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바고 커피 웍스 오키나와
이번 여행을 손가락에 끼는 반지에 비교한다면 지바고 커피 웍스에서 보냈던 때를 반지에 있는 다이아몬드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왜냐하면 바닷가에서 멍하니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쉼 없었던 일상을 멈추고 낯선 곳에서 내 삶을 관조해 볼 수도 있었다.
그동안 내 삶은, 동동거리며 달려왔으나 제자리 뺑뺑이하는 것처럼 그대로였다. 어정쩡하여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지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일상의 리듬을 꽉 부여잡고 바둥거렸다. 혹시 그걸 내려놓으면 끝장 날 것 만 같았다.
살다가 정체기를 만나면 누구나 숨이 막히기 마련이다. 그 답답함이란 질식과 진배없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정체 트랩에 걸려 13시간만 갇혀 있어도 못 견딜 판인데 13일도, 13개월도 아닌, 무려 13년을 똑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삶이 마비되었으니 우리 삶도 풍에 걸린 듯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13년간 아들은 별다른 변화 없이 그야말로 정체된 채 병상생활만 했다. 사실, 질병에 걸린 환자가 아니라 건장하던 청년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고로 얻어걸린 병상이다. 그런 험악한 세월을 보냈으니 옆에서 지켜보던 딸 말마따나 내 삶에는 환기와 퍼프가 필요한 게 맞았다.
그 정체의 늪에서 잠시 유체이탈하듯 빠져나와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사위도, 장모님은 너무 틈이 없으시다, 온통 일 속에 매여 사시는 것 같다, 이제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사셔야 된다,라고 딸에게 말했단다. 본인 자신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시선이 객관적이고 정확하기 마련이다. 도저히 더는 아니겠다 싶었던 딸 내외가 우리 부부를 그 쳇바퀴에서 잠시 벗어나도록 해보려고 그토록 애를 썼나 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다른 길은 없다고 여기며 왔는데, 딸 내외가 바라본 내 일상은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같았나 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었지. Better late than never! 캬, 너무 멋진 말이다.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무척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쉬면서 가는 것이 전혀 쉬지 않는 것보다 백배 낫겠다.
아메리칸 빌리지 미하마 거리를 빠져나와 해변 쪽으로 잠시 걸었다. 딸내미는 구글 맵을 켜고 익숙한 동네를 걷듯 우리를 가이드했다. 그러더니 허름하고 누추해 보이는 카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예요."라는 딸의 말에,
'엥? 이게 우리가 오고자 했던 카페라고?' 라며 내심 놀랐다. 서너 명의 직원이 세상 바쁠 것 없다는 몸짓으로 커피를 끓여내고 있었다. 카페 안 풍경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몇십 년을 사용했음직한 몹시 낡은 스툴 의자 몇 개와 두어 개 테이블이 전부였다. 지바고 커피 웍스 오키나와는 더할 나위 없이 협소했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대세인 요즘에 보기 힘든, 작은 카페였다. 겨우 열명 남짓 앉을 만한 공간이었다. 카페지기는 그걸 전통과 감성이라고 여기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겠지. 다행히 그 오밀조밀하고 답답하기까지 한 카페는 바다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그 카페에 현대식 첨단 장비와 집기들이 꽉 들어차 있다면 그것도 병맛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테이크아웃용 커피를 주문하여 야외 테라스로 나갔다. 그러므로 그 카페는 커피를 주문하는 곳일 뿐이었고 카페 안에 머물기보다는 대부분 바다 뷰를 한껏 즐길 수 있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 카페는 세상에 다시없을 정도로 목이 좋은 곳이었다. 카페 앞이 망망대해라니. 수평선에 닿아있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다.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원 없이 볼 수도 있다. 그 누가 이런 카페를 좋아하지 않으랴? 카페는 역시 뷰다. 향이나 맛은 멋진 뷰 때문에 저절로 좋게 된다. 그런 명품 뷰를 지닌 카페라면 커피값은 부르는 게 값이어도 된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카페 투어야말로 해 보고 싶었던 로망이다. 딸이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정보를 서치 해서 찾아낸 곳일까? 보나 마나 카페 댓글 뷰도 깨알같이 챙겨봤을 것이다. 세상에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또 여러 개의 블로그도 참고했을 것이고...
우린 카페 안에서 잠깐 커피를 마시다가 밖으로 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다. 넓은 바닷가에 있는 지바고 카페는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아메리칸 빌리지에 왔다가 카페에 갈 사람은 자동적으로 지바고 카페로 발길이 닿을 판이었다. 그러니 카페가 허름하다느니, 냉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느니, 집기가 낡았다느니, 직원들이 과묵하다느니, 그런 불만은 없을 것 같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투망을 쳐둔 것처럼 그 카페로 들어가겠다. 낚시에 걸린 고기처럼, 손에 잡힌 물고기처럼 지바고 카페로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할 것만 같았다.
Le ciel est bleu.(하늘은 푸르다)라는 불어 문장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늘이 파랗다!'라고 하기에는 뭔가 밍밍한 표현일 정도로 하늘이 푸르렀다. 하늘, 구름, 해변, 바닷가 수평선, 럼주통 의자, 테이블,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점등인이 켰음 직한 가로등, 야자수 나무, 해변가 바닥에 그려진 세계지도, 등등.. 모두가 입체파 그림처럼 보였다.
커피잔을 들고 아무 데서나 앉아 바다 멍을 때리면 됐다. 더웠지만 오월 바다풍이 솔솔 불어와 볼을 간지럽히는 게 그다지 싫지 않았다. 바닷가 럼주통 모양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모형 돛단배에 앉아 쉬는 듯, 노는 듯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좀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태양이 잠시 졸았으면 좋겠다는 엉뚱 발랄한 생각도 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시간은 지독히 느리게 가는 법이고, 좋은 타임은 쑥쑥 쏜살같이 지나간다. 우리는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우리의 감춰두었던 비밀병기, 까르르 웃음이 막막 터져 나왔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어느덧 점심때가 다가왔다. 내 고민과 애환을 넉넉히 받아주었던 카페 앞 해변가를 떠났다.
백화점 푸드코트로 옮겨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날 점심은 예약해 두지 않았다. 발길 닿는 곳에서 먹을 작정이었다. 푸드코트는 시끌벅적한 법인데 사람들이 조용조용 속삭이며 얘기했다. 일본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지 않기로 모두들 약속한 듯했다. 우리나라였다면, oo 번 손님, ◎◎식사 나왔습니다, 라며 큰 소리로 알리곤 하는데, 그곳에선 그냥 눈빛으로 말했다. 최대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친절과 상냥함을 무조건 좋게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일본인은 말과 속이 다르다"라고 하지 않던가? 일본인은 태도와 달리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편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혼네와 타테마에"의 개념과 관련이 있단다. 혼네는 진심, 속마음을 뜻하고, 타테마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태도를 의미한다. 일본인들은 상황에 따라 혼네와 타테마에를 구분하여 사용하며, 때로는 타테마에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갈등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단다.
점심 식사 후에 동전을 넣으면 작동되는 안마 의자에 누워 잠시 쉬었다. 백화점 안이지만 하도 조용하여 마치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안마의자에 누워 우리는 잠시 오수를 즐겼다.
오후에는 테르메 빌라 츄라유라는 노천 온천으로 이동한단다.
"아빠는 이번 여행에서 뭘 해보고 싶으세요?"
"난, 온천이지."
딸내미는, 오전에는 아메리칸 빌리지 방문, 오후에는 온천욕 하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우리 부부는 여행 취향이 서로 달랐다. 여행도 각자 취향 따라 하는 시대다.
지바고 카페 앞 그 바닷가는
오래오래
내 마음에 저장되어 있을 것 같다.
언제 다시, 지바고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을까?
5/19 ~ 5/22(3박 4일)에 다녀온 '오키나와' 가족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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