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균 여행기자 Jun 22. 2019

어찌 됐든 축제다

성지 예루살렘 #3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는 인파

예루살렘의 또 다른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은 아침부터 서둘렀는데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최고의 성지이자 관광객에겐 랜드마크 그 자체인 통곡의 벽(Western Wall)과 황금돔(Dome of the Rock)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아침부터 많은 인파가 몰렸다. 남녀노소, 국적, 종교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 날은 안식일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스라엘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곳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잠시라도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성지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통곡의 벽을 가득 채운 이스라엘 사람들. 이 날은 성인식에 열려 가족 단위가 상당히 많았다.


우리는 우선 황금돔을 보기로 해서 위쪽으로 이동했는데, 유대교 최대의 성지와 이슬람 최대의 성지가 같이 있는 곳이라 경비도 꽤 많고 철저하게 이뤄진다. 다만 일반 관광객들은 간단한 가방 검사만 진행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황금돔으로 가면서 아래를 보니 통곡의 벽을 마주대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 이상으로 진지한 모습에 거룩한 무덤성당이 떠올랐고 숙연함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자세히 벽을 보면 벽 곳곳에 종이가 박혀 있다. 그들의 기도 내용 또는 소원이 담긴 종이인데 어떤 글이 적혀 있을지 궁금하다. 가족의 건강? 행복? 신을 위한? 나라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 두 국가를 지켜보는 모든 나라들이 그들의 행복을 빌었으면 했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상황도 개선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또 통곡의 벽은 특징은 남녀가 다른 공간에 있다는 점이다. 사진 왼쪽이 남성, 오른쪽이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들의 관습이라 생각되는 부분이라 따로 언급할 건 없다. 


경비들이 보인다. 뒤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붙은 감시인데 이유가 있으니, 바로 정치적 문제다. 2000년 9월28일 이스라엘 야당(리쿠드당) 지도자 아리엘 샤론 총리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야기하기 위해 경찰 3,000여명을 대동하고 이슬람의 성지인 황금돔을 도발적으로 방문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12명의 무슬림이 사망했고, 2차 인티파다로까지 이어져 결국 6,000여명이 사망하는 비극에 이르렀다.

결국 그 이후 황금돔에 가려는 유대인들은 신원조회를 진행하며, 성경책과 십자가도 들고 갈 수 없게 됐다고. 그러면 유대인들은 왜 황금돔에 가려는 걸까. 지금의 황금돔 자리에 예전에는 유대교 성전이 있었던 곳이며, 성전 이후에는 기독교 교회가 들어서기도 했다. 결국 현재 황금돔이 있을 뿐 세 종교 모두에게 성지였던 곳이기 때문에 여기를 찾는 이들은 늘 많다. 

금색으로 번쩍이는 황금돔. 가까이서 보니 유독 더 빛난다. 파란 하늘에 노란 달이 뜬 것처럼 확 눈에 띈다. 내부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입장은 불가. 결국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이 곳에 있던 사람들을 관찰하고, 또 곳곳을 분해해서 구경하고 즐겼다. 화려한 색감과 이국적인 패턴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황금돔을 즐기는 이들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이 곳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역시 기억에 남는 건 사람이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최고의 모델




바로 이 아이들이다. 이스라엘 여행이 정말 좋았던 것 맛있는 음식도 물론이지만 특히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찌 됐건, 종교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외국인인 나에게 항상 호기심을 갖고 다가와 먼저 인사했고,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여러 방식으로 소통했다.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느끼는 재미도 여행이 주는 행복이다. 아이들과 나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저 카메라가 신기했던 아이들은 렌즈를 바라보고 나의 모델로 활약해줬다. 덕분에 둘도 없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고, 또 그들에게 이 사진을 전해줄 수도 있어 황금돔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이 사랑스러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이 소녀들이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고, 언제나 나와 같은 이방인에게 귀여운 미소를 선물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스라엘 여군


통곡의 벽으로 돌아가는 길에 반지하 시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군인을 만났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징집 대상으로 남성은 기본 3년, 여성은 2년이다. 단 여성이 전투병으로 지원할 수도 있는데 이때는 3년으로 남자와 동일하다. 예루살렘에서 종종 무장 군인들을 보는데 걱정하진 말자. 이렇게 사진도 찍어주고 관광객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니. 같이 사진을 찍을 만큼 마음의 여유도 있다. 

다시 통곡의 벽으로 돌아왔다. 예루살렘 최대 성지인 통곡의 벽은 Wailing Wall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은 유대 신앙의 상징으로 BC20년에 헤롯왕에 의해서 지어졌다. 그렇지만 예수가 죽은 뒤 서기 70년,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 성전을 파괴했는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통곡의 벽이다. 지금은 꽤 높게 복원됐지만 진짜인 부분은 아래서 7번째 줄까지다. 

황금돔 가는 길에는 멀리서 방관자의 입장으로 봤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숨결을 느끼니 사뭇 달랐다. 또 여기에 입장하기 위해 일회용 키파까지 머리에 얹으니 기분이 묘하고 그들과 잠시나마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키파는 머리 위에 얹는 동그란 모자다.) 그들의 영역에 들어오니 신성함이 어떤 건지 또다시 느꼈다. 진지하게 율법을 공부하고, 율법을 들으며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 그들의 교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 하지만 이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정도는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들에게 율법이란 어떤 의미인지. 무엇이 그토록 이들을 간절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어린아이부터 중년까지 모두가 그랬다. 벽에 가까이 갈수록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도하는 이들과 다른 분위기의 일행이 눈 앞에 나타났다. 부자가 무언가를 들고 나왔고, 랍비를 비롯한 일행들은 싱글벙글. 주변을 둘러보니 이러한 무리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생일은 아닌 것 같았다. 가이드님께 쪼르르 달려가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니 성인식이라고. 율법상 남자아이는 13살부터, 여자 아이는 12살부터 성인이라고 한다. 여자 아이들이 철이 일찍 들어서 성인식을 일찍 하는 반면 아쉽게도 통곡의 벽 같은 성지에서는 남자아이만 성인식을 치를 수 있다고 한다. 여자 아이들은 동네 회당에서 진행한다고. 



위에서 말했듯이 통곡의 벽에서 남성과 여성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달라 이렇게 반대편에서 사탕을 던져준다. 사탕을 주는 이유는 어른이 되면 사탕과 같은 단 것을 먹으면 안 되니 마지막으로 많이 먹으라는 의미. 신나게 뿌려대는 누나들 탓에 남자아이들의 표정이 머쓱하다. 어린 나이에 축하받는 게 익숙하지 않아 나오는 자연스러움, 그 모습이 또 귀엽더라. 랍비의 주도 하에 성인식은 진행되고 그걸 한참 지켜보고 있자니 내 13살을 떠올렸다. 완전 아기인데 여기에서는 성인이라니. 



입구 쪽으로 가니 더욱 축제 분위기였다. 경쾌한 음악과 신나는 장구 소리가 뒤섞였고, 부끄럼 없는 아이들은 멋진 퍼포먼스까지. 주변에 악단들도 가족인지 알았지만 이들은 전문가들이다. 성인식 날이면 항상 이렇게 공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악단들 규모에 따라 가정의 경제 상황까지 알 수 있다. 여유 있는 집일수록 악단의 규모가 대단하다. 반면 조촐하게 가족끼리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영상까지 남기고 있으니 내가 찍은 이 집은 확실히 부유한 편이고 아이도 성인식으로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스타가 될 기질이 다분해!



규모는 작지만 성인이 되는 그 기쁨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컸다. 정문 오른편에서도 흥겨운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여기는 공간이 더 넓고, 누구에게나 열려있어 일반인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악단이 아니면 어쩌랴. 음악이 있으면 흥이 나고, 오히려 안쪽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특히 쑥스러움이 많았던 이 아이는 춤도 추지 않고, 다소 경직돼 있었지만 카메라를 들이밀고 눈인사를 하니 환하게 웃어줘 안심이 됐다. 지금도 여전히 웃고 지내길 마음속으로나마 바란다. 



한 칸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가족애가 싹트고 있었다. 13살을 맞이한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감사 뽀뽀를 날리니 온 가족의 얼굴이 사랑으로 가득 찼다. 여행할 때 나를 더욱 기분 좋게 해주는 건 이렇게 타인의 행복을 잠시 빌릴 때다.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고, 그들의 웃음을 통해 나 또한 한 번 더 웃게 되니. 수많은 역사가 얽힌 이 곳에서 격주로 열리는 성인식이 밝은 에너지를 채워주니 이곳에 잠들어 있는 모든 절대적인 존재들이 오히려 고마워하지 않을까.  



통곡의 벽과 황금돔,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세 종교의 끊임없는 갈등의 무대로 지금까지 내려왔지만 모두가 웃는 이 순간만큼은 어찌 됐든 축제의 장이고, 웃음이 꽃피는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찰나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화합을 통해 이스라엘의 또 다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속 괴로운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