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한강 시집(詩集)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지난해 한강 작가에게 스며들었다. 고백하자면,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까지는 한강이라는 작가를 몰랐다. 수상 특보를 접한 후 곧장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했는데 품절이었다. 한강 작가 신드롬이 확산될 즈음 겨우 책이 배송됐다는 알림을 받았다. 그 감격을 스무 글자 시로 표현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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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품 중에서 제일 먼저 구매한 것은 <소년이 온다>였다. 이어서 <여수의 사랑>,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흰>, <작별하지 않는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노벨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도 읽었다. 읽은 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중, 가을이 되었으니 시집(詩集)을 꺼냈다. 바로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이다.
이 시집은 2013년에 출판됐는데 지난해 초판 52쇄를 증쇄했다. 한강 작가는 1993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20년 만에 첫 시집을 출간했는데 그것이 바로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였다. 문학 평론가 조연정은 시집 해설 '개기 일식이 끝나갈 때'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가을에 읽는 한 강의 시
"한강은 시인이 된 이후부터 줄곧 언어와 한 몸이 되어 언어의 타락을 앓고 있다. 그리고 언어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고통의 시간과 더불어 자신의 영혼이 구원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껏 한강의 소설이 보여주었던 상처받은 영혼들은 침묵에서 진실된 말을 건져 올리려는 시를 쓰는 한강 그 자신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이 시집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중략)" - 163p
한강의 시는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한강 작가가 시를 쉽게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례'를 보면, 총 5부로 되어 있다. 1부 새벽에 들은 노래, 2부 해부극장, 3부 저녁 잎사귀, 4부 거울 저편의 겨울, 5부 캄캄한 불빛의 집 등으로 총 6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조연정 평론가는 막스 피카르트의 철학 에세이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 안의 심연 위로 훌쩍 뛰어오르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심연을 잠재우고, 심연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라는 표현을 인용했다. 시인은 언어를 결코 수단화하지 않고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시집을 아주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는 경외심이 생겼다. 내게는 '3부 저녁 잎사귀' 부분에 있는 시들이 좀 더 이해가 잘 됐다. 3부에 수록된 '괜찮아'는 읽을수록 자꾸 친해지는 시였다. 그 시를 한 편의 에세이처럼, 소설처럼 읽을 수 있었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괜찮아' 중에서
이 시는 읽을수록 위로가 됐다. 나도 울고 있다. 물론 아이도 울고 있다. 울고 있는 나를 먼저 달래야 함을 알게 됐다.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며 나를 다독였다.
이어서 '몇 개의 이야기 6'에서,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라고 했다. 아, 이렇게 다정한 시를 만나다니. 그리고 그 시에서 말을 이었다.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라고 말이다. 한순간의 사고로 13년째 아들이 침상에 누워있는 내게 마치 말씀처럼 다가온 시였다. 삶을 통해 응축되고, 인생에 대한 혜안을 가진 시인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몇 개의 이야기 12'는 짧은 시다.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이 한편으로 두꺼운 책 몇 권을 읽은 느낌을 받았다. 이 시를 읽으며 내 슬픔이 물기 없는 것인 줄 알게 됐고 그래서 내 슬픔은 원석과 같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가을이라 시집을 꺼내 들었는데 하루 이틀에 훅 읽고 말 게 아니라 틈 나는 대로 읽을 시집이었다. 이 시집의 책날개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흐리는 언어들이 있다.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오렸던 최초의 언어에 가닿고자 하는 시"라고 소개한다. 또한 이 시집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 보는 고통의 시금석인 셈이다"라고도 했다.
이 가을에
뜨겁고도 차가운 한강의 첫 시집을 읽으니
영혼의 양식을 먹고 있는 듯하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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