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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한비 Jun 30. 2024

사전답사

40대 초등교사 미국유학기

 "관광객의 시각을 넘어 예비이주자로서 바라볼 경험을 하겠다"는 핑계로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일본으로 떠났다.  맞다, 그냥 방학이라 여행 가는 거 맞긴 하는데 그 일정 안에 함께 연구할 교수님 미팅, 다니게 될 학교 면담, 거주할 동네 방문 등이 포함되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도시 중 하나라 놀러 가는 거 맞네 라는 놀림이 당연히 뒤따랐으나, 어쨌든 우리는 도착 다음날 바로 우리 아이들이 다니게 될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한국교육원을 통해 통역도움을 주는 한인을 소개받았는데, 역에서 만나 함께 초등학교에 방문했다. 한국교육원의 도움으로 시간 약속도 해두었기에 우리는 바로 교장실로 안내되었다.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하면서 두 아이를 보내겠다는 용감한 학부모를 앞에 두고 그들은 분명 당황했다. 우리가 일본어를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한 눈치였다. 눈치 빠르게 일본어로 매끄럽게 인사를 한 두 아이에게 활짝 웃으며 바로 몸을 돌려 일본어로 뭐라 뭐라 하셨는데, 바로 우리 아이들은 굳어버렸고. (그래, 그렇지, 못 알아들었겠지). 교장 선생님의 미소는 어색하기 그지없이 급히 수습되었고. (그래, 그렇지, 겨우 발견한 출구가 눈앞에서 닫힌 것 같겠지.)


우리 같은 케이스는 (어쨌든 그 학교에는) 없다고 했다. 우리 부부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교장님은 교감을 부르고, 교감님은 다른 선생님을 부르고. 이게 무슨 웃지 못할 상황인지. 그들에게는 너무 사소하여 당연한 사항, 외국인인 내게는 당연히 알 턱이 없는 사항들이 한 두 건이 아니고. 사적인 호기심까지 더해진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친절했던 그들의 태도가 슬슬 심드렁해지기 시작할 때, 한국의 초등교사라는 것을 실토했다. 그들의 눈에 반짝 스쳐간 반가움과 함께 바뀐 분위기. 교감님이 뭐라 하자 선생님이 나가더니, 서류파일을 들고 돌아왔다. 그해 입학 시 배부한 자료. 입학 절차와 준비물, 학교교육과정 등에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때부터 나는 한국의 교사, 그들은 일본의 교사. 홈리그에 앉아있는 그들은 나를 학부모로 만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일치감치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파악한 것은 두 가지. 첫째, 학사운영, 교과목, 학년제, 급식 등 학교교육의 큰 틀은 우리의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에 까막눈인 나는 엄마로서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것. 준비물 하나 챙기는 것조차 내겐 엄청난 과업이 될 것임을 그 자리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입학 안내문의 세세하면서도 친절한 그 지시들, 준비물들은 손그림으로 깜찍하게 그려 안내되었으나, 그것들은 나를 한 큐에 좌절시키는데 충분했다. 아니, 뭐 이렇게까지 정해줘? 게다가, 입학식도 전에 미리 학부모 모임이 있는데, 필히 참석해야 한다고.


남편이 얻은 것도 딱 두 가지. 첫째, 큰일 났다. 학부모로서 우리가 일본어를 못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공부하자.  둘째, 우리도 란도셀을 사줘야겠다. 아니, 난감한 현실을 깨닫고 충격에 휩싸인 것은 같은데 왜 결론이 그리로 튀나. 같은 걸 보고도 남편은 안내문의 손그림으로 그려진 란도셀만 눈에 들어왔는지 당장이라도 사러 갈 기세였다.  


통역을 도와준 분과 차를 마시고( 그 분은 우리의 결정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눈치였다) 헤어진 뒤, 우리는 대학으로 향했고, 남편이 교수님을 만나러 간 김에 나는 학교에서 제공해 준다는 아파트 주변과 동네를 둘러봤다. 대학은 산 중턱에 있었고, 역시 산 중턱에 있는 그 아파트는 안에 들어가 볼 필요도 없이 그 환경 그 자체만으로 나를 흥분시키는데 충분했다. 나 이런 데서 살아볼래애애애애.  


남편은 란도셀을 맨 아이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아파트 창에 펼쳐진 숲으로 둘러싸인 경치를 상상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그날 밤, 냉정과 이성을 찾은 우리 부부는 학교방문에 대한 소감을 나누다 우리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자만 읽는 수준으로 큰 불편함 없던 여행과 일본인들 속에서 생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에 생각이 일치했다. 현지 학교 방문은 언어에 미숙한 것과 전무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하게 했다.


그래놓고, 다음날 눈을 뜨니, 남편이 그 밤 사이에  그 일본어 회화 온라인 수강권 일 년 패키지를 결제했다고 하여 나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아니, 내내 나랑 같은 얘기를 했잖아. 일본어 까막눈이라서 애들 학교생활 전혀 못 도와주는 건 큰 일이라며. 심각하다며. 방긋방긋 바보같이 웃고 있는 거 자괴감 들었다며. 일본행 다시 생각해 보자는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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