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것은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시작하는 '방문객'이라는 시(詩)가 있다. 내가 이 시를 아끼고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다.
방문객(정현종)
영어식으로는 헨리, 프랑스식 발음으로는 앙리라는 아들의 친구가 있었다. 아들이 재수를 뉴질랜드에서 했는데 앙리는 프랑스에서 어학연수를 하러 그곳으로 왔던 친구다.
10년 전 추석에, 온 집안 가족이 모여서 즐겁게 지냈다. 그 후에 아들은 학교가 있는 포항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 가겠다고 했다. 예매해둔 승차권을 취소하고 앙리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그 추석날은, 아들이 사고를 당해서 정신을 잃기 전에, 아들과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다. 아들은 앙리와 만나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면서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앙리는 아들과의 우정으로 인하여 한국에 있는 대학의 교환학생으로 온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더 자주 만날 수 있어서 가슴이 부풀었을 것이다. 그해 추석 연휴 기간에 서울에서 즐겁게 보낸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앙리는 아들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들의 SNS에서
그가 포항까지 병문안을 왔다. 그 먼길을 달려왔으나 아들은 인공호흡기를 낀 채로 그를 영접해주지 못했다. 그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헤치고 달려왔을 것인데 아들은 그에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고 앙리는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갔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들이 회복하면 꼭 다시 연락해주겠노라고.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들은 여전히 인지가 없는 상태로 중환자이다.
그즈음에 우연히 ‘방문객’이라는 시를 읽었다. 앙리가 아들을 보러 온 것은 그의 일생이 온 것이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왔다는 시구가 있다.
뉴질랜드 한 목사님이 SNS에 올린 글
앙리가 아들이 입원해있는 포항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맘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다. 프랑스에서 아들과의 인연으로 한국에 왔는데 바로 그 친구가 절체절명의 사고를 당했으니 그의 맘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으리라.
그 이후,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면서 늘 이 시를 맘속으로 떠올렸다. 때로는 이 시를 코팅해서 맘을 대신하여 전해주기도 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한 일이다.
성경에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병문안이든, 대소사에 참석하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들을 천사로 여겨야 하리라.
코로나 때문에,한 2년간은 아들을 병문안하러 오겠다는 자들마저사절하며 지내왔다. 코로나가 끝나면 첫 방문객으로 앙리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