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적 무능한 자를 돌보며~
코로나가 세상을 덮친 후에 우리는 ‘일상’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저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 이전부터 평범한 일상도 기적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전적 무능한 자가 되어 침상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신학 관련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중에서 칼빈의 5대 교리를 유독 좋아했습니다. 칼빈의 개혁주의 원리를 이니셜만 따면 TULIP(튤립)이 됩니다.
아들은 농담 삼아서,
“이다음에 딸을 낳으면 이름을 튤립이라 지을 거예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캐나다 오타와의 튤립 축제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흐드러지게 만발한 튤립을 보면서 기뻐하지 못하고 남다른 슬픔에 젖었습니다. 딸을 낳게 되면 이름을 '튤립'이라고 짓겠다던 아들 생각이 나서 마음이 많이 아렸습니다.
TULIP이라는 교리 중 첫 원리는 전적 무능력(Total Inability)입니다. 공교롭게도 아들은 자신의 정신과 육체가 그 상태가 되었습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전적 무능한 자입니다.
다음 몇 가지만 체크해보면, 지금의 시답잖은 일상일지라도 감사할 수 있을 겁니다.
1. 소통할 수 있나요?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어마한 것입니다. 아들은 단 한 번도 내 부름에 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차라리 벽을 보고 외쳤더라면 벽지가 젖어서 떨어지고 구멍이라도 났을 것입니다. 지금 옆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2. 움직일 수 있나요?
몸을 뒤집을 수 있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마한 기적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체위를 다르게 해줘야 하고 조금만 무심하면 욕창이 생길 수 있는 전적 무능한 아들을 보노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기만 해도 기적입니다.
3. 먹을 수 있나요?
10년간 목으로 음식을 삼킬 수 없는 아들을 지켜보며 살았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측량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과일을 먹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애가 타도록 사모하는 일상입니다.
아들의 용품은 이루 셀 수 없이 많습니다.
- 머리를 감기려면 방수 시트와 이마에 부착하는 필름이 필요하다. 이발을 위해서는 이발기와 가위 세트, 이발 가운, 스펀지 등이 필요하다.
- 눈약은 물론이고 인공눈물, 특수 렌즈, 리뉴 액과 함께 렌즈를 넣어줄 뽁뽁이 세트도 필요하다.
- 면도기와 코털 면도기도 있어야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면도해주어야 한다.
- 손에는 면장갑을 끼워두어야 한다. 신생아처럼 하품하다가 팔이나 허벅지를 긁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양치할 때는 침 사레가 들리지 않게 석션 칫솔로 이를 닦아준다. 설압자도 필요하다.
- 일자형 속 기저귀, 깔개, 팬티형 기저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 소변 관리를 위하여 기스모 팩과 코반 테이프가 필요하고 소변이 새어 나오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기스모에 넣을 솜 조각도 필요하다.
- 멸균 장갑, 멸균 면봉, 멸균거즈, 종이테이프 등은 드레싱 할 때 사용된다.
- 드레싱 세트와 소독용 포비돈은 물론 식염수와 메디록스도 상비품이다.
- 목관 튜브와 자외선 살균기, 온장고도 필수품이다.
- 휠체어, 경사 침대, 전동자전거, 리프트 기계도 있어야 이동할 수 있다.
- 발 보조기 신발 또한 매일 신고 경사 침대를 탄다.
- 피딩 세트, 약은 기본이고 석션기, 카테터 튜브가 비치되어있다.
- 배변 용품으로는 젤, 신문지, 깔개 조각 등이 준비되어 있다.
- 목욕을 시키려면 방수시트 체위용 베개, 방수 베개, 위루줄 싸개 등이 필요하다.
우리 삶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합니다. 그러나 반짝이지 않는 일상이라도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우리의 오늘은, 어떤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일상은, 제 아들이 꼭 다시 한번 누리고 싶어 하는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