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증명해온 시간들

숫자의 증명, 불행과 행복의 정의

by 오늘따라유난히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희미해지는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아직도 삶의 주안점은 후회 없는 최선이다. 오래된 나의 색이 모두 다 바래질 때, 누구보다 떳떳하게 살고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늘 이상의 내가 현실의 나를 괴롭히지만, 글로 남기기게 되는 건, 말을 하게 되면 결국 말만하는 사람이 될 거 같아서. 듣는 자가 언젠가 책임을 묻는게 싫어서. 그건은 책임이 아니라 선언이었기에.


#7. 마지막 말

우리가 불안과 책임에 짓눌릴 때, 스스로에게 불안한 여유로움을 불어넣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고민해보자 말하고 싶었습니다. 행복은 태어남, 나고지냄, 지금의 소신과 신념이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기에, 여기에 나의 기저와 미래를 남깁니다.

저는 가끔은 나이라는 숫자에 응당 따라붙어야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아주 흔하거나, 아주 흔하지 않거나는 같은 말로 생각하는 저이기에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한 사람의 단락으로, 우연히 뽑아들은 서점의 에세이 같은.



#1. 10대

10대의 나는 아주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보는 아이였다. 후기에서야 느꼈던건 가정불화로 발발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배달가게에도 전화조차 하지 못하는 나는 미련해보였다. 그 시절의 나는 인지하지 못하는 불안과 우울을 등에 업고 다녔다. 이제와선 그 시절의 눈치가 사람관계를 보는 나를 만들었다지만, 더 긍정적이고 덜 회색인 방법이 있다는걸 깨닫고서야,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걸 느꼈다.


#2. 20대

아버지의 치매, 어머니의 왼쪽 눈의 시력 상실, 그로 이어진 형편의 어려움 같은 불행한 가정의 일반적인 이야기가 나의 삶을 한참 물들일 때, 선언했다. 나의 건강와 행복 그리고 안위보다는 우리 가정의 평화를 바랬다. 아버지와의 기나긴 단절의 선언, 죽음앞의 후회보다는 어머니와의 다정한 아들을 가슴깊게 새기고 난 나의 20대는, 칭찬과 인정속에서 불안의 연속, 공허함의 계속이었다. 잠을 줄여 주위 친구들과의 벌이가 2배쯤 차이날 무렵, 늘 두명 몫을 해내야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부터가 기본의 기준점이라고 생각했다. 결핍으로 인한 성장이라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럴싸한 말들로, 주위에 도움을 받으며, 칭찬을 받지만, 스스로를 가둬두어 괴롭히는, 전형적인 불행한 사람의 과정을 보는 건, 30대에 들어서의 후기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모두 포함하지만, 20대의 나는 증명이란 단어를 증명하기 위하여 부단히 애썼다.


#3.30대

나의 능력이 한팀을, 작은회사가 운영이 가능하겠다고 창업한 어느 날 깨달았다. 나는 발전과 성공을 위해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습관인 사람이라 어려운 길만 선택했던 사람이라고. 행복이 익숙치 않아, 성큼 한발짝 다가오면, 나는 아직 모잘라 하고 두걸은 도망친 나의 삼십대였다. 이제와선 돌아가고싶지 않은 과거와, 돌이킬수도 없는 현재에 해결이란 더 노력하고 움직이는게 가장 빠른 해결이라는 객관의 삶속에서 나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나하는, 증명의 증명이 궁금했는데 이제와선 증명의 정의를 궁금해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 배신에 대한 분노, 다정함의 형태를 만날 때마다,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느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 있다고. 그럼에도 추가 기울어진 객관속에서 그를 이해하는 나와 이해 받지 못하는 나의 간극은 채우기 어려워서, 나를 내색하는걸 그만 두기로 했다.


#4. 숫자의 증명

결국 나이가 증명하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됨이라고 생각한다. 구구절절한 변명과, 이해받고자 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않고자 하는 사람간의 사이에선 보여지는 것, 더 나아가 결론이 증명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이때쯤 겪는 결혼이나, 관계의 멀어짐 같은 응당 지나가는 인륜지대사 같은 것들의 관하여, 긴 시간이 증명해주는 행복이겠지. 결국 무의식까지 포함하는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면, 이제와선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오기가 너무 오래걸렸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고 표현했던 말의 청자는 나였다보다.


#5. 어떻게 행복할까.

몇십억의 매출, 몇십명의 직원, 무게 있던 지갑의 두께가 모두 사라진 지금, 나를 증명했던 객관적 숫자들이 모두 지평선에 수렴하고 나서야, 내가 원했던 건 평화로움이었다는걸 깨닫는다. 햇살 따듯한 어느 저녁, 빨간 동그란 해와, 파랑 바다의 지평선이 맞닿는 그 어느 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저녁을 만들고 싶었다는걸. 책임은 책임대로, 이상을 줄이고 현실을 바라보며, 행복을 만들어보려 한다. 미운 사람들이 떠오를 땐, 그도 평범한 사람이란걸 생각하고, 스스로 모자를땐 나도 대중의 한명이다 라고 생각하며. 불안과 우울이 드리워지는 낮에서, 나는 증명을 이어나간다.


#6. 되고싶은 미래

숫자가 그리 크지 않은 나의 사람들과, 웃으면서 일하고 싶다. 누군가를 크게 고생시키지 않고, 성장을 저당잡지 않으며, 나의 여유에 당신의 실수를 묻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너무 늦지 않게 퇴근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따듯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길 바란다. 일보단 가정이 첫번째라고 늘 말하던 나를 내가 증명해보고자 한다. 그 무엇보다 건강하길 빈다. 일도, 사람도 사랑도, 건강 다음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건강보다는 나의 가족과 가정이 중요한 날도 있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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