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인강 1년 패키지를 구독과 함께 집에 교재 패키지도 배달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뿐, 남편은 학습 어플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시작은 했다. 강의 어플을 휴대폰에 설치했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쓰며 외웠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오호, 발음대로 쓰면 되네, 정말 쉽겠는데? 자신감도 불탔다. 일본 영화에서 들어봤던 “쏘 데스까?”, “무리 무리 대쓰네.” 이런 걸 막 귀엽게 발음하며 공책에 끄적대며 즐겼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단어와 문장, 문법이 더해질수록 벽을 만났다. 어묵은 오뎅, 쟁반은 오봉, 이런 수준을 넘어 낯선 단어를 많이 알아야, 그 철자 오류가 있더라도 대충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을. 학창 시절, 영어, 독일어를 처음 배울 때 알파벳을 익히고도 그 많은 단어를 외워야 하지 않았던가. 문법 역시, 문장 생성에 필수 아니던가. 40대, 단어장 들고 다니며 외우던 그 시절, 맨투맨과 성문영어를 몇 회독씩 하며 문법공부에 열중했던 그 10대의 기억이 까마득히 멀어 나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아, 쉽지 않겠다.
암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 두 번의 제왕절개 탓이 아닐까? 공부할 시간이 없다. 퇴근하고 어린아이들 유치원 픽업과 학원 라이드까지 하고 나면, 밥 먹이고, 씻고, 자야지. 주경야독? 내일의 충실한 삶도 생각해야지. 이 험난한 언어적 장벽을 꼭 뛰어넘어야 하나, 아니 나는 기어올라 넘어야 할 판인데? 핑계는 끝이 없고, "다 늙어서 뭔 공부냐?"라는 생각이 불쑥 불쑥 치밀었다.
일본어 공부의 장벽을 눈앞에 두고 갈등하던 그때, 코로나 팬더믹이 시작되었다. 방사능 문제로 우리의 일본행에 대해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하던 지인들은 코로나가 터지자 적극적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우리 일본 가는 게 잘하는 걸까? 라던 고민과 함께 진행되던 일본어 학습은, “우리 그냥 미국으로 갈까?”와 함께 완전히 멈췄다.
미국으로 목적지를 변경한 뒤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첫째의 2년 가까운 기간 지속된 영어 학습의 수준 점검(이제야?)과 둘째의 급격한 영어실력 향상을 위한 방안 모색(되겠니?)이었다. 이 길 역시 쉽지 않은 오르막길임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는 않았다.
*** 그 일본어 교재 팩은 상자 그대로 미국으로 갔다가, 귀국시에 다시 곱게 포장된 채로 돌아왔다. 눈치가 보인 탓인지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일본어를 공부하여 유유자적할 거라고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더니. . . . . .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