 점의 먼지처럼 작아졌다. 종유석 하나하나가 마치 지구가 써 내려간 한 편의 서사처럼 느껴졌다. 수십만 년 동안 천장에서 뚝뚝 떨어져 만들어진 천연 조각들 앞에서, 나는 그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지구가 만든 예술이란 이런 거구나. 자연 예술의 끝판왕이구나.




동굴 관람을 마친 후에 열대과일 정원하부(독사) 박물관도 들렀다. 열대과일 정원에는 어떤 나무에 기생하고 있는 파초가 보였다. 어쩌다 거기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까? 파초는 뿌리를 내리고 보니 어라, 땅이 아닌 고목 둥치였겠지. 파초는 본능적으로 뿌리를 통해 힘껏 물기를 빨아들였으리라. 그런데 그게 천수답에 심기운 한 낱 풀 신세인 자신의 본분에 어울리지 않는 영양제였다니. 필요할 때 언제라도, 목마를 때 언제라도, 때가 되면 언제라도 빨아들이면 되는 나무 둥치였다니. 파초는 땅에 심기지 않아서 이제는 틀렸구나, 라며 생을 포기하려던 절망적인 처지에서 화수분 혹은 로또를 맞은 셈이었으리라. 전화위복이었겠지. 가뭄을 걱정하랴, 장마를 걱정하랴? 배 고프면 빨아들이고 배부르면 그냥 있으면 되니 세상에 그런 명당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하부 박물관은 파충류를 전시하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라곤 했지만, 내키지 않아서 입구에서 멍 때리고 있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눈앞 뷰가 그림 같았다. 평화로운 로컬 마을 풍경이었다.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는 자연 박물관에 있는 기분이었다. 남편과 딸내미는 생각만 해도 오싹한 하부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유유히 내게로 다가왔다. 깨보다 작은 벌레도 무서워하는 딸내미가 그런 걸 보고 나오다니 아이러니였다. 천상 샌님 같은 남편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관람을 끝내고 나오며 히죽히죽 웃는 모양새가 스릴 영화를 보고 나오는 표정이었다. 옥천동 동굴 안에서 하얗게 질렸던 사람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에 반해 정작 나는, 파충류 같은 걸 보면 징그럽고 무서워서 소름이 돋는 증후군인 미끄덩 공포증(나의 뇌피셜로 만든 용어)이 있는 모양이다.


이어서 유리 공예 마을을 거쳐 전시장에 들렀다. 세상에 예쁜 것들은 거기 다 있었다. 우린 수저받침 한 세트를 샀다.

[나무에 아예 뿌리를 박고 자라는 파초/ 하부 박물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앉아서 봤던 뷰]
[유리 공예 전시]


오키나와에
약 30만 년 전 산호초에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옥천동 동굴이 있었어요.
어메이징을 연발케 하는 종유석이

주렁주렁 ~
송골송골 ~
뾰족뾰족 ~
쭉쭉 ~
주르르 ~

매달려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게 떨어질까 봐
무서운 분은
청심환을 드시고 가는 게 좋겠어요.


5/19 ~ 5/22(3박 4일)에 다녀온 '오키나와' 가족 여행기입니다.

#오키나와

#옥천동굴

#종유석

#하부(독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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