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동 은행나무 보셨나요?
언젠가부터 매주 월요일엔 절친과 함께 운동 삼아 계양산 장미원 둘레길을 걷고 있다(관련 기사 : 매주 월요일, 계양산 장미원 둘레길을 걷고 있어요). 장미가 지는 풍경에 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장미가 서서히 지고 있네. 가을 풍경을 만끽하려면 장미원보다는 인천 대공원이 더 좋겠어."
그래서 지난주에는 친구와 함께 인천 대공원 호수 둘레를 돌았다. 이번 주에는 호수 공원을 지나 정문 쪽으로 방향을 틀어 향기 정원 쪽으로 산책할 계획이었다. 인천 대공원은 매주 가더라도 다른 곳을 감상할 수 있다.
인천 대공원은 사방팔방으로 나름의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정문 쪽에는 장미 정원, 수목원, 향기 정원, 등이 있다. 반대편에는 조각 공원과 어울 큰마당, 어울 꽃길이 있다. 남문 쪽에는 벚나무길, 들꽃 정원, 백범 광장 등이 있고, 메타세콰이어길과 치유 숲에 갈 수도 있다. 동문 쪽에 있는 800살 은행나무도 볼거리다.
인천대공원역에 내려 개찰구를 막 지나는데 역사 벽면에 은행나무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우리 저기 가보면 좋겠다"라고 친구가 말했다. 맞다. 가을이 오면 꼭 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 정작 가을이 됐는데 그걸 깜빡 잊고 있었다. 지난해 겨울에는 800살 은행나무 아래 갔지만 잎을 모두 떨군 은행나무만 봤다.
가을이면 800살 은행나무 앞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잎이 죄다 떨어지고 나무는 벗은 몸이 된다. 그런 나무를 보겠다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잎이 진 겨울 은행나무를 보니, 고관대작의 노후를 보는 듯했다. 그토록 아부하며 친절했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버리지 않던가? 마치 인생사를 보는 듯했다. 지난해 겨울 은행나무 앞에서 '겨울나기'라는 시를 썼다.
팔백 년 풍진 세월
둥치에 새겨놓고
황금빛 은행잎을
깡그리 떨궜구나
구경꾼 박수갈채가
꿈결처럼 그립겠다
올해는 깜빡 잊고 지나갈 뻔했던 은행나무 화양연화 장면을 담으려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몰려든 사람들이 은행잎만큼이나 많았다. 은행잎이 바닥으로 꽤 많이 떨어져 있었다. 초록색 잔디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쌓인 풍경도 볼만했다.
800살 은행나무 앞에 서니, 인간 수명이 무척 짧게 느껴졌다. 800년 간 역사와 비바람을 견딘 그 위용이 저절로 느껴졌다. 나뭇가지 윗부분에 달렸던 은행잎은 거의 떨어지긴 했으나 앞으로 며칠간은 노란 은행잎을 더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두 주 더 일찍 갔더라면 더 풍성한 은행잎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년 일정 캘린더를 열어 10월 말쯤에 은행나무를 보러 가겠다고 미리 기록해 두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8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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