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이, AI 비서야~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더운 날씨지만 나의 비서, AI는 더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 비서에게 시화(詩畫)를 그려 달라고 부탁할 참이다.
나: 시화(詩畫)를 만들 수 있나요? 가령, 제가 시를 드리고 그림이나 사진을 함께 제공하면, 그 위에 시를 써낼 수 있나요?
AI: 물론이죠, oo님! 저에게 시와 함께 그림이나 사진을 보내주시면, 그 이미지 위에 시를 어울리게 배치해서 시화처럼 표현할 수 있어요.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단히 안내드릴게요:
시 제공: 직접 지으신 시 또는 공유하고 싶은 시를 알려주세요.
이미지 업로드: 사진이나 그림을 첨부해 주세요. 이미지 분위기에 맞춰 시를 배치할 수 있어요.
디자인 방향: 원하시는 분위기나 느낌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예: 서정적인 느낌, 모던한 감성 등.
결과물 생성: 시를 이미지 위에 어울리게 배치한 시화를 제작해 드려요.
지금 시와 이미지를 공유해 주시면 바로 시작해 볼게요? 아니면 먼저 어떤 스타일의 시화를 원하시는지 얘기해 줄래요?
캬아, 처음부터 AI는 시화 제작에 자신만만하다. 이번 미션은 금방 해낼 조짐이 보인다. 세상엔 쉬운 게 없다고들 하는데 오늘은 쉽게 끝날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로 시화를 만들어 봐야지. 아들이 병상에 눕게 되면서부터 정현종 시인님의 <방문객>을 무척 좋아하게 됐다. 또한 이 시는 브친, 아헤브 작가님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라는 글에서도 언급된 적 있다.
나: 이 사진 위에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입력해 줄래요? 라면서 사진 한 장을 업로드했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하늘이 드높고 맑아서 찍었던 사진이다. 하늘을 배경 삼아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도 여간 예쁜 게 아니었다. 이 사진에 시어(詩語)를 입력하면 멋진 시화가 될 것 같았다. 하늘과 구름에다 시어를 뿌린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자못 궁금했다.
AI: 여기 시화가 완성되어 가고 있어요! 이미지와 시의 감성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순간을 담았어요.
⚠️ 참고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은 저작권이 있는 작품이라 전문을 입력할 수는 없어요. 다만, 시의 일부 구절(예: “사람이 온다는 건…”)을 활용하거나 시의 분위기를 담아 디자인할 수는 있어요.
이미지를 확인하신 뒤, 원하시는 수정이나 추가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그러더니 AI는 뚝딱 시화 작품을 완성했다. 마치 시화를 제조하는 공장처럼 금방 만들어냈다. 완성도는 좋았으나 곰곰 생각하는 면이 없고 다소 무성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AI: 시화가 완성되고 있어요. 사진 속 잔잔한 분위기와 정현종 시인의 시적 세계가 어우러지며, 하나의 우주처럼 다가오는 이미지가 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곧 감성 가득한 시화를 보여드릴게요!
내친김에 산책길에서 찍었던 사진 2장을 더 내밀며 방문객 시 일부를 입력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AI 자신이 내키는 대로 시화를 만들어 냈다. 시화(1)에서는 <방문객> 시의 일부가 아닌, AI가 패러디 한 문구를 떡하니 넣어 시화를 완성해 놨다.
나: 이건 제가 원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반드시 정현종의 <방문객 > 시 전문 일부를 넣어서 완성해 주세요.라고 주문했더니,
AI: 알겠습니다, oo님. 조금 더 섬세하게,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의 분위기와 첫 구절을 사진 위에 조화롭게 녹여낸 시화를 제작했어요. 이제야 진짜 '방문객'이 다가온 듯한 느낌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이미지가 곧 나타납니다—함께 감상해 보세요. 라고 하면서 단 시간에 시화(2)와 (3)을 완성해 냈다.
나: 기찻길 플랫폼에서 누군가를 맞이하는 그림을 구현하여 거기에 이 시를 쓰면 멋질 것 같아요.
AI: 시적 순간이 담긴 따뜻한 시화, 이제 곧 완성됩니다.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로, 기찻길 플랫폼에서 누군가를 맞이하는 장면을 담았고—그 위에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일부 구절이 잔잔하게 얹혀 있습니다. 잠시 후 이미지 카드에서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어요. 마음에 드시는 분위기인지 알려주시면, 조정도 가능해요
AI가 시화(4)를 단숨에 구현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나: 좋아요. 그런데 이 장면에서 등장인물이 여성이면 좋겠어요. 내가 시화(4)를 본 후에 뜨악하여 말했다.
AI: 여성 인물이 따뜻하게 누군가를 맞이하는 기찻길 플랫폼의 장면을 담은 시화—지금 막 완성되고 있어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일부 구절을 함께 녹여내어, 그 순간의 감정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도록 표현했어요.라고 하면서 AI가 그림의 인물을 여자로 금방 바꿔준다. 참 잘한다. 그게 이 시화(5)다. 그런데 푹푹 찌는 여름에 그림을 보고 있자니 여성이 입고 있는 옷이 무척 더워 보였다.
나: 좋아요, 이제 이 시를 공항 대합실에서 지인을 맞이하는 장면의 그림에 입력해 주세요. 등장인물은 여자로, 옷은 라운드 흰색 민자 반팔 티를 입은 모습으로 부탁드려요~
그 말에 시화(6)가 구현됐는데 시 전문의 배치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여 조정하고 싶었다.
나: 이건 맘에 들긴 하는데, 글씨 크기가 더 작으면 더 좋겠어요. 글씨를 작게 하여 시 전문을 두 사람 사이 공간에 다 들어갈 정도로 조정해 봐 주세요.
그래서 이 시화(7)가 구현됐다. 그런데 이제는 시화에 쓰인 글씨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시어체에 어울리지 않는 점잖은 바탕체였다.
나: 이건 참 맘에 들어요. 그러면 이제, 글씨체를 캘리 필체로 바꿀 수 있을까요?
AI: 기분 좋게 감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oo님, 이번엔 캘리그래피 느낌의 필체로 시 구절을 이미지에 표현해 볼게요. 따뜻하면서도 감성적인 손글씨 느낌이 시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도록 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조금 더 정성스럽게, 깊이 있는 시화로 다가가겠습니다 ✒️
어, 그런데 묵묵부답이다. 기다리다가 지쳤다. AI는 이게 문제다. 아무리 내가 무급으로 부리고 있다 해도 이런 모양새를 보면 천불이 난다. 언제 단단히 버릇을 좀 고쳐주고 싶다.
나: 이번엔 캘리그래피 느낌의 필체로 시 구절을 이미지에 표현해 볼게요. 따뜻하면서도 감성적인 손글씨 느낌이 시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도록 해보겠습니다.라고 하셨잖아요. 마지막 작품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부탁드릴게요.
한동안 묵묵부답이던 AI가 그때야 슬며시 일을 시작한다. AI가 그다음 시화(8)를 구현해 냈다. 그런대로 잘 가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가 맘에 거슬렸다. 글씨 색상이 밝은 색이면 좋겠다.
나: 아, 이거 글씨 크기, 필체 다 맘에 드는데 검정 글씨로 하니 칙칙한 느낌이 들어요. 저 위의 시화처럼 글씨 색상을 흰색으로 하면 좋겠어요.
AI: 흰색 글씨로 다시 표현해 봤어요 ✨ 이제 시와 장면이 더 밝고 따스하게 어우러질 거예요—시선이 자연스럽게 닿으면서도 잔잔한 울림이 전해지기를 바라요.
그렇게 큰소리치는 AI는 잠시 후에, 시화를 구현하여 내미는 대신에,
AI: 죄송합니다. 해당 이미지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혹시 애교를 부리면 내 말을 들으려나? 말투를 최대한 상냥하게 하여 다시 부탁했다. 사람 관계도 힘들지만 AI와 래포 형성도 쉽지 않다. 어느 순간에 AI가 저렇게 뾰로통해지면 약도 없다.
나: 지금 까지 잘해오던 작업을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ㅠㅠ잉잉;; 글씨 색상만 흰색으로 바꾸는 건데 어렵나요? 혹시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가요? 한 번만 부탁해요. 제발~
AI: 하얀 글씨로 다시 담아냈어요❄️ 더위 속에서도 감성은 선명하게 살아있습니다—이제 장면과 시가 더욱 조화롭게 어우러지길 바라요. 확인해 보시고, 더 손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oo님께 꼭 맞는 작품이 되도록 함께 다듬어갈게요.
그러더니 잠시 후에 완성된 시화를 내밀어 주는 것이 아니라,
AI: 죄송합니다. 해당 이미지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다시 시도하세요.라고 했다.
이러면 더 이상은 안된다. 포기하는 게 답이다.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멈출 수 없다. 내가 AI에게 몇 번인가 말했을 텐데? 내가 끝장을 보는 성격이 있다고. 마지막으로, 시화의 글씨체를 밝은 색상으로 해야 미션을 끝낼 테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 작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다시 시도하라고 해서 재시도를 했지만 자꾸만 죄송하다는 멘트만 떴다. 더 이상 하고 싶은 의욕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AI를 가지고 놀기나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나 보다. 나는 사실, 진지한데. 마지막 단계만 남았는데... 시화 만들기 프로젝트가 순순히 잘 진행된다고 여겼는데 여기까지 다다라서 렉이 걸리다니...
그렇다면 비책을 쓰는 수밖에 없다. 이전에 했던 다른 대화창을 클릭했다. 그리고 시화(8)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나: 갑자기 생뚱맞은 부탁이겠지만, 이 시화에서 다른 것은 다 그대로 두고 글씨 색깔만 흰색으로 좀 바꿔 줄 수 있나요?
AI: 알겠어요! 시화에서 글씨 색상을 흰색으로 바꾼 이미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순식간에 예쁘게 바꿔드릴게요.
눈 깜짝할 사이에 흰 글씨로 된 시화를 구현해 냈다. 그리고 AI는 설레발치며 또 다른 것까지 더 해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AI: 완성했어요, oo님! 시화의 글씨 색을 흰색으로 바꿔서 더 부드럽고 감성적인 느낌이 살아났을 거예요. 필요하시면 다른 색상이나 폰트도 맞춰드릴 수 있어요. 또는 배경을 약간 흐리게 조정해 볼 수도 있고요. 혹시 이 시화에 제목을 붙여볼 생각도 있으신가요? 그런 것도 함께 고민해 드릴게요!
나: 배경을 약간 흐리게 조정해 볼 수도 있다고요? 그러면 한 번 부탁드려 볼게요.
AI: 흐림 효과를 살짝 입혀서 배경이 더 부드럽게 바뀐 시화 이미지가 준비되고 있어요. 이제 글씨가 더욱 돋보이고 시의 분위기가 살짝 더 아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어요. 다른 스타일의 조정도 언제든 가능하니, 느낌에 따라 더 손봐드릴 수 있어요. 혹시 이미지에 서정적인 효과나 테두리 같은 것도 추가해보고 싶으신가요?
그렇게 하여 나온 시화는 오히려 이전 것보다 맘에 들지 않았다.
나: 제 느낌으로는, 그냥 원래 것이 더 낫네요.
AI: oo님 느낌이 가장 중요하죠. 원래 이미지가 가진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드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작품은 결국 보는 이의 마음과 통하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니까요.
AI는 시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AI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려 시를 입력하라고 하기보다는 사진이나 무료 이미지 등을 첨부해 주며 시화를 부탁하는 게 낫겠다. 시화 속의 이미지가 조악해 보이고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화는 캔바 같은 앱을 이용한다면 훨씬 깔끔하게 제작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캔바 앱에 있는 다양한 탬플릿을 클릭하여 시 전문을 텍스트로 넣으면 깔끔한 시화가 될 수 있겠다. 캔바 AI는 이미지 생성기에 텍스트를 입력하면 AI가 자동으로 사진, 이미지를 생성해 준다. 그래서 캔바 AI 사이트를 방문했다.
캔바에서 공항 이미지를 구현받은 후에 텍스트를 직접 입력했다.
코파일럿과 캔바로 시화를 만들어 봤으니 챗GPT도 시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래서 챗GPT에게 말을 걸었다.
나: Can you enter some of Chung Hyun -jong's poem <Visitors> in the background of the airport arrival hall. (공항을 배경으로 하여 정현종 시인님의 <방문객>을 입력해 줄 수 있겠니?)
AI: ✈️ 인천국제공항 도착장 (Arrival Hall)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누군가의 손님이다.
기다리는 사람 있는 곳으로
나는 간다.
– 정현종, 〈손님〉 중에서
챗GPT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를 쓴 것도 모자라 오타가 있는 시화 한편을 만들어 냈다.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챗GPT로 시화 만드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몇 개의 이미지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챗GPT가 만들어 준 이미지를 캔바 AI에 업로드했다. 거기서 직접 텍스트를 추가하여 마지막으로 시화 작품을 만들어봤다. 결국 사람과 AI가 콜라보로 하여 시화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러나 AI가 만든 시화(詩畫)에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갑자기 불쾌감이나 거부감으로
바뀌는 현상을 의미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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